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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신기해라, 사람 몸!

중앙선데이 2020.01.11 00:20 669호 21면 지면보기
바디

바디

바디
빌 브라이슨 지음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저자
빌 브라이슨의 신작 『바디』

이한음 옮김
까치
 
빌 브라이슨(69)의 마법이 다시 시작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알기 쉽고 흥미롭게 요리하는 그의 신기한 글쓰기 연금술 말이다. 이번에는 또 하나의 우주, 인간 신체에 도전했다.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분야라는 점에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한 2003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후속작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책은 본문만 500쪽이 넘지만 23개의 짧은 장들로 쪼개져 있다. 첫 번째 장 ‘사람을 만드는 방법’부터 빌 브라이슨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시장에서 구입할 경우 얼마가 들겠느냐는 문제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유인구다. 자신이 중학생일 때 생물학 선생님이 동네 철물점에서 사람 제조에 필요한 모든 화학물질을 5달러쯤이면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는 일화로 시작한다. 성숙해진 그래서 수십 년 전 생물 선생보다 시야가 넓어진 브라이슨은 영국 왕립화학협회의 엉뚱한 계산을 소개한다. 2013년 케임브리지 과학 축제에 맞춰 축제의 객원 감독이자 전형적인 성인 남성 몸집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드는 데 필요한 59가지 원소의 시장 가격을 협회가 따져본 결과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생물 선생의 계산은 턱없이 빗나갔다. 협회의 추산치는 9만6546파운드, 원화로 약 1억4800만원이다.
 
신체의 61%를 차지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산소 구입에 8.9파운드. 2.6%를 차지하는 질소는 27펜스. 14㎏을 차지하는 탄소가 컸다. 가격이 비싸 무려 4만7000파운드가 든다.
 
이런 나열 끝에 브라이슨은 선포한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환원하면 흔한 쓰레기 더미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불활성 성분의 집합일 뿐이라고. 나를 이루는 원소들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나를 이루고 있다는 점뿐이라고. 그게 바로 생명의 기적 아니겠냐고.
 
인간 두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월터 프리먼은 수술 자격이 없는 정신과 의사였는데도 얼음송곳을 눈구멍에 꽂아넣는 이마엽 절제술을 40년간 시술했다. 송곳을 마구 휘저어 신경 연결을 끊는 수술이었다. 사진은 시술 장면. [사진 까치]

인간 두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월터 프리먼은 수술 자격이 없는 정신과 의사였는데도 얼음송곳을 눈구멍에 꽂아넣는 이마엽 절제술을 40년간 시술했다. 송곳을 마구 휘저어 신경 연결을 끊는 수술이었다. 사진은 시술 장면. [사진 까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도 밝혔던 자명하지만 소중한 메시지인데 새 책의 영어 부제 ‘A Guide for Occupants’에도 실은 이어진다. ‘점유자 혹은 임차인을 위한 안내서’쯤으로 번역되니, 우리의 실체나 정체성이 결국 우주의 신비와 맞닿아 있는 생명의 영원한 순환 회로에 올라탄 임차인 신세 아니겠냐는 겸허한 생각을 드러낸다.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린 브라이슨의 새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책에 담긴 진기한 인체 지식, 책에서 바로잡은 잘못된 의학상식들에 초점을 맞추면 한도 끝도 없다. 그만큼 깨알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 가령 뇌는 촉각 자극이 어떤 느낌이라고 판단 내리기보다 어떤 느낌이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연인의 애무는 황홀한 반면 낯선 동성의 접촉은 징그러운 이유다. (26·27쪽) 걸을 수 있도록 진화하다 보니 인간 발목에는 아킬레스건이 있지만 다른 유인원에는 없다. (243쪽)
 
궁금한 부분만 발췌독할 수도 있겠다. 7장은 ‘우리 몸의 미생물’, 16장은 ‘잠’, 17장은 ‘거시기 쪽으로’, 그러니까 남녀의 성염색체, 생식기 차이 등을 살핀다.
 
책은 이런 깨알 지식의 집적을 넘어선다. 무지막지한 중노동에 시달리는 심장(7장), 인간의 걷고 뛰는 능력에 관한 대목(10장)을 읽다 보면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 인간 진화과정의 비밀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사는 앵글로필, 친영파다. 본질적으로는 에세이스트다. 문외한이다 보니 공부와 취재를 열심히 한 탓일까.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이어 이번 인체 도전에서도 성공한 것 같다.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을 쉽고 따듯하게 쓰기 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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