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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어르신께 점심 배달하고 ‘인생 선배’ 지혜 얻는다

중앙선데이 2020.01.11 00:20 669호 22면 지면보기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3〉 미국 ‘점심 먹자’

사진 위쪽. 사진작가 마크 세리거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촬영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사진 아래쪽. 밀즈온휠즈 ‘점심 먹자’ 캠페인 포스터. [사진 마크 세리거]

사진 위쪽. 사진작가 마크 세리거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촬영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사진 아래쪽. 밀즈온휠즈 ‘점심 먹자’ 캠페인 포스터. [사진 마크 세리거]

“오늘 뭐 먹을까?” “맛집이 어디지?” “그냥 배달시켜 먹어요”
 

밀즈온휠즈, 도시락 배달 봉사 66년
젊은층 참여 늘리려 점심시간 활용
안부도 건네며 고령사회 현실 눈떠

미국 2050년 노인 인구 현재 두 배
한국은 전체 인구의 40% 달할 듯
배달 음식 늘지만 노령층은 ‘사각’

‘먹는 문화’가 바뀌었다. 음식 서비스의 다양화, 1인 가구 증가로 가정간편식 선호에 따른 배송 서비스 발달은 배달시켜 먹는 문화를 일반화했다. 이런 시기에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또 하나의 먹는 문화가 있다. 시민사회와 국가가 관심 갖고 조성해 나가야 하는 과제 중 하나가 노인들의 먹는 문화다. 고령화 사회에서 직면하게 될 노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간단한 실천 중 하나가 도시락 배달 봉사다.
 
도시락 배달 봉사를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조직이 지난 66년간 가장 효과적인 사회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밀즈온휠즈(meals on wheels)다. 195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이후 지역 사회 노인들이 자기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공공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배고픈 노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밀즈온휠즈는 가장 취약한 노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안부를 묻는 활동이다. 전국적으로 5000여 곳에서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 재정지원 등을 기반으로 봉사 활동을 한다.
  
풍부한 경험의 어른들 만나 교감 확대
 
노인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 제공 및 고독사 예방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활동에 참여하는 봉사자인 밀즈온휠즈 드라이버(meals on wheels driver) 240만 명 중 약 75%가 55세 이상으로 자원봉사자도 고령화되고 있다. 오히려 현시점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봉사 활동임에도 젊은이들에게 밀즈온휠즈는 단지 식사를 배달하는 전통적인 봉사 활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7월 ‘점심 먹자(let’s do lunch)’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젊은 층의 봉사 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획된 이 캠페인은 단순히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려고 했다. 캠페인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지역 사회 노인들에게 식사와 친근한 인사를 전해 세대 간 교감을 위한 봉사 활동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일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더 나아가 필요에 따라 봉사자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늘 똑같은 점심시간이 아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젊은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봉사의 기회를 제공했다.
 
배를 채우기 위해 점심을 먹는 게 아니라 점심을 배달하고 경험과 지혜로 마음과 머리를 채워 보자는 취지다. 점심시간을 활용하되 최대 90분의 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 활동 자체에 어떠한 강제 규정이나 규칙도 없어서 봉사자의 상황에 맞게 활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요리 및 식사 보조 활동을 제외한 배달과 안부 묻기에 초점을 맞췄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단순한 봉사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은 평소 동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할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그들 주변에 도시락 하나를 기다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단순히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를 만나는 기회를 얻고 상호 간 교감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Strawburry17이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유튜버 메간 카마레나도 캠페인에 참여한 후 “점심시간을 이용한 도시락 배달이 오히려 앞선 인생을 살아온 어르신들로부터의 지혜를 얻는 과정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미국 기아 방지 단체 피딩 아메리카(Feeding America)가 발표한 기아 상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60세 이상 노인의 7.7%(550만 명)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년간 기아에 직면한 노인의 수가 두 배 증가했으며 1500만 명 이상이 홀로 지내고 있는데 이는 전체 노인의 25% 수준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노인들이 만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했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전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말이 때로는 식사보다 더 큰 봉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봉사활동가인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수녀는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에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인색한 것은 해결하기 힘든 과제로 여기면서 외면했기 때문인데 오히려 도시락 배달과 인사말 같은 실천이 이어지면서 작은 기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 이 캠페인은 10만 명 이상의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로드 아일랜드 재향군인 의료원 토마스 칼리 교수팀은 모든 지역 공동체가 도시락 배달 봉사 활동의 대상이 되는 노인을 1%만 늘려도 의료보험예산 1억9000만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의 고독 문제 해결에도 효과적이었다. 고령화 시대로 진입하게 되면 집에서 식사할 수 있는 게 가장 저렴한 복지라는 밀즈온휠즈의 활동 철학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결과다.
  
사랑의 도시락 전할 봉사자 늘었으면
 
밀즈온휠즈 대표인 엘리 홀 런더는 “이 캠페인은 자원봉사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노인들의 진지한 인생 이야기 몇 가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봉사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충분했다.  
 
캠페인 포스터 제작을 위해 재능을 기부한 사진작가 마크 세리거는 "노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면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고립이나 기아 문제 해결이 아닌 지혜로 가득 찬 삶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의 혜택은 당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험이 있는 매혹적인 사람들과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이 활동조차 연방 정부 예산 지원 등의 한계로 대상자에 선정되려면 1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 도시락 비용의 30%는 연방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늘 노인들에게 어두운 미래를 안겨 주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요구되는 다양한 정책 과제뿐만 아니라 정책의 사각지대를 메워 나갈 수 있는 캠페인을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2050년까지 노인 인구가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의 경우 65세 인구가 2050년이면 전체 인구의 40%에 달할 것이다. 특히 올해는 인구 변화 쓰나미의 원년이라고 한다. 1955년생이 노인에 진입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독거노인 비율은 2016년 대비 지난해 말까지 10% 가까이 증가했다. 그만큼 고립과 기아에 직면하게 될 노인의 숫자는 급증할 것이다. 통계청 기준 812만 명(15.7%)인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5년이면 10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게 된다.
 
세대 간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흥미롭게도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19년 11월 온라인쇼핑 동향‘을 보면 배달 중심의 음식 서비스 거래액이 1년 사이에 두배 이상(100.3%) 증가했고 거래의 94.3%가 모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이러니하다.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젊은이들은 가만히 앉아 배달음식을 먹는 문화가 급증하는데,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배달할 봉사자는 구하기 힘든 현실.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닐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며 공공소통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2015~16년 중앙SUNDAY 및 중앙일보와 진행했던 공공프로젝트 ‘작은 외침 LOUD’를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 기반의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찾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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