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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노무현 “통치철학 따라야”…송광수 “참 어려운 일 많겠구나”

중앙일보 2020.01.13 00:49 종합 26면 지면보기

또 도진 법무장관·검찰총장 충돌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인사 문제로 충돌했다.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의견개진) 명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고, 윤 총장 측은 ’제대로 된 협의가 아니어서 불응했다“는 입장이다.[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인사 문제로 충돌했다.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의견개진) 명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고, 윤 총장 측은 ’제대로 된 협의가 아니어서 불응했다“는 입장이다.[뉴스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헌법 1조 1항은 규정한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며(민주), 자유와 인권 등 공공선(公共善)을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로 운용되는 체제(공화)라는 선언이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공화주의 핵심 원리이며 오늘날의 정치 현상은 그 원리를 따르거나 구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17년 전 청와대·검찰 갈등의 재연
‘민주적 통제’와 ‘정치 중립’ 평행선
갈등 불완전 봉합한 검찰청법 34조
인사권 보복용으로 사용되면 안 돼

검찰 인사를 놓고 맞붙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공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십수 년 주기로 반복된다면 역사의 퇴보가 아닐 수 없다. 윤 검찰총장의 ‘수족을 잘랐다’는 평가를 받는 검찰 인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둘로 나뉜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막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침해하는 것인가, 아니면 절제의 미덕을 모르는 무소불위 검찰에 인사권으로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것인가.’ 동시에 이런 의문이 따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 중 무엇이 사회에 더 필요한 ‘공공선’이며 다수를 위한 길인가 하는 것이다.
 
선뜻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동안 정치권력과 검찰권이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 충돌하거나 야합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17년 전인 2003년 노무현 정부 1년 차 때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대립 구도와 유사하다. 갈등의 진원지가 된 검찰청법 34조 1항(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도 그때 탄생했다. 과거의 현장에 어쩌면 현재의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17년 전 역사를 되짚어 봤다.
  
2003년 대립 구도와 유사
 
강금실(左), 송광수(右)

강금실(左), 송광수(右)

2003년은 검찰의 격변기였다. 정권을 잡은 노무현 정부에도 마찬가지였다. 검찰권에 국민의 참여와 통제를 강화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계획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해 2월 25일 취임한 노 대통령은 강금실 법무장관을 지명하고 3월 9일 ‘검사와의 대화’를 감행했다. 검사들은 파격 인사에 반발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고 검찰 인사와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이 “다른 대통령들이 다 행사한 인사권을 왜 나에게만 행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느냐”고 한 말에서 당시의 갈등 구조가 엿보인다. 정치권력은 개혁 대상인 검찰이 개혁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항명하는 것으로 확신했다. 반면,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무시하는 권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명분으로 맞섰다.
 
공교롭게도 그해 1월 여소야대였던 국회의 정치개혁 특위는 국회법을 개정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도입했다. 당시 다른 권력기관장(국정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와 함께 처음 시작됐다. 입법 취지는 “국회의 대정부 통제 기능 강화”였다.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보수 야권의 목소리가 반영된 제도였다. 사상 첫 검찰총장 인사청문회(3월 28일)에 임한 송광수 총장은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는 등의 소신 발언으로 노무현 정부와 다른 의견을 보였다. 청문회 이후 임명장을 받을 때 송 총장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다. 그가 2009년 한 인터뷰에서 전한 내용은 당시 청와대와 검찰의 미묘한 기류를 보여 준다.
 
▶노 대통령 = “검찰총장이 높다 해도 대통령 밑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따라야 합니다.”
 
▶송 총장 = “….”
 
▶노 대통령 = “국민이 가장 위에 있고 그 다음에 대통령이 있고 총장은 그 밑에 있습니다.”
 
▶송 총장 = “네, 맞습니다.”
 
▶노 대통령 = “그렇기 때문에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따라야 합니다.”
 
송 총장이 이후 고개를 숙이고 있자 당시 배석한 강금실 법무장관이 분위기를 전환했다고 한다. 송 총장은 “앞으로 참 어려운 일이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요구한 것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일맥 상통한다.
 
‘의견 개진’ 입법에 청와대 비상
 
검찰을 통제하는 방법은 대통령의 인사권이었다. 그러나 법무부와 대립한 검찰은 인사협의권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검찰청법 34조 1항의 ‘총장의 의견 개진’ 절차는 2003년 12월, 갈등을 불완전하게 봉합한 결과였다. 당시 협상 과정을 잘 아는 검찰 인사는 “검찰은 ‘협의하여야 한다’를 요구했고,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로 절충안을 냈다. 격론이 벌어졌고, 의견이 수렴되기는 했다. 최종안은 국회 법사위에서 위원장 대안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법무부는 겉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인사 협의 조항이) 총장의 권리 형식이 아닌 장관의 의무 형식으로 바꾸는 선에서 타협했다”고 말했다.
 
16대 국회에 계류된 6건의 검찰청법 개정안이 법사위원장 대안으로 합쳐졌다. 당시 한나라당의 김기춘 의원(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이었다. 야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검찰총장의 인사권을 강화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검찰총장에게 검사 인사권을 주자는 법안을 발의한 안상수 전 의원은 “34조 1항은 검찰 인사에서 정부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견제하고, 준(準) 사법기관인 검찰의 입장을 존중해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대검찰청에 검찰 고위 간부로 있었던 원로 인사는 “법사위에서 결정된 조문에 청와대가 비상이 걸렸다고 들었다. 검찰이 정치권에 로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인사 문제로 삐걱대니까 결국 정치적 타협안으로 만든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법사위 회의록에 그런 정황이 담겨 있다. 함승희 법안심사 제1소위원장이 “법무장관의 검찰 인사권을 통한 검찰 견제기능을 중시해서 검찰총장에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만 부여하면 충분하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대목이다.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갈등
 
17년이 지나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충돌했다. 법무장관과 여권은 “검찰총장이 (의견을 개진하라는) 법무장관의 명을 거역했다”는 입장이다. 인사 당일 오전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장관실로 나와 달라고 요청했으나 윤 총장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인사위원회를 30분 앞두고 검찰총장을 호출하는 것은 요식 행위일 뿐 제대로 된 인사 협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 인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는 꼬일 대로 꼬인 상태다. 2003년 말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 법무부에서 검찰청법 34조 1항을 실무적으로 검토한 내용에는 지금의 갈등이 이미 예견돼 있다. 당시 법무부는 “구체적 절차, 효력 등에 관한 상세한 규정 없이 관행을 확인하는 차원의 선언적 규정만 둔다면 법규화의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법규 해석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만 가중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인사 발표 전 최종 단계의 구체적 인사에 대한 의견 청취는 상징적인 면을 감안해 장관이 직접 총장을 만나서 듣는 것이 적절하며, 서면으로 의견을 받는 것은 내용 공개 시 조직 내 불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검토까지 했다. 지금보다 성숙해 보이는 고민의 디테일이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의 형식적 대립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윤 총장은 한 시민단체에 의해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됐고, 추 장관은 자유한국당과 보수 변호사 단체에 의해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검찰이 하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과도했는지, 대통령의 인사권에 수사 방해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다. 각자의 명분이 얼마나 공정했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원로 법조인은 “장관과 총장이 다투면 법무부가 이기게 돼 있다. 검찰의 강력한 수사권을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으로 견제하는 작동 원칙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공정한 룰에 의한 게 아니라 보복성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 복수나 보복은 비민주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검찰청법
제34조(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 ①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 
②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에는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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