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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의 과학 판도라 상자] 신종 감염병과 시작하는 새해

중앙일보 2020.01.13 00:28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기흥 포스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김기흥 포스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인간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살 수 없다. 이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면서 짊어져야 했던 운명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인간이 문명을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밀도가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를 한 공동체가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질병의 확산이다.
 

교통 발달로 질병 확산 쉬워져
중국 신종 폐렴에 WHO 비상
질병 데이터 공유·공조 급선무
국제 협력이 감염병 통제의 기반

새해 벽두부터 갑자기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아졌다. 몇 차례 지구 반대쪽을 오고 가면서 매번 열 시간 이상을 좁은 공간에 갇혀 자리를 지켜야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게다가 옆 자리에 독감환자가 앉았다면 그 여행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상황에서 재채기로 쏟아져 나오는 바이러스를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행기 내부 공기의 건조함은 바이러스의 전파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물론 비행기에 설치된 고성능 필터로 공기를 여과하면서 먼지나 미세입자를 걸러낼 수 있지만 여전히 바이러스와 같은 작은 입자는 쉽게 필터를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비행기 내부공기의 절반은 재순환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최첨단 교통수단인 비행기가 지난 2002년 사스(SARS)로 알려진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 광동지역에서 시작된 이 질병은 짧은 시간 안에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캐나다로 전파되면서 세계적으로 775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5년 한국에 확산되면서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중동호흡기중후군인 메르스(MERS)도 중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감염된 한 명의 환자가 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는 편리함은 인간에게 큰 혜택이지만 동시에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게는 새로운 확산의 기회가 된다.
 
새해 벽두부터 세계보건기구(WHO)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새로운 종류의 폐렴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59명이 이 미스터리한 질병에 감염되었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했다. 아직 과학자들은 이 폐렴이 인간 사이의 감염의 결과인지 아니면 어떤 매개 동물에 의해 확산된 것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보건당국은 이 폐렴이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에 의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이다. 이 바이러스는 사스나 메르스를 일으킨 원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일반적인 바이러스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일생에 걸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자연스럽게 치유되기도 한다. 이 병원체는 인간에게 감기를 일으키는 200여종의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쉽게 안심할 수는 없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나 어린이 그리고 노인들에게는 합병증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항생제는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기저 질환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들이었다. 이번 겨울은 독감이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폐렴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거나 사람들 사이에 쉽게 감염을 일으킨다면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바뀔 수 있다.
 
비행기를 여러 차례 갈아타면서 인천과 홍콩 그리고 파리 공항의 방역담당자들의 긴장한 모습에서 질병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과 수고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사스가 확산될 때 중국 당국이 질병 데이터를 늦게 공개하면서 초기에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신종 폐렴에 대한 데이터의 신속한 공유와 국제적인 공조 방법의 마련이다. 감염병은 이제 한 국가의 국경 안에 안주하지 않는다. 곧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구정이 다가오면서 감염병이 국경을 넘을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국제적 협력이 신종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출발점이다. 긴 여행으로 독감을 얻었지만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의 확산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기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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