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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렵 적발 줄었지만…프로 중의 프로만 남았다

중앙선데이 2020.01.11 00:02 669호 6면 지면보기

수렵과 밀렵 사이

밀렵꾼이 쏜 총에 맞아 날개 한쪽이 잘린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 전민규 기자

밀렵꾼이 쏜 총에 맞아 날개 한쪽이 잘린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 전민규 기자

지난달 충남 논산시 도로변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 한 마리가 발견됐다. 한쪽 귀가 칼에 베인 듯 잘려진 채였다. 유해 야생동물을 잡은 증거로 수렵인이 베어 간 흔적이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검사한 결과 몸 안에서 총알이 나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교통사고를 당한 셈이다. 총·칼·차에 의한 ‘연쇄 삼중 사고’였다.  
   

국내 야생동물 정책은 ‘투 트랙’
유해동물은 수렵, 멸종위기종 보존

밀렵, 단속 8년새 771건→246건
지능화·전문화된 밀렵꾼들만 남아
“단속 체계 그대로…잡을 재간 없어”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은 수렵 시즌이다. 겨울은 또 밀렵 시즌이기도 하다. 논산의 고라니는 수렵인의 총에 맞았을까, 밀렵꾼에게 당했을까. 수렵과 밀렵 사이, 동물은 말이 없다. 

# 지난달 5일 경북 야생동물구조센터. 전화가 울리더니 신고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부엉이 같은 게 떨어져 있는데, 총에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송의 한 야산으로 출동한 야생동물구조센터 구조대응팀 관계자는 “참매가 다리에 총상을 입어 구조했지만 다음 날 패혈증으로 숨졌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인 참매를 사냥하면 밀렵이다.

 
밀렵 단속 건수는 2010년 771명에서 2018년 246명으로 급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지속적 합동 단속·계도 활동과 신고 포상금 상향 등의 성과”라고 밝혔다. 밀렵 신고 포상금은 최고 500만원이다. 2015년 포상금 인상 이후 매년 1명에 머무르던 지급 대상자는 2018년에는 6명으로 늘었다.
 
단속 건수가 줄었지만, 야생동물 밀렵·밀거래는 오히려 전문화·지능화됐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도 같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그 증거로 밀렵 단속 건수가 최근 3년간 200명 안팎에 머무르며 더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사랑하는시민들의모임(국시모) 사무국장은 “밀렵꾼들은 프로 중의 프로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며 “지역 생태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루트로 돌아다니면 잡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사냥 중 사람·동물 구분하기도 힘든데 …”
 
위장관에서 총알 2개가 발견된 독수리의 엑스선 사진. [사진 부산야생동물구조센터]

위장관에서 총알 2개가 발견된 독수리의 엑스선 사진. [사진 부산야생동물구조센터]

실제로 이들의 ‘전문성’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6년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환경영향평가 때 산양 루트를 조사하기 위해 밀렵 전과 있는 조사위원을 선정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는 “요즘 밀렵꾼들은 적외선카메라·야간투시경·GPS 등으로 무장하며, 시간상으로 사각지대인 새벽 2~3시에 활동하고, 법으로 처벌 못하는 창·사냥개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밀렵에도 ‘성지’가 있다. 큰 도시 춘천과 설악산 사이에 있는 강원도 홍천과 산세가 깊은 경북 울진 등이다. 한 초보 수렵인은 “울진에 사냥하러 갔다가 일행을 못 쫓아가 길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 지난 8일 충북 영동의 한 수렵장. 엽사 6명이 사냥개와 함께 야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에 나설 때 ‘산을 턴다’라는 표현을 쓴다. 푸드덕, 꿩이 솟아올랐다. A씨가 총을 겨눴다. 타앙~! 하늘을 찢는 격발 소리와 함께 꿩이 떨어졌다. 올해 충북도는 영동·보은·옥천을 순환 수렵장으로 고시했다. 지자체는 해마다 일정 지역을 수렵장으로 지정하면 환경부가 허가를 내준다. 충북도는 당초 수렵장을 도내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3개 군 지역만 축소 고시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원인이었다. ASF 예방 차원에서 수렵장을 넓히자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수렵인들의 왕래가 ASF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박복규 수렵인 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올해는 예년의 20여 곳보다 턱없이 적은 9곳의 수렵장만 운영 고시됐다”며 “충북 영동·보은·옥천만 해도 수렵장을 열지 않은 경북도와 인접한 곳이라 옴짝달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멧돼지는 하루 이동 거리가 100㎞에 달하는데 쫓아가다가 수렵 경계구역을 넘어 경북 지역에 발을 들이면 밀렵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냥은 순환 수렵장에서의 수렵 승인과 지자체의 유해 야생동물 포획 허가(지역민에 한함)를 받아야 가능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야생동물 정책은 개체 수 조절과 개체 보존이라는 투트랙 시스템이다. 일정 기간 내 일정한 장소에서만 수렵을 허가해 유해 야생동물의 농작물 피해를 막자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유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은 최근 5년간 570억원에 이른다. 멧돼지·고라니·까치 순으로 농가에 피해를 준다. 2018년에만 멧돼지 5만 마리, 고라니 17만 마리를 포획했다. 박 사무국장은 “우리 같은 수렵인들이 멧돼지·고라니를 잡으니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도 잦다. 2012년 2월 강원 횡성에서는 수렵인이 발사한 엽총 탄환을 다른 수렵인이 가슴에 맞고 숨졌다. 지난달 21일에는 충북 영동·보은의 수렵장 인근 주민들이 총탄에 맞아 다치기도 했다. 경북에서 활동하는 수렵인은 “야산에서 뭔가 나타나면 일단 쏘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수렵인은 “사람과 동물도 구분하기 힘든데, 천연기념물인지 유해동물인지 어찌 아나”며 “잘 못 잡았다 싶으면 그냥 놔두고 내려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수리부엉이·산양·수달 등 천연기념물·멸종위기 동물 등을 사냥하면 밀렵이다. 정당한 수렵은 유해 야생동물만 가능하다. 생태경관보전지역, 자연공원, 군사시설보호 구역에서 사냥을 해도 안 된다. 하지만 2012~2016년 국립공원과 그 인근 지역에서 수거된 올무·덫·뱀 그물 등 밀렵 도구가 7669개나 됐다.
 
나이지리아에서 베트남을 거쳐 홍콩으로 밀반입된 코끼리 상아. [EPA=연합뉴스]

나이지리아에서 베트남을 거쳐 홍콩으로 밀반입된 코끼리 상아. [EPA=연합뉴스]

그동안 보신 문화가 밀렵을 부추겼다. 배제선 녹색연합 팀장은 “세대가 바뀌고 국민 인식도 개선됐다”며 “이제는 보신 문화가 밀렵의 주요 원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정인철 사무국장은 “보신 문화는 아직도 유효하고 검은돈이 오가는 시장이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밀렵이 근절되지 않은 이유로 단속 인원의 부족과 낮은 처벌 수준을 꼽는다. 정 사무국장은 “진화하는 밀렵 기술만큼 감시·단속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니 밀렵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 인원 적어 불법 사냥도구 수거 수준”
 
한 환경보호단체 관계자는 “단속 인원이 지역별로 4~5명 정도라 효과적인 단속이 어려워 불법 엽구를 수거하는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0회 단속에 나섰는데 불법 엽구 153개만 수거하고 단속은 1명도 없었다.
 
밀렵 적발 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5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상습 밀렵꾼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처벌 수준을 더 강화하고 상주 단속 인원을 확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백준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야생동물 보존과 관리라는 두 면을 조화롭게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야생동물 자료 조사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밀렵 대책도 구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홍준·김나윤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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