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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오피스·주방 잇는 新공유경제…강남에 부는 ‘공유미용실’ 바람

중앙일보 2020.01.13 05:00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의 무인 예약 시스템. 김정민 기자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의 무인 예약 시스템. 김정민 기자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미용실. "어서 오세요"는 들리지 않았다. 안내 데스크엔 사람 대신 태블릿 PC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름을 입력하니 헤어 디자이너 명단 옆에 시술 가능한 시간이 함께 떴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터치하자 기존에 시술한 헤어스타일 포트폴리오가 나왔다. 자신의 취향과 시간에 맞춰 디자이너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예약한 경우엔 도착 사실을 태블릿에 입력하기만 하면 됐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 입구 [사진 퓨처플레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 입구 [사진 퓨처플레이]

 
이곳은 지난 6일 문을 연 '공유미용실' 쉐어스팟이다. 이 미용실에서 일하는 헤어 디자이너 4명은 모두 '원장'이다. 공간과 장비를 나눠쓸 뿐 알아서 벌고 알아서 쓰는 방식이다. 헤어 디자이너 근영(28·본명 고근영) 실장은 "대형 미용실에서 일할 땐 (정해진 제품이 있어서) 사비로 산 좋은 제품이 있어도 손님에게 발라주기 어려웠다"며 "이곳에선 매장의 '룰'이 아닌 내 개성에 맞는 제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미용실이 뜬다 

숙박·차량에서 출발한 '공유경제' 트렌드가 사무실·주방에 이어 '미용실'로 퍼지고 있다. 공유미용실은 입지가 좋은 공간과 고급 장비를 헤어 디자이너 여러 명이 나눠 쓰는 형태의 사업이다. 주방 하나를 시간대에 따라 여러 음식점이 함께 쓰는 공유주방과 유사하다.
 
공유미용실 세븐에비뉴 합정점 [사진 세븐에비뉴]

공유미용실 세븐에비뉴 합정점 [사진 세븐에비뉴]

 
국내 첫 공유미용실은 20년 차 헤어 디자이너 심재현 씨가 2018년 선보인 '세븐에비뉴'다. 현재 전국에 4개 지점이 있다. 최근 한 달 새엔 서울 강남 중심으로 '살롱포레스트', '쉐어스팟'이 문을 열었다. 
 
오는 17일엔 아산나눔재단의 창업 육성 프로그램 출신 스타트업인 제로그라운드가 강남역 부근에 '팔레트에이치'를 오픈한다. 김영욱 제로그라운드 대표는 "실력은 있지만,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독립할 엄두를 못 내는 전문가들을 위한 공간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에서 디자이너 우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카메라는 유튜브 영상 촬영용. 김정민 기자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에서 디자이너 우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카메라는 유튜브 영상 촬영용. 김정민 기자

 

개업 미용실 40%가 3년내 폐업

2017~2018년 국가통계포털 기준 미용실·네일샵·피부관리샵 등 국내 뷰티샵은 총 16만개로 전국 치킨집의 4배다. 전 세계 맥도날드 지점보다 4.5배 많은 수준이다.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2017~2018년 국가통계포털 기준 미용실·네일샵·피부관리샵 등 국내 뷰티샵은 총 16만개로 전국 치킨집의 4배다. 전 세계 맥도날드 지점보다 4.5배 많은 수준이다.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왜 공유미용실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에는 11만8000여개의 이·미용실이 영업 중이다. 하지만 개업 미용실의 40%는 3년도 못 가 문을 닫는다. 매년 폐업하는 미용실이 전체 미용실 중 10%에 달한다. 업계는 이들 중 상당수가 매장 임대료, 인테리어 등 높은 초기비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점을 폐업 원인으로 꼽는다. 
 
공유미용실은 이 지점에 주목한 사업이다. 과도한 초기비용의 위험부담을 공유로 줄여 미용실의 생존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살롱포레스트를 세운 아카이브코퍼레이션의 이창열 대표는 "10평(약 33㎡) 내외의 개인 미용실 창업에 평균 6000만~7000만원이 드는데, 공유미용실은 300만~600만원 안팎의 보증금을 제외하면 초기비용이 거의 없다"며 "플랫폼 사업자가 홍보·마케팅까지 해주는 경우도 많아 디자이너는 시술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미용실’이 뜬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공유미용실’이 뜬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공유미용실에도 물론 '자릿세'가 있다. 장소와 장비를 제공하는 대가로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받거나, 여기에 추가로 매출액의 15~20%를 가져가는 식이다. 하지만 일반 창업에 비해 초기 부담이 적고 개인 창업 형태인 만큼 근무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개성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공유미용실 확산에는 달라진 소비패턴도 한몫한다. 과거 미용실 선택 기준이 유명 디자이너가 세운 브랜드의 '간판'이었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잘 연출하는 '쌤(헤어디자이너)'을 찾아간다. 개인 브랜드의 힘이 강해지면서 대형 미용실을 벗어나 독립하려는 헤어 디자이너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 라운지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 라운지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아카이브코퍼레이션 권영훈 이사는 "특정 미용실 소속의 헤어 디자이너는 개인이 올린 매출의 22~35%만을 가져간다"며 "세금·신용카드 수수료 외에도 미용실에 일종의 '자릿세'를 내야 하므로 '내 미용실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AI 전문가·공간기획자도 뛰어들었다

이런 흐름에 불을 붙인 것은 IT 기반의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이다. 쉐어스팟은 기술 분야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가 선보였다. 인공지능(AI)을 통한 맞춤형 헤어스타일 추천과 매장관리 무인화 등 미용실에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기존 업계에서 수기로 작성되던 시술 내역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를 창업한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정병인 이사(브랜드 디렉터), 이창열 대표, 권영훈 이사(공간 디렉터)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공유미용실 '살롱 포레스트'를 창업한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정병인 이사(브랜드 디렉터), 이창열 대표, 권영훈 이사(공간 디렉터) [사진 아카이브코퍼레이션]

 
살롱포레스트는 공간 콘텐트를 기획하는 프롭테크 스타트업 아카이브코퍼레이션이 만들었다. 위워크·구글 등 강남 일대에 근무하는 2030 직장인 여성들에게 '휴식(for rest)'과 여행·와인·웨딩 등 '취향 공동체(살롱)' 문화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를 이름에 담았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SNS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들이 자기 이름을 건 개인 공간에서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에서 근영 실장이 손님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공유미용실 '쉐어스팟'에서 근영 실장이 손님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개인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다. 남녀 평균 커트 기준 3만 원대로 강남권 고급 미용실과 비슷하다. 11일 쉐어스팟을 찾은 30대 정다희씨는 "5년간 머리를 맡겨왔던 디자이너가 샵(개인실)을 열었다고 해서 예약하고 방문했다"며 "개인 룸이 따로 있어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美·日도 공유미용실 바람

일본 공유미용실 '고투데이' [사진 고투데이 홈페이지]

일본 공유미용실 '고투데이' [사진 고투데이 홈페이지]

 
공유미용실은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 하라주쿠를 중심으로 2016년 문을 연 '고투데이'는 헤어 디자이너에게 공용 공간만 제공한다. 디자이너가 미팅룸을 빌리듯 원하는 시간에 장소와 장비를 빌리는 형태다. 북미에선 2010년 저비용 창업을 지원하는 가맹점 형태의 '마이살롱수트'가 등장했다. 현재 미국 29개주와 캐나다에서 영업 중이다.
 

남은 숙제는 

서울 강남역 근처 공유미용실 '팔레트h' 샴푸실 [사진 제로그라운드]

서울 강남역 근처 공유미용실 '팔레트h' 샴푸실 [사진 제로그라운드]

 
신산업이다 보니 '규제' 리스크도 있다. 현행 공중위생법상 다수의 사업자가 공용 샴푸실을 공유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 살롱포레스트·팔레트에이치 측은 "주무부처(보건복지부)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서 규제 샌드박스 신청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쉐어스팟 송기현 대표는 "공유경제가 활성화되기 전 만들어졌던 오래된 규제들이 새로운 흐름에 맞춰 풀리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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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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