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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장벽을 넘어, 국민의 시간으로

중앙선데이 2020.01.11 00:24 669호 31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새해 벽두부터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다. 지난 5일(현지시간)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봉 감독은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비영어권에도 좋은 영화가 얼마든지 있음을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 심장부에서 짧고 위트 있게 웅변한 셈이다. 영어 인터뷰도 곧잘 하는 봉 감독이지만 “나는 외국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며 이 메시지는 우리말로 전해 더욱 화제가 됐다.
 

한국 정치, 유권자에 일차적 책임
‘그들만의 시간’에 종지부 찍어야

장벽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념·계층·세대·젠더·지역·노사의 장벽이 한국 사회에도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기생충의 반지하방이 풍자한 것도 빈부 격차의 장벽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처럼 중첩되고 왜곡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야 할 정치는 장벽을 넘어 철옹성이 돼 있지 않은가. 1인치(2.54㎝)의 장애물 대신 소통과 화합을 모색하긴커녕 되레 10m짜리 증오의 넘사벽으로 키워온 게 한국의 정치 아니었던가.
 
문제는 이를 비단 정치인의 문제로 재단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2008년 18대 총선 이후로도 현역 의원은 여야 모두 20%에서 많게는 절반 가까이 물갈이됐다. 20대 국회 초선 의원 비율도 44%나 된다. 그런데도 정치판은 바뀐 게 없이 옛 모습 그대로다. 그렇다고 이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구시대적 정치 제도만 탓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을 뽑은 자는 바로 우리 유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리인을 잘못 고른 일차적 책임은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정보가 부족해서”라는 변명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정보 홍수의 시대에 올바른 취사선택이 중요해진 요즘이다. 화제의 영화 ‘두 교황’에서 교황 베네딕토 6세는 나이가 들면서 신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영적인 보청기를 껴야 할 것 같다고 고백한다. 올해 4·15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도 각자 정치 보청기의 볼륨을 높이고 출마자들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감별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도 가라지는 곡식과 함께 자라게 뒀다가 추수할 때 먼저 골라내 불사르라고 쓰여 있지 않나. 선거(추수) 때 정치꾼(가라지)을 골라내는 것은 오롯이 유권자의 몫이다.
 
영화 ‘천문’에서 세종대왕은 명나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신하들의 집요한 압박에도 길을 하늘에 물으며(천문) 그만의 길을 걸어간 끝에 한글을 창제해 냈다. 조선왕조 시대와 달리 오늘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의거해 유권자인 우리 자신에게 길을 묻게 돼 있다. 쇼펜하우어도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고 경고하지 않았나. 정치와 권력도 마찬가지다. 그 끝없는 갈증을 제어할 권한과 의무는 모두 국민에게 있다.
 
검사가 기소하는 순간 검찰의 시간은 가고 법원의 시간이 오듯, 선거철이 도래하면 정치인의 시간은 가고 유권자의 시간이 오는 게 세상 이치다.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평소 국민은 안중에도 없던 정치 기득권층이 4년 만에 갑에서 을로 자세 전환을 하는 시기다. 이들이 4월 16일 “4년 더 우리만의 시간이 왔다”고 환호하는 모습을 또다시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나. 이제 ‘그들만의 시간’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진영 논리와 친소·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그 숱한 현실의 장벽을 넘어, 국민의 시간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할 때다. 정치 탓만 하기엔 국민에게 주어진 책임이 너무나 막중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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