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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쁜 남자 되렵니다…한겨울 K2 찍고 와야 하니까

중앙선데이 2020.01.11 00:20 669호 24면 지면보기

세계 2위봉 ‘동계 초등’ 출사표

2018년 7월 낭가파르바트를 끝으로 8000m급 14개 봉우리에 오른 김미곤 대장. 김 대장은 10월부터 K2 동계 초등 일정에 들어간다. 전민규 기자

2018년 7월 낭가파르바트를 끝으로 8000m급 14개 봉우리에 오른 김미곤 대장. 김 대장은 10월부터 K2 동계 초등 일정에 들어간다. 전민규 기자

그는 자신을 나쁜 남자라고 불렀다. ‘큰 산’에 가느라 몇 달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후배에게 혹독했고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모두 가족을 보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 7번째로 14좌 완등한 김미곤
아무도 못한 세계 2위봉 동계 등정 노려

김미곤(48·한국도로공사) 대장은 2000년부터 시작된 8000m급 14개 봉우리 등반을 2018년 7월 9일 낭가파르바트(8125m)를 끝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나라 7번째 ‘14좌 완등’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올해 10월부터 K2(8611m) 동계 초등 일정에 나선다. K2는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유일하게 겨울의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 대장은 지난달 22일 인터뷰 직전 점심시간에 얼음도끼(아이스바일) 날을 소름 끼치도록 갈고 왔다고 했다.
 
K2 동계 등정이 그렇게 힘든가.
“히말라야로 뭉뚱그려 불리지만, 카라코람 지역은 히말라야와 다르다. 더 춥고, 더 건조하고, 더 바람이 세다. 수 만 개의 바늘이 쉼 없이 내 벌거벗은 몸을 덮치는 느낌이 든다. 그걸 겨울에 간다. 봄, 가을 시즌 등반보다 2배 이상 힘들다. 천하의 폴란드도 3번 도전해서 모두 실패했다. 날씨가 팀워크를 무너뜨렸다.”
  
제트기류에 버티다간 진짜 나쁜 남자돼
 
2018년 1월 K2 동계 초등을 노리던 폴란드 원정대의 베이스캠프.[중앙포토]

2018년 1월 K2 동계 초등을 노리던 폴란드 원정대의 베이스캠프.[중앙포토]

폴란드는 ‘얼음 강국’이다. 1979~1980년 겨울 시즌 에베레스트(8848m)를 초등했다. 8000m급 봉우리 14곳 중 10곳을 겨울에 처음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안드제이 자바다(1928~2000)가 폴란드 겨울 등반의 밑바닥을 다졌다. 예지 쿠쿠츠카(1948~1989), 보이텍 쿠르티카(73), 크루지슈토프 비엘리치(70) 등 쟁쟁한 산악인들이 나왔다. 비엘리치는 못 다한 폴란드의 K2 동계 초등을 이루기 위해 2017~2018년 겨울 시즌에 원정대장으로 나섰다. 폴란드의 3번째 도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많은 눈에 물러서야 했다. 팀과 불화를 겪던 데니스 우룹코(47)는 혼자 7600m까지 진출한 뒤 내려왔다. 겨울 시즌은 동지(12월21일)~춘분(3월21)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폴란드도 못 한 겨울의 K2를 어떻게….
“운칠기삼이다. 날씨가 폴란드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다. 불운이었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14좌 완등자가 7명이다. 힘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술이었다. 폴란드가 동계 등반의 강국인 것은 맞다. 그들의 경험이 소중하다. 폴란드와 한 팀을 만들 수도 있다.”
 
폴란드와 초등 경쟁이 벌어지지 않겠나.
“한 팀을 이루면 누가 먼저 오르건 공식적으로는 공동 초등이 된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누가 먼저 정상에 서느냐는 경쟁이 붙을 수 있겠다.”
 
폴란드의 자료를 분석했다는데.
“제트기류가 관건이다. 통상 K2에서의 제트기류는 8000m 정도에서 부는데, 겨울에는 6000m까지 내려온다. 제트기류가 불기 시작하면 무조건 탈출해야 한다. 근처의 가까운 캠프가 아니라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가야 한다. 안 그러면 모조리 날아간다. 올라온 고도를 아까워하거나 몇 백m 덜 내려가려고 버티다가는 진짜 내가 나쁜 남자가 된다.”
 
나쁜 남자라니.
“내 안에는 세 가지 버전의 나쁜 남자가 있다. 나쁜 남자1은 가족들을 덩그러니 놔두고 오랫동안 나와 있어야 한다는 것. 나쁜 남자2는 대원들을 집에 보내려면 산에서는 혹독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 나쁜 남자3는 나도 살아서 돌아가려면 나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정말 나쁜 남자’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때 정말 나쁜 남자가 된다.”
 
2012년 7월 김홍빈 대장과 함께 K2 정상에 선 김 대장(왼쪽). [중앙포토]

2012년 7월 김홍빈 대장과 함께 K2 정상에 선 김 대장(왼쪽). [중앙포토]

아이들은 짧게는 70일, 길게는 120일 만에 귀국하는 아빠를 수줍게 맞이하곤 했다. 그는 “아무리 마음이 가족에게 가 있어도 몸이 떨어지면 소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가족을 보기 위해 살아 돌아와야 했다. 8000m급 산에서 자신은 물론 대원·셰르파에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장비가 불충분하거나 정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졌다 싶으면 불호령을 내렸다. 휘어잡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베이스캠프에서라도 술은 입에 대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후배들이 섭섭했을 것”이라고 했다. 동료를 잃으면 안 됐다. 그러나 그는 2명을 잃었다. 그는 “나쁜 남자를 넘어 악인이 됐다”며 몇 달간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언제 동료를 잃었나.
“2010년 마나슬루(8163m)에서였다. 눈보라가 몰아쳤다. 정상을 포기하고 비박(bivouac·야영)을 했다. 시간 아낀다고 중간에 고정로프도, 캠프도 설치하지 않고 올라간 게 재앙이 돼 돌아왔다. 난 연거푸 추락했다. 동료 한 명은 실종됐고 다른 한 명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듬해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다시 마나슬루에 갔다. 시신 한 구만 찾아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갔는데, 유족들이 고인의 사진을 정상에 묻어달라더라. 무산소로, 예정에 없던 마나슬루 등정을 했다.”
 
그는 동료를 잃자 사고를 내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누가 떠밀지도 않고 산에 갔는데 사고가 나면 자신도, 가족도, 유족도, 후원업체도 모두 죄인이 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이른바 ‘밑바닥 생활’을 오래 했다.
“막내 생활이 맞는 표현 같다(웃음). 1998년부터 고산등반에 뛰어들었는데, 2년 동안은 베이스캠프에서 행정만 봤다. 이 때의 경험이 이후 원정대를 이끄는 데 탄탄한 기본기가 됐다. 2000년 초오유(8188m)에서는 선배들이 ‘어이, 정상 가자’고 해서, 2001년 마칼루(8485m)에서는 환자 후송 중에 ‘야, 정상 갈 사람 없다 빨리 와라’고 해서 올라갔다. 그 뒤로 매년 8000m급을 찾았다. 솔직히 초반엔 14좌는 생각도 안 했다.”
  
10월 네팔 8000m서 몸 풀고 12월 도전
 
K2는 ...

K2는 ...

그럼 언제 계획했나.
“2008년이다. 2007년 에베레스트(8848m)·로체(8516m) 연속 등정 뒤다. 자신감이 붙었고 인정받기 시작한 때다. 회사(한국도로공사)에 일일이 허락 받고 가는 것도 눈치 보여, 아예 프로젝트를 내서 히말라야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K2는 7년 만에 가는데.
“김홍빈 대장과 2012년에 함께 갔다. 그는 1991년 데날리(옛 이름 매킨리, 6190m)에서 손가락 10개를 잃었다. 지난해 7월 가셔브룸Ⅰ(8068m)에 오르며 8000m급 13곳 정상에 발자국을 찍었다. 그 중 4곳은 나와 함께 했다.”
 
K2 동계 초등의 ‘운기칠삼’이 더 있나.
“해발 515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의 기온이 중요하다. 봄, 가을 시즌에는 영상으로 올라가지만, 영하 상태가 계속되면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다. K2가 있는 파키스탄 지역 셰르파들은 동계 등반 경험이 부족하다. 이 셰르파들이 잘 안 가려고 한다. 때문에 유럽 팀들은 셰르파보다 자국 대원들을 늘린다. 원정대에서도 인사가 만사다. 네팔과 달리 파키스탄에서는 헬기 사용도 어렵다. 군용 헬기를 써야 하는데, 2명만 태우면서 한번 뜨는 데 1만5000달러(약 1700만 원)를 받는다. 그야말로 초응급 상태가 아니면 쓸 수 없다.”
 
차후 일정은.
“인사가 만사라고 했듯, 대원 선발이 중요하다. 10월에 네팔에서 ‘몸 풀이’로 8000m급을 등반하고 한국에 돌아와 재충전 뒤 12월에 K2로 갈 것이다.”
 
아니, 8000m급에서 몸 풀이라니.
“고소 적응의 의미다(웃음). 기상·지질·생태학자 등도 함께 가면 좋겠다. 자료를 축적하고 싶다. 언제까지 외국 자료에 의지해야 할지….”
 
김 대장에게 ‘왜 가나’라고 묻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애매한 대답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23년, 에베레스트 초등 도전을 앞둔 영국의 조지 맬러리는 그런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질문을 한 기자가 지어냈다는 말도 있다. 김 대장은 화려한 수사 대신 이렇게 단호히 말했다.
 
“동료를, 나를 놔두고 오는 정말 나쁜 남자는 되지 않겠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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