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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끊긴 우크라이나 여객기 신호···美전문가 "이건 격추다"

중앙일보 2020.01.10 17:20
8일(현지시간) 새벽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한 뒤 이륙했다가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의 잔해. 이란의 격추인지 단순 사고인지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새벽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한 뒤 이륙했다가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의 잔해. 이란의 격추인지 단순 사고인지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운은 잦아들었지만 이란의 8일(현지시간) 이라크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이 새로운 진실 공방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함께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UIA)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 사고 원인을 두고서다.  

미국·영국·캐나다 "이란에 피격" 주장 근거 셋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지난 3일 미국의 제거 작전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응징이라며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건 8일 새벽 1시 20분.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시각에 공격 시간을 맞췄다. 문제의 우크라이나 항공기 PS752편은 수 시간 후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출발했다가 곧바로 추락했다. 비행 정보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이륙 2분 뒤,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탑승객과 조종사·승무원 176명은 전원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항공의 보잉 737기. 같은 기종이 8일(현지시간) 추락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항공의 보잉 737기. 같은 기종이 8일(현지시간) 추락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이란은 사고 후 “기체 결함으로 인한 엔진 화재”를 이유로 들었지만, 미국ㆍ캐나다ㆍ영국은 9일(현지시간) 해당 항공기가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당했을 가능성을 일제히 제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고 직후엔 “(격추라는) 억측은 피해달라”고 했으나 곧바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조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국제사회가 점점 격추 쪽으로 무게를 두자 이란은 10일 외교부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대변인을 통해 “추락 사고를 국제 기준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에 따라 조사 중”이라며 “(미국을 포함한) 해외의 전문가들도 환영하겠다”고 열린 입장을 보였다.  
 
격추가 맞다면 이란은 고의성 여부와 무관하게 곤란에 처하게 된다. 민간 항공기 이륙 계획이 사전에 신고된 상황에서 인명피해 발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는 도의적 비난과 함께 유가족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격추라고 보는 과학적 근거는 뭘까. 국내외 항공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해 키워드로 풀었다.  
 
8일(현지시간)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 사고 현장에서 응급구조대원들이 사고기의 잔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 사고 현장에서 응급구조대원들이 사고기의 잔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①뚝 끊긴 ADS-B(자동종속감시-방송)=모든 민간항공기는 이륙 직후부터 ADS-B 체계에 이동 신호가 잡히게 돼 있다. 일종의 레이더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기 감시 정보를 일정한 주기마다 지상의 관제 시스템 또는 가까이 이동 중인 다른 항공기에 자동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항공기들의 충돌을 방지하고 통신 두절 등을 막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다.
 
문제의 우크라이나 항공기 PS752 역시 이륙 후 ADS-B 시스템에 신호를 보냈으나 이륙 직후 이 신호는 갑자기 뚝 끊겼다. 이란의 주장대로 엔진에 불이 나서 추락으로 이어졌다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내 항공 전문가는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엔진에 불이 붙었다면 조종사가 지상 관제탑과 교신을 하고 어떻게든 끝까지 비상착륙을 시도하려 했을 것”이라며 “별다른 이상 교신이 없다가 ADS-B 시스템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은 격추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이 격추했던 말레이시아 민간항공기 MH17편 역시 ADS-B 시스템에서 바로 교신이 끊겼었다. 당시 미사일은 조종석을 바로 관통해 속수무책으로 추락했다.
 
국제 민간 항공전문가들의 모임인 OPS그룹의 마크 지 대표는 9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사고는 말레이시아 격추 사고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우리의 초기 분석으론 격추(shoot down)가 맞다"라고 말했다.  
 
8일(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항공(UIA) 보잉 737 여객기가 이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했다고 이란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사진은 항공기 경로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서 공개된 사고기의 비행 경로.

8일(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항공(UIA) 보잉 737 여객기가 이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했다고 이란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사진은 항공기 경로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서 공개된 사고기의 비행 경로.

 
②슈랍넬(shrapnel)은 알고 있다=만약 이란 측이 우크라이나 항공기를 미군 소속으로 오인해 격추했다면 중요한 증거로 남는 게 슈랍넬이다. 슈랍넬은 폭발로 인한 파편을 의미한다. 이는 비행기가 단순 기체 결함으로 인해 추락하면서 생기는 파편과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사일이 항공기를 뚫고 폭발하면서 발생하는 화학 반응과 충격으로 파편의 물질적 구성과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 전문가는 “미사일의 공중 근접 신관(proximity fuse)이 폭발하면 슈랍넬이 다수 발생한다”며 “추락 현장 보존과 조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종사 출신인 항공 전문가 레스 아벤드는 CNN에 “사고 현장 이미지를 보면 작은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다”며 “비행기가 급강하해 추락했다는 의미인데,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통제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OPS그룹의 마크 지 대표 역시 "항공기 기체에 보면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며 "이는 격추 직후 폭발로 인해 발생한 구멍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에 의해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기 탑승객의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에 의해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기 탑승객의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③블랙박스 조사 서둘러야=슈랍넬보다 중요할 수 있는 스모킹 건(smoking gunㆍ결정적 증거)은 블랙박스다. 기내에 설치된 블랙박스엔 추락 직전까지 기내의 모든 상태가 기록된다. 조종석의 음성이나 교신 내용 등도 포함된다. 추락으로 인한 충격이나 화재, 수몰 상황에 대비한 내구 설계가 돼 있다. 물에 가라앉으면 음파발신기(ULB)를 통해 위치를 알리게 돼 있다.  
 
1983년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KAL-007편에서 회수된 블랙박스. [중앙포토]

1983년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KAL-007편에서 회수된 블랙박스. [중앙포토]

 
내륙에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의 블랙박스 2개는 이란 당국이 회수했다. 이란 당국은 이 블랙박스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국제사회의 미사일 격추설을 키웠다. 홍콩의 영어신문인 아시아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란 정부가 블랙박스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비행기를 격추했다는 점을 은닉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이란 당국이 블랙박스 조사를 서두르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이란이 10일 국제 조사단을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선회한 만큼 일단 그럴 가능성은 적어졌다. 국내 전문가는 “블랙박스의 FDR(Flight Data Recorderㆍ비행데이터 기록장치) 분석은 속도를 낼 수 있다”며 “진실 공방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조사에 속도를 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전수진ㆍ권유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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