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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하면 보약 먹는 기분" 아흔의 봉사왕 서두연 할머니

중앙일보 2020.01.11 05:00
67년. 어쩌면 한 사람의 생애와 맞먹는 세월이다. 기나긴 시간 소중한 몸짓으로 타인을 위한 삶을 실천한 이가 있다. 아흔의 서두연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서두연 할머니는 열일곱에 일본에서 경남 마산으로 시집와서 힘든 시절을 지냈다. 스물네살부터 농촌지도소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재봉틀로 옷 만드는것을 배워 나눔을 이어갔다. 서 할머니는 한 해에 약 1500벌의 몸빼바지를 만들어 시설 등에 기부하고 있다. 서 할머니가 집이자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몸빼바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두연 할머니는 열일곱에 일본에서 경남 마산으로 시집와서 힘든 시절을 지냈다. 스물네살부터 농촌지도소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재봉틀로 옷 만드는것을 배워 나눔을 이어갔다. 서 할머니는 한 해에 약 1500벌의 몸빼바지를 만들어 시설 등에 기부하고 있다. 서 할머니가 집이자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몸빼바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드르륵~ 드르륵~”
 
유난히 해가 짧은 겨울날의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어느 작은 아파트는 드르륵거리는 재봉틀 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구부정한 뒷모습의 서두연 할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무늬 몸빼바지를 만들고 있었다.
서 할머니가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본을 이용해 재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가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본을 이용해 재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는 2년전에 새 재봉틀을 기부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구형 재통틀로 옷을 만들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는 2년전에 새 재봉틀을 기부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구형 재통틀로 옷을 만들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는 1929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났다. 독립자금을 조달했던 할아버지로 인해 가족은 항상 쫓기는 삶을 살았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핍박이 심해졌다. 열일곱의 서 할머니는 한국말 한마디 못하는 채로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마산으로 시집을 오게 된다.  
 
“단발머리라 비녀도 제대로 꽂지 못하고 결혼식을 올렸어. 요즘 말로 하자면 내가 다문화 가정 1호야. 말도 안 통하는 집에 시집을 왔으니”  
 
서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시할머니·할아버지부터 시부모, 시삼촌, 서 할머니 부부까지 모두가 단칸방에서 이불 하나를 같이 덮고 잤다. “이불이 그런데 옷이라고 더 있을 수가 있겠어. 한 벌을 계속 빨아 입으면서 살았지” 빨래라도 하는 날이면 이불 아래로 몸을 감추기에 바빴다. 부뚜막 솥뚜껑에 피어오르는 열기가 건조기였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가난은 서 할머니에게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피어났다. 전쟁이 수습되고 얼마 되지 않아 농촌 마을은 주민 간 조직력을 강화해 새롭게 일어서려 했다. 서 할머니의 나이 스물네살. 농촌지도소 생활개선회장으로 가가호호 필요하다는 곳에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우리 집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는데 뭣도 모르고 남들 돕기부터 시작한 거지” 부모 없는 고아들은 입양 보내고 홀로 남은 노인들을 돌봤다.  
서 할머니의 주름진 손.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의 주름진 손. 장진영 기자

 
삯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조끼 하나 만들어주고 품삯으로 3원을 받던 때였다. “30대가 되니 전국에 새마을운동이 퍼지더라고. 농촌지도소에서 처음 재봉질을 배웠는데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재봉틀 앞에 앉아 밤새 옷을 만들었다. 소중한 세금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었기에 꼭 나누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누가 대구 가면 옷감이 싸다고 하더라고. 거기서 사다가 옷을 만들었어. 팔려고가 아니라 나눠주려고 재봉질을 시작한 거지” 당시 복지시설 등에서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옷감 살 돈이 부족해 헌 옷을 수거하고 깨끗하게 빨아 새 옷감을 추가해 옷을 만들었다. “그 설움을 내가 알잖아. 그냥 다른 사람들이 편하고 따뜻한 옷 한 벌 입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야”
 
할머니의 살림살이도 팍팍할 때였다. “삯바느질, 생선장사,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어. 애들 키워야지…. 옷 만들어서 나눠줘야지…. 쉴 수가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봉사활동의 밑천을 마련할 일을 시작하게 됐다. “동네에 초상난 집 도와주다 보험사에 취직하게 됐어” 보험금 수령을 도와준 게 계기였다. 우연히 보험설계사를 권유받아 시작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서 할머니에게만 보험을 가입하려고 했다. “머리 위 쟁반에는 생선을 이고, 등에는 보험가입 서류를 지고 장사를 다녔어. 생선 팔면서 보험도 팔았지. 1986년에 첫 월급 30만원 받았는데 그냥 써버리면 안 될 거 같았어” 받은 돈으로 옷감을 먼저 샀다. 이튿날이 되니 더 많은 사람이 할머니에게 보험에 가입하려 찾아왔다. “덕분에 보험왕도 몇 번 하고 26년 동안 보험판 돈으로 옷감 살 걱정 안 하고 살았어” 그리고 서 할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 시집와서는 사는 게 너무나 힘들어서 모진 생각도 했었지. 사람들을 도운 게 나를 살린 거라 생각해. 베풀며 사는 거. 그게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증거잖아”
서 할머니와 이웃 주민들이 기부물품을 월영동 주민센터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 서두연]

서 할머니와 이웃 주민들이 기부물품을 월영동 주민센터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 서두연]

서 할머니가 조직한 마산합포할머니 봉사대는 옷 나눔 이외에도 독거노인 돌봄, 지역 재해복구 등에도 동참하고 있다. [사진 서두연]

서 할머니가 조직한 마산합포할머니 봉사대는 옷 나눔 이외에도 독거노인 돌봄, 지역 재해복구 등에도 동참하고 있다. [사진 서두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느꼈다. 지난 1995년부터 마산합포할머니 봉사대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 할머니 봉사대는 평균 연령 70이 훌쩍 넘는 전국 최고령, 최장활동 봉사대로 서 할머니를 중심으로 재봉틀 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서 할머니 집에 모여 주로 ‘몸빼바지’ 만든다.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으면서도 화려한 모양이 입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할머니 봉사대는 옷 만드는 일 외에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서 할머니의 집은 나눔할 옷들로 가득하다. 주변에서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필요한만큼 나눠준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의 집은 나눔할 옷들로 가득하다. 주변에서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필요한만큼 나눠준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청와대 열린 제8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서두연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청와대 열린 제8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서두연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 할머니는 한 해에 약 1500벌의 옷을 만들어 나눠준다. 바지 하나에 옷감 두 마가 필요하고 고무줄 같은 부자잿값까지 합치면 원가만 12000원이 넘게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비용은 서 할머니가 부담하고 있다. 8남매가 주는 용돈과 비상금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부자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베푸는 거에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지만, 옷 나눠주고 나면 보약 먹는 기분이 들어” 오랜 봉사활동으로 지난 2008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포장, 2019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서 할머니는 67년간 기부를 했어도 아직도 아쉬운점이 많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서 할머니는 67년간 기부를 했어도 아직도 아쉬운점이 많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아깝다고 생각하면 못하는 거지. 내어주는 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아” 서 할머니는 재봉틀로 베풂을 잇고 있었다. 꽉 찬 아흔을 넘긴 서 할머니의 고민은 시간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급해. 도와줄 사람들이 많은데, 나눠주고 싶은게 많은데 더 해주지 못할까 봐 그게 걱정이야”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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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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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