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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다 실수땐 공격"···'웅앵웅' 논란으로 본 아이돌 잔혹사

중앙일보 2020.01.12 08:00
트와이스(TWICE) 지효. [뉴스1]

트와이스(TWICE) 지효. [뉴스1]

“아이돌은 때리기 좋은 대상이다. 마치 함정에 빠지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항상 감시하다가 기회가 포착되면 달려들어 공격한다.”
 
최근 걸그룹 트와이스 지효(박지효ㆍ23)의 ‘웅앵웅’ 발언 논란이 이어지자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이돌은 항상 표적이 돼 있는 상황이다. 유명 스타를 공격하고 물어뜯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면서 “구실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하는데 당하는 사람의 고통은 신경 쓰지 않고 쾌감만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은 5일 지효가 팬들과의 라이브 채팅에서 최근 한 가요 시상식 무대에 오르지 않은 것과 관련해 “관종 같은 분들이 ‘웅앵웅’ 하시길래 말씀드리는데, 그냥 몸이 아팠다”고 발언하면서 시작됐다. ‘웅앵웅’은 '아무말이나 중얼거리는 소리'라는 뜻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행어인데,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라는 의견과 남성 혐오 용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웅앵웅’이라는 단어가 여초(여성 사용자가 남성보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종종 사용된다며 지효가 남성을 비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효는 7일 트와이스 팬 페이지에 “어제 채팅으로 어쩌면 원스(트와이스 팬)분들도 상처받고 실망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다”면서 “사람들 앞에 서고 말 한마디, 무대 한번 하는 게 많이 두렵고 힘들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점차 논란은 가라앉는 듯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단 지효 한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 문제가 터지면 특정 연예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는데 아이돌 산업 전반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프로듀스X101 그 후… 

Mnet ‘프로듀스101’ 제작발표회. [뉴스1]

Mnet ‘프로듀스101’ 제작발표회. [뉴스1]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건 대중이 아이돌을 보는 시각이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최근 아이돌을 상품화해서 보는 시각이 강해진 것 같다”면서 그 예로 한 음악 방송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프로듀스X101’을 들었다. 최근 투표 조작 논란으로 제작진이 구속된 ‘프로듀스X101’은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이 시청자로부터 투표를 받아 최종 순위 11위까지 데뷔 기회를 갖는 포맷이다.  
 
성상민 평론가는 “2016년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대중이 직접 표를 주고 나서서 홍보도 해주는 형식이라 팬들과의 애착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그렇게 해서 된 아이돌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봤다. 또 “이렇게 지지해주고 앨범을 사는 만큼, 팬들에게도 그만한 대가가 돌아와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시각이 커졌다”고 했다.
 

사생활 공개해 인기 얻는 아이돌 산업, 그 뒤엔

[사진 네이버 V앱]

[사진 네이버 V앱]

아이돌 산업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아이돌의) 사생활을 팔아서 자본을 축적하는 산업 구조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연예인을 이웃처럼 친근한 존재로 인식한다”면서 “친밀도가 높을수록 악플이 심해진다. 아이돌과 팬이 실제 언니·오빠 관계가 아닌데도 그런 식의 친밀도가 형성된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부터 개인방송 앱으로 활동해 현재 120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다른 인기 아이돌 역시 자신의 일상과 활동 영상을 제작해 팬들에게 제공하며 소통을 늘리고 있다.
 
이 교수는 “가상의 친밀도를 높이는 과정인데, 이에 몰입하다 보면 가상이 현실을 압도한다. 결국 일부 팬들은 해당 연예인이 내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즉석에서 이것 저것을 하다 보면 사람이니까 당연히 실수하게 되는 건데 꼬투리를 잡고 낙인을 찍으며 공격이 이어진다”고 했다. 실제 지효뿐 아니라 인기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도 앱으로 팬들과 실시간 소통을 하다가 욕설 논란이 이어져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기획사는 통제에 올인"

트리플H 이던과 현아(오른쪽). [뉴스1]

트리플H 이던과 현아(오른쪽). [뉴스1]

아이돌 잔혹사라 불릴 만큼 논란은 이어지고 있지만, 기획사나 방송사 등은 아이돌을 통제하는 데만 힘을 실을 뿐 근원 문제 개선에는 눈 감고 있단 비판도 있다. 성상민 평론가는 “가장 빠른 해결책은 기획사가 아이돌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용을 자제시키는 것이다. 최대한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발언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통제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수 현아와 이던이 열애설이 난 뒤 기획사는 곧장 이들을 퇴출했던 전례가 있다. 오히려 기획사들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질적으로 이들의 권리를 개선하는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김성수 평론가 역시 “아이돌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긴 시간 경쟁에 시달린다. 일반인들은 다양한 모임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은 합숙을 하면서 매일 매일 평가받고 순위가 매겨진다”면서 “최근 대형 기획사에서는 심리 치료를 하고 정서 상담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다면 그 후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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