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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사법방해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반역이다

중앙일보 2020.01.13 00:52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지난주 검찰 간부 인사는 ‘대학살’이었다. 조국을 포함한 청와대·정권 실세를 수사한 간부들은 6개월 만에 전원 좌천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인사협의를 하려고 윤석열 총장을 불렀는데 불응했다고 ‘항명’이라고 했다. 이낙연 총리의 공개적인 으름장이 나온 뒤 ‘그냥 둘 수 없다’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놓으라’는 추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 검찰은 ‘항명’이 아닌 ‘패싱’이라고 맞서고, 야당은 장관 탄핵소추를 벼르고 있다.
 

관례인 법무부 인사안도 안 주고
추미애 장관과 협의 불응했다고
윤석열 ‘항명’으로 몰아낼 건가
법치가 무너지면 왕조국가 된다

하나의 사건에 두 개의 진실이 맞서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라쇼몽’ 현상이다. 이렇게 하나의 절대적인 진실이 서야 할 지점에 각자의 시선으로 본 상대적 진실이 싸우는 공동체에는 앞날이 없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 아니라 실체 그 자체다. 추 장관이 주장하는 진실인 ‘항명’에 맞서는 검찰의 진실인 ‘패싱’ 주장을 윤 총장을 화자(話者)로 해서 정리한다.
 
“인사 하루 전날인 7일 저녁에 추 장관이 갑자기 전화로 다음 날 오전까지 인사안을 보내 달라고 했다. 관례대로 먼저 법무부의 인사기본안을 달라고 했다. 장관은 자기에게 인사안이 없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씀이냐, 우리가 허공에 대고 의견을 다느냐고 했다. 장관은 대통령을 월권하기 싫어서, 청와대에서 다 한다고 했다. 그럼 청와대에서 받아서 보내 달라고 하니 자기는 민정수석을 잘 모른다고 했다. 나보고 민정수석에게 얘기해서 받아 보라고 했다.
 
후배 검사를 시켜서 청와대에 전화 걸어 보내 달라고 하니 ‘말이 되는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청와대는 법무부에 얘기해 대검찰청에 안을 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법무부 차관과 국장으로부터 ‘죄송하다’는 전화가 왔다. 내일(8일) 아침에 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다렸지만 안은 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아침 9시30분에 장관이 협의할 게 있으니 10시30분까지 법무부로 들어오라고 했다. 11시에 열리는 검찰인사위원회 30분 전이다. 총장은 법무장관이 취임했을 때만 인사 가는 거지 같은 장관급인데 쪼르르 가는 게 아니다, 프로토콜을 지켜 달라고 했다. 그 쪽에서 인사안을 먼저 보낸 뒤 문서로 의견을 원하면 문서로 보내줄 것이고, 구두로 협의를 원하면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장관은 오후 4시30분까지 기다릴 테니 법무부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못간다, 일단 안부터 보내 달라고 했다. 정 뭐하면, 장관 마음대로 인사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안을 들고 청와대 들어가 재가받아 밤에 발표했다. 장관은 국회에서 내가 자기 명(命)을 거역했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절대적 진실은 신(神)의 영역이다. 하지만 정권 실세 수사 무력화를 위한 ‘대학살’인사를 준비해 놓고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항명’으로 몰아세우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권부(權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윤석열은 사퇴하라!” 토사구팽이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잡아넣을 때는 박수치다 칼 끝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하자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박근혜가 검찰의 우병우 비리 수사를 막았다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몰락한 비극을 잊고 있다.
 
윤석열은 “저들이 마음대로 인사해도 결국 다 대한민국 검사인데 누구를 데리고 있든 일을 못 하겠느냐”며 “마지막 남은 실탄 한 발까지 다 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분을 다하겠다는 “우리 윤총장”을 토사구팽시킬 것인가. 그럴 생각이 없다면 직접 “없다”고 딱부러지게 밝혀야 할 것이다.
 
진보 집권세력은 치부를 가리기 위해 검은 것을 희다고 주장하는 ‘라쇼몽’ 상황을 만들고 있다. 속으로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려 하느냐”며 윤석열을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공화국의 공법은 사사로운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정의도 중요하지만 법치도 중요하다. 법치를 무시하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공화국의 출발점을 부정하는 반역이다. 이 정권의 도에 넘친 검찰 흔들기는 사법방해다. 닉슨과 클린턴에 대한 탄핵소추의 결정적인 사유도 사법방해였다. ‘대학살’ 인사로 검찰 수사를 불능 상태로 몰아가는 건 비이성적 자살 행위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을 상대로 투쟁했던 시대에는 기득권에 기울어진 실정법을 존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가 이뤄졌고, 자신들이 벌써 세 번째로 집권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법치가 실종되면 독재국가, 아니 왕조국가로 퇴행한다. 독재라면 신물이 나는데 좌파독재까지 견뎌야 하는가. 이젠 탐욕을 버리고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해 법치를 세워야 한다.
 
추미애 장관은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다. 진중권 교수는 그에게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한 건 당신들이다. 바로 당신들이 도둑”이라고 말했다. 이 정권이 정의의 편이니 어떤 일을 저질러도 용서된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다. 법치가 서고,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해야 정권은 정당성을 갖는다. 보수에 이어 진보마저 몰락하는 순간이 어른거린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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