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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피한 절벽의 소나무처럼, 새로운 생존능력 개발해야

중앙선데이 2020.01.11 00:21 669호 14면 지면보기

서광원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 1/11

자연 1/11

어느 정도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흔히 보는 풍경이 있다. 바위투성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다. 참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사는데, 왜 소나무들은 그런 곳을 놔두고 척박하고 위태로운 곳에 살까?
  

소나무 등 침엽수의 조상 겉씨식물
발아율 확 높인 속씨식물에 밀려나

침엽수, 활엽수 옆에선 광합성 못 해
척박한 땅, 영하 40도 버티며 생존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난 IBM
서식지 옮겨 새 먹거리 찾아 번창

#우리가 사는 지구에 나무가 생겨난 건 4억년 전쯤이다. 양치식물이 그 시작이었는데, 3억4000만년 전쯤 이 양치식물 천하에 도전하는 나무가 나타났다. 씨앗이라는 혁신을 만들어 낸 침엽수의 조상 겉씨식물이었다.
 
이들은 물 근처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양치식물의 한계를 씨앗으로 극복한 경쟁력 덕분에 이후 2억여 년 동안 푸른 지구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번성은 언젠가 도전을 받게 마련, 지금으로부터 1억3600만년 전쯤, 공룡들이 지구를 활보할 때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경쟁자는 예전의 겉씨식물이 그랬듯 완전히 새로운 능력을 갖고 나타났다. 수정된 배아를 바깥에 노출시키는 겉씨식물과 달리 씨방이라는 안전한 ‘캡슐’ 안에 넣어 발아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잘 익은 과육을 여러 동물들이 먹게 한 다음,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다른 먼 곳에 뿌리는 색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속씨식물이었다. 겉씨식물이 어떻게든 아이를 많이 낳고 보자는 전략이라면, 이 새로운 경쟁자는 좀 적게 낳더라도 똘똘하게 잘 기르자는 쪽이었다. 더구나 대체로 잎이 넓어, 자랄수록 햇빛을 다 차지하는 활엽수라 주변에 있으면 광합성을 못해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경쟁력의 차이가 워낙 컸기에 속씨식물은 대세가 되었고 겉씨식물은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소나무나 전나무는 대표적인 겉씨식물 아닌가. 어떻게 된 걸까?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법. 겉씨식물은 경쟁력이 달리자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했다. 속씨식물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토양이나 기온이 낮은 곳을 개척한 것이다. 경영학에서 새로운 포지셔닝 전략이라는 용어를 쓰기 1억 수천만년 전에 말이다. 전략은 성공이었다. 우리가 보는 소나무나 전나무들이 척박한 곳이나 절벽 같은 곳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백산맥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춥고 바람 많은 곳에 살까 싶지만, 활엽수들이 자랄 수 없는 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기에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면 침엽수는 근근이 살아가는 변두리 신세가 되고 만 걸까?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보면, 북극에서 약간 내려 온 수목한계선 지역에 지구를 빙 둘러싼 푸른 띠가 있다. 북극권 끝자리에 자리 잡은 침엽수의 땅, 타이가 삼림지대다. 1만1000㎞나 되는 이 거대한 숲은 지구 나무의 3분의 1을 품고서 우리가 마시는 막대한 산소를 만들어낸다. 1년의 절반이 영하이고 겨울에는 영하 40를 넘나드는 곳이라 1년에 한달 정도 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그래서 묘목을 벗어나는 데 50년이나 걸리지만 남들이 개척하지 못한 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덕분에 지금도 거대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새로운 곳으로 먼저 가기만 하면 이런 나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을까? 새로운 포지셔닝은 장소만 옮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완전히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추위에 열을 덜 빼앗기는 바늘 같은 잎, 쉽게 얼지 않는 부동액, 척박한 곳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미생물(균류)과의 공생 같은 걸 침엽수가 만들어냈듯 말이다.
  
#소나무처럼 1억년 이상 살아오고 있는 장수 생명체를 들여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주변에 흔한 속새나 쇠뜨기, 개구리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엄청난 구력을 가진 주인공들인데, 속새와 쇠뜨기는 원시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양치식물이고, 개구리는 먼 옛날 번성했던 양서류다. 이런 원시적인 녀석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을까? 이유는 하나, 새로운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해온 덕분이다. 원시 생명체라고 생명력까지 원시적인 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원리가 살아 숨쉰다. 사포로 시작한 3M, 타자기 같은 사무용 기기로 시작해 컴퓨터를 만들다 지금은 컨설팅 및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난 IBM의 번성이 그렇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가 모바일과 클라우드로 서식지(주력시장)을 옮겨 새로운 번성을 시작하고 있고 말이다.  
 
뭔가 대단한 게 오는 것 같은 새로운 10년이 시작됐다. 새로운 시간은 새로운 능력을 필요로 한다. 올해 우리는 무엇으로 얼마나 새로워져야 할까? 생존의 이치는 언제나 같다. 새로워져야 살아남는다. 살아있음이란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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