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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국에 계신~” 국민 목소리 떠났다…임재범·손지창이 아들

중앙일보 2020.01.13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1966년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임택근(왼쪽)이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김기수 선수를 인터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1966년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임택근(왼쪽)이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김기수 선수를 인터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라디오도 귀하던 1950~60년대 이장집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목소리가 있었다. 1956년 처음 중계된 호주 멜버른 올림픽 때 박진감 넘치는 말투로 우리 선수단 활약을 생생하게 옮겼다. 66년 실향민 출신 김기수가 장충체육관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무적 복서 니노 벤베누티를 상대로 첫 세계챔피언(WBA 주니어미들급)을 따냈을 때 국민을 대신해 목청껏 환호했다.
 

‘아나운서 전설’ 임택근
스포츠 캐스터로 원조 방송스타
최초로 MC이름 넣은 토크쇼 진행
이승만 “임 변사 보러왔소” 찾기도

‘원조 방송스타’ ‘아나운서계의 전설’로 불린 임택근씨가 11일 별세했다. 88세. 12일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0월 심장 문제로 입원했다가 11월 뇌경색 진단을 받고 폐렴 등 합병증으로 투병했다.
 
그는 특히 스포츠 캐스터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로마·도쿄·멕시코 올림픽 등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한 방송은 이국땅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축구월드컵 때 개막전과 한국 대 폴란드전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대화 중인 임택근(맨오른쪽). 이 대통령은 임택근을 ’임 변사“로 불렀다. [유튜브 캡처]

이승만 대통령과 대화 중인 임택근(맨오른쪽). 이 대통령은 임택근을 ’임 변사“로 불렀다. [유튜브 캡처]

1932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난 그는 연희대학교(연세대 전신) 정치외교학과 1학년 재학 중이던 1951년  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했다. 미성(美聲)에 수려한 외모, 열정에 힘입어 20대 중반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스무고개’ ‘노래 자랑’ ‘퀴즈 열차’ 등을 진행했는데, 그의 당직 날 유명 요정 주인들이 앞다퉈 야식을 배달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4·19 땐 대학생 시위대가 면담을 요구한 사람이 방송국 사장이 아니라 임택근 아나운서였다는 얘기도 있다.
 
1964년 문화방송(현 MBC)으로 이적, 69년 최초의 아침 토크쇼 ‘임택근 모닝쇼’를 맡았다. MC 이름이 들어간 첫 사례였다. 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상대는 신민당 김상현이었다. 이후 문화방송 및 경향신문사 사장직무대행,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지냈다. 2008년 낙상사고 뒤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2008년 『아나운서 임택근』을 펴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송인 첫 팬덤을 몰고다녔을 정도로 한국방송사의 기린아 같은 분”이라며 “사고 후 휠체어 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식사 약속 땐 미리 자리잡고 앉았다가 사람들 다 보낸 후에야 움직였다. 자존심과 자기 관리가 강했다”고 돌아봤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임택근은 역대 대통령들과 인연이 깊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차로 남산을 넘어가다 KBS 사옥을 찾아 “임 변사 보고 싶어 들렀소”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단다. 이 대통령 월남(베트남) 방문 후 귀국 중계 땐 “활주로에 대통령 비행기가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실수로 “지금 대통령이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고인은 ‘국가원수 모독 아니냐’며 질책당한 뒤 시말서를 썼다고 훗날 털어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인에게 집요하게 정치를 권유했다고 한다. 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자신을 부른다는 연락에 MBC 국제가요제 전야제를 핑계대고 피한 그는 그해 7월 사표를 내고 방송계를 떠났다.
 
임재범

임재범

손지창

손지창

가족사는 다소 복잡했다. 고인이 혼외로 둔 두 번째, 세번째 가정에서 난 아들이 각각 가수 임재범과 배우 손지창이다. 2001년 손지창씨가 언론에서 “임택근씨가 나의 생부이며, 임재범씨가 이복 형”이라고 밝히며 대중에 알려졌다. 2011년 임재범은 방송에 출연해 고인을 거론하며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 뵐 때가 된 것 같다.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했다. 영상편지에선 “제가 아버지께 채찍 든 이유는 제 아버지여서다. 실수한 거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한 건 아니다. 먼저 지창이한테 눈물로 사과해보라. 그렇지 못하면 손자들에게라도 하라”고 했었다. 가족사 공개 뒤 삼부자는 교류하며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도 주변에 ‘두 아들이 겪은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고인은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예정), 장지는 용인 천주교회다. 상주는 임재범이다. 가족들이 빈소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가운데 손지창과 그의 부인 배우 오연수도 빈소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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