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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나라다운 나라

중앙선데이 2020.01.11 00:28 669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확실한 변화’. 올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말이다. ‘나라다운 나라’. 이 대목에서 좀 뜬금없지만 사소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최근 반짝 이슈가 됐던 ‘닭강정 33만원’ 사연이다. 개인적으론  ‘도대체 이 나라, 이 나라 언론은 왜 이렇게 됐을까’ ‘나라다운 나라는 어때야 할까’에 대해 잠깐 고민하게 했던 사연이어서다.
 

‘닭강정 33만원’ 청년 빚의 그늘
청년들, 빚 내려 범죄에 손대는데
정부·금융권, 관심도 의지도 없고
언론은 제대로 조명 못 하는 나라

이 사연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한 청년을 괴롭히려고 닭강정 33만 원어치를 바가지 씌웠다’는 내용이 실리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폭 피해가 아니라 대출 알선업자를 통해 소위 ‘작업대출’을 받으려다 포기한 청년에게 알선업자가 앙갚음하려고 닭강정 덤터기를 씌웠다는 얘기였다.
 
사연 자체보다는 이후에 쏟아진 논란들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이 사연을 앞다퉈 보도했던 언론들은 팩트가 뒤집히자 온라인 정보를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남의 말 하듯 다뤘다. 또 이런 보도 행태가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진짜 뉴스처럼 만드는 일부 매체들 때문에 생겼다는 식의 ‘기승전 정권탓’도 빠지지 않았다. 한데 많은 말들이 쏟아졌지만, 이 사건 이면의 본질적 문제를 제대로 조명하는 언론은 없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우리나라 ‘청년 빚’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 청년이 시도했던 작업대출이란 대출 브로커가 직장 없는 청년에게 가짜 재직증명서를 만들어주고, 금리 25% 안팎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준 뒤 알선수수료로 절반 정도를 떼어가는 대출기법이다. 신용도가 낮은 청년들이 급전을 구하기 위해 제2금융권에서 빚을 얻는 가장 고전적인 대출 사기 형태다.
 
이런 현실을 그렸던 영화 ‘원라인’의 제목을 빌어 ‘원라인대출’이라고도 불린다. 한데 이 원라인을 타게 되면, 급전 100만원이 필요한 청년이 브로커 수수료 등을 포함해 최소 2000만~3000만원을 빌려야 한다. 그렇게 청년은 순식간에 수천만 원대의 빚더미 위에 앉게 되고, 동시에 사문서위조와 사기죄 공범이 된다.
 
선데이 칼럼 1/11

선데이 칼럼 1/11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질이 나쁜 브로커들 손에 들어간 개인정보는 추가범죄로 이어진다. 개인정보를 이용해 할부로 휴대폰을 개통한 뒤 기계를 팔아버리는 ‘휴대폰깡’을 하는가 하면 최근엔 ‘자동차’까지,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이 소위 ‘깡’의 대상이 된단다. 개인정보를 제공했던 청년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빚으로 떠안게 되는 2차 피해에도 노출된다. 그런가 하면 이를 따지는 피해자를 납치·감금·협박하는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런 피해가 잇따르면서 2년 전엔 시민단체들이 인터넷에서 원라인대출 광고 등을 중지하고 키워드 검색이 안 되도록 해달라고 금융감독원 앞에서 줄기차게 시위를 했었다. 그 후 국내 포털에선 키워드 검색이 금지됐다. 그게 전부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이나 중앙정부·검찰·경찰은 ‘일관성’ 있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최근 한 외국계 SNS 사이트에서 ‘급전’이라고 검색했더니 관련 불법대출 정보가 20만 개나 뜨더라”고 했다.
 
그는 “이런 범죄적 대출수법이 학습·강화의 과정을 거쳐 이젠 체계화·고도화되고 있다”고 했다. 작업대출의 다단계화가 진행 중이란다. 작업대출을 해본 청년들이 다른 청년들을 끌어들여 피라미드 형태로 세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전이 필요했던 청년들이 빚쟁이, 피해자, 우발적 공모자에서 스스로 범죄의 주체로 변모 중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위 실신(실업+신용불량자)세대 청년들이 너무 쉬운 범죄의 길에서 ‘새로운 생존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청년기엔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인생의 수렁인지도 모르고 돌진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젊은이를 기르는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실수와 무모함을 흡수하고 완충해주는 장치가 작동되고, ‘나쁜 길’의 입구에선 경고사이렌을 계속 울려줘야 한다. 실수가 올가미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범죄형 해결책이 사소해지는 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절약하라는 질책도 해결책이 아니다. 잘 사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는데 이미 사회는 ‘일자리 없는 고비용구조’이고, 이런 사회에 사는데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빚을 지는 청년들의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 나라가 할 일은 청년들이 필요한 만큼만 빚을 지고 갚을 수 있는 금융구조를 만드는 등 제도권 안으로 끌어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런 실태를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는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검찰과 붙어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정권은, ‘정권심판론’ 외엔 대안이 전무한 보수 진영은, 이런 ‘무뇌아적 정치’ 중계에 몰입해 있는 언론은 이런 민생의 실정에 관심은 있는 걸까. 이런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지난해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가는 평범한 국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지켜졌던가. 그럼에도 올해의 메시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확실한 변화’에 베팅하고 싶다. 공직자는 국익에 헌신하고, 시민들은 선량하게 살아도 손해 안 보는 나라. 내가 그리는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을 기대하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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