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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그림자?… 빨간 모자 유령에 밤잠 설치는 쇼팽

중앙일보 2020.01.10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58)

 
스코틀랜드의 성. [사진 Pixabay]

스코틀랜드의 성. [사진 Pixabay]

 
칙칙한 런던에서 쇼팽을 짓눌렀던 스모그도, 매캐한 석탄 냄새도 스코틀랜드에는 없었다. 초대자 제인 스털링 형부의 저택, 콜더 하우스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모두 친절했고 대접은 극진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허전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8월 말에는 맨체스터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연주 홀은 엄청 넓었다. 무려 1200명이 객석을 매웠다. 큰 극장에서 연주할 때는 젊었을 때부터 힘의 부족을 지적받았던 그였다. 부축을 받아 무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에서 병자의 티가 완연했다. 동반 출연자는 쇠약한 쇼팽이 안쓰러웠다.
 
평론은 애써 그의 연주의 섬세함과 음의 순수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힘의 부족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이 너무 복잡하여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도 있었다. 그것은 불충분한 힘과 화려한 퍼포먼스의 부재를 에둘러 표현한 것 같았다.
 
에딘버러에서는 동포들이 있어서 모처럼 폴란드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글라스고우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마르첼리나 공주를 만나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에딘버러와 글라스고우에서의 공연에서는 폴란드 동포의 영향이었던지 모처럼 힘이 났다. 하지만 티켓 판매는 저조했다. 보다 못한 제인 스털링은 에딘버러 공연 티켓을 100장 사 친지들에게 돌렸다.
 
에딘버러에 사는 동포 위스친스키 박사는 친절했다. 그는 잠깐씩 자신의 집에 묵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택에서 몇 주를 보낸 쇼팽에게 박사의 작은 집은 불편했다. 쇼팽은 박사의 집 2층 방까지 업혀서 올라갔다. 아침이면 하인이 쇼팽의 머리를 빗겨주었고 말끔한 옷으로 갈아 입혀주었다. 낮은 기온에 그는 주로 화로 곁에 머물렀다.
 
건강상태는 더 나빠졌고 성미는 더 급해졌다. 그는 까다로운 늙은이 같았다.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닦지 않았고 속옷도 새하얗게 해두지 않았다고 박사의 부인에게 짜증을 냈다. 글래스고우의 사람들에게 작고 마른 몸의 구부정한 쇼팽은 곧 죽을 것 같이 보였다.
 
초기 사진술로 기록된 쇼팽의 모습. 알려진 3장의 쇼팽 사진 중 하나. 쇼팽 애호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2017년 보고되었다. 파리 폴란드 협회 소장.

초기 사진술로 기록된 쇼팽의 모습. 알려진 3장의 쇼팽 사진 중 하나. 쇼팽 애호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2017년 보고되었다. 파리 폴란드 협회 소장.

 
스코틀랜드의 유력 가문 출신인 제인은 일가의 저택, 친지의 성으로 끊임없이 쇼팽을 데리고 다녔다. 한 곳에 도착해 쉴만하면 다시 옮기고 다시 옮기고 해야 했다. 그녀는 쇼팽을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쇼팽은 피곤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머문 곳은 존스톤 성, 스털링 성, 케어 하우스, 해밀텅 궁을 포함해 스코틀랜드의 여러 유서 깊은 저택과 성들이었다.
 
그곳에는 멋진 피아노, 아름다운 그림, 많은 책, 훌륭한 와인이 있었다. 이따금 안개가 걷히면 눈앞에 오래된 나무, 호수, 산과 하늘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날씬한 개, 말과 함께 사냥했다.
 
멋진 풍광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편지의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나는 여전히 놀라서 당혹해 하고 얼이 빠져있다.”
“나는 새로운 음을 꺼낼 수가 없다. 비참하다. 터질 것 같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외톨이, 외톨이, 외톨이 같다.”
 
날씨도 좋지 않았다. 기온은 낮았고 짙은 안개도 잦았다. 쇼팽은 심한 감기에 걸렸고 모두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루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비탈길을 가던 중 말 한 마리가 갑자기 앞다리를 들고 뛰어올랐다. 마차는 비탈을 구르다 나무를 들이받고 벼랑 끝에 멈춰 섰다. 같이 탔던 하인이 쇼팽을 부서진 마차에서 끌어냈다.
 
눈앞에 헛것도 보였다. 몇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할 때였다. 3악장의 장송행진곡을 연주하려는데 문득 반쯤 열린 피아노 덮개에서 음침한 유령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놀란 그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정신을 차린 다음 돌아와서 말없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마요르카의 수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죽음 가까이 몰렸을 때 보이는 그 유령이었다. 그의 몸과 마음의 기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스털링 성. 에딘버러 인근에 있는 웅장한 성으로 쇼팽의 제자 제인 스털링 가족의 본거지였다. [사진 Pixabay]

스털링 성. 에딘버러 인근에 있는 웅장한 성으로 쇼팽의 제자 제인 스털링 가족의 본거지였다. [사진 Pixabay]

 
쇠퇴한 쇼팽은 아침 시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시까지 무기력하게 누웠다가, 힘들여 옷을 입으면 벌써 피곤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사람들과 앉아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좋은 가문과 훌륭한 선조의 후손이었고 족보는 대화의 주요 소재였다. 그들이 술 마시는 것도 지켜보아야 했다.
 
때로 그들이 서툰 불어로 말을 걸어주기도 했지만, 영어를 모르는 쇼팽은 지루했다. 대화가 끊어질 때쯤 사람들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고 쇼팽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온 힘을 다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고 나면 하인이 그를 위층의 침실로 올려다 주었다. 하인은 그의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힌 후 촛불 하나를 남겨두고 나갔다.
 
쇼팽은 어둠 속에서 옛일을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집을 떠나있었던 쇼팽이었지만 그토록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적도 없었다. 자정이 되면 저주받은 고성에 산다는 빨간 모자 유령이 창밖을 떠돌았고, 그의 마음은 불확실한 미래를 떠돌았다. 그는 깊은숨을 쉬면서 꿈에 빠지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그셰마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울부짖고 있었다. “내 음악은 어떻게 된 걸까? 내 마음은? 도대체 나는 어디를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세상은 나를 남겨두고 지나가고 있다. 나는 나 자신도 잊어버렸고 기력도 없다.” 편지에서 그는 일종의 유언도 남겼다.
 
스코틀랜드는 너무 따분했고 너무 추워 견디기 어려웠다. 그셰마와에게 편지를 쓴 다음 날 그는 그곳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하지만 런던의 바람도 차가웠고 공기는 변함없이 칙칙했다. 그에게 상극이었다. 2주 동안 그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바깥 공기가 들어와야 숨을 좀 쉴 수 있었기에 추위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야 했고, 그럴 때면 그는 두꺼운 외투를 두르고 화로에 바짝 기대어 앉았다.
 
제인도 뒤따라 런던으로 왔다. 조르주 상드를 대신하고자 하는 제인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러나 같은 6살 연상이었지만 상드에게 느꼈던 매력을 제인에게는 느낄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을 같이 있었기에 두 사람이 결혼할 거라는 소문이 파리에 돌았다. 쇼팽은 “결혼보다 죽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핑계 삼아 두 사람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런던에 있는 길드홀의 오늘날의 모습. [사진 www.guildhall.cityoflondon.gov.uk]

런던에 있는 길드홀의 오늘날의 모습. [사진 www.guildhall.cityoflondon.gov.uk]

 
11월 16일에는 폴란드 동포를 위한 자선무도회와 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꺼이 길드홀에 나갔다. 참석자들은 가수와 작은 관현악단의 연주에 춤을 추었다. 쇼팽도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주 후 지친 쇼팽이 대기실에서 쉬고 있을 때 무도회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한 참석자들은 그를 보고도 관심이 없었다. 동포를 위로한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대중 연주회였다.
 
마르첼리나 공주의 소개로, 동종요법 의사이고 폐 질환 전문의사이며 왕실 의사이기도 했던 저명한 제임스 클록 경의 검진을 받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덜 고통스럽게 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클록 경은 여행할 수 있을 때 빨리 파리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낯선 환경은 그의 생을 단축할 뿐이었다.
 
“신은 나를 죽이지 않고 왜 조각조각 내는가?” 쇼팽은 절망했다. 그의 생각은 그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게도 미쳤다. “나는 아무도 저주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내 삶이 너무 견디기 어려워, 차라리 ‘루크레지아(상드를 암시하는 소설의 주인공)’를 저주할 수 있으면 기분이 풀릴 거라 상상할 정도다.”
 
신앙심 깊고 따듯한 제인은 거의 매일 방문해 그에게 프로테스탄트 교리 책을 갖다 주었다. 제인은 그를 개종시켜 약혼이라도 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것은 쇼팽을 더욱 갑갑하게 했다. 마침내 11월 23일, 쇼팽은 도망치듯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 런던에 온 지 7개월 남짓만이었다.
 
떠나기 전 그는 그셰마와에게 자신의 방에 ‘제비꽃 한 다발’을 갖다 두라고 부탁했다. 돌아가면 온종일 누워있을 곳에서 한 줌의 시심이라도 느끼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심한 멀미를 하던 쇼팽은 프랑스 땅이 보이자 안도했다.
 
쇼팽의 녹턴 작품번호 32-1은 단순하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스코틀랜드의 멋진 자연 속에서 이 곡이 그리는 꿈을 꾸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편은 잃어버린 돈 꾸러미를 신비한 힘으로 되찾은 이야기이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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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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