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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야구보다 재밌는 겨울…남성 시청층 잡은 ‘스토브리그’

중앙일보 2020.01.10 11:00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의 신임 단장 역할을 맡은 남궁민. [사진 SBS]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의 신임 단장 역할을 맡은 남궁민. [사진 SBS]

지난 한 해 동안 시청률이 가장 높은 드라마는 무엇이었을까. 1위는 ‘하나뿐인 내편’(49.4%)이고, 2위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35.9%)이다. 현재 방영 중인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29.0%)까지 상위권은 모두 KBS2 주말 드라마 차지다. 주말 저녁이면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TV를 켜두는 오랜 시청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서다. 
 

여성 대비 남성 시청자 비중 82.8%
‘동백꽃’ ‘SKY 캐슬’보다 30% 높아
선수 못지 않게 치열한 프런트 경쟁
FA 시즌과 맞아 떨어져 몰입감 고조

남성 시청자 많은 드라마 TOP 10.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남성 시청자 많은 드라마 TOP 10.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데 남성 시청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본지가 닐슨 코리아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1위는 SBS ‘스토브리그’. 시청률은 14.1%로 ‘하나뿐인 내편’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여성 대비 남성 시청자 비중은 82.8%(1~7회 평균)에 달한다. 드라마 주 시청층인 여성 100명이 봤다고 가정했을 때 남성 83명이 본 셈이다. 지난해 최고 화제작인 KBS2 ‘동백꽃 필 무렵’이나 JTBC ‘SKY 캐슬’도 여성 대비 남성 비중은 각각 51.4%와 49.5%에 불과했다. ‘스토브리그’는 어떻게 남성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이끌었을까.
 
국내 최초로 여성 운영팀장이 된 이세영 역을 맡은 박은빈과 금수저 팀원 역의 조병규. [사진 SBS]

국내 최초로 여성 운영팀장이 된 이세영 역을 맡은 박은빈과 금수저 팀원 역의 조병규. [사진 SBS]

가장 큰 비결은 소재의 차별화에 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 야구 시즌이 끝난 후 다음 시즌 시작 전까지 난롯가에 둘러앉아 팀 재정비를 논의하는 기간을 뜻한다. 표면적으로는 야구 드라마지만 선수들보다는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즌을 극의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야구팬과 드라마 팬을 모두 아우른 것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는 그 자체로 극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드라마로 구성하기 쉽지 않은데 병역 문제 등 사회적인 이슈를 적절히 활용해 긴장감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졌다. 롯데 자이언츠가 전준우와 4년간 최대 34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는 등 연일 새 계약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에서 극 중 선수 드래프트부터 신인 지명, 용병 영입 등을 다뤄 몰입감을 높였다. SK 와이번스의 권철근 홍보팀장은 “처음엔 제작사 측에서 인천 문학구장에서 촬영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드라마를 통해 야구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적극적으로 제작 협조에 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카우트팀이 신인 드래프트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SBS]

스카우트팀이 신인 드래프트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SBS]

단장(남궁민)을 비롯해 운영팀장(박은빈)ㆍ스카우트팀장(이준혁)ㆍ마케팅팀장(김수진) 등을 맡은 배우들은 실제 각 분야 팀장들을 만나 미팅을 진행했다.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생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권 팀장은 “극 중 ‘임동규 유니폼 판매량이 얼만지 아세요?’라는 대사는 제가 미팅 때 했던 말인데 그대로 나와서 신기했다”며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되게 연출된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런트와 선수단의 고충을 잘 표현해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오랜 야구팬인 이신화 작가는 자문위원 18명의 도움을 받아 특정 구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도록 여러 구단의 사례를 조합해 에피소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에피소드별로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해 주인공의 관점이 조금씩 바뀌면서 이들과 얽힌 프런트의 성장 과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야구 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휠체어를 타게 됐지만 통계를 전공해 전력분석팀에서 일하게 된 백영수(윤선우)의 이야기도 형인 백승수 단장과 갈등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구단에서 어떻게 활약하게 될지 조명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앞으로 다뤄질 인물과 분야에 대한 기대감을 함께 높이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팀 운영에 활용하는 모습. [사진 SBS]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팀 운영에 활용하는 모습. [사진 SBS]

다양한 주체가 벌이는 권력 다툼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업 연고지라는 이유로 울며 겨자 먹기로 재송 드림즈를 운영 중이지만 4년째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구단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기업 측과 새 단장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을 타고 우승을 꿈꾸는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미국은 지역 구단의 성격이 강한데 한국과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기업의 입김이 세진 측면이 있다”며 “기업의 상황에 따라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 한국 구단의 현실이 잘 반영돼 몇 년 만에 드라마를 본방 사수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신설된 SBS 금토드라마의 강세도 눈에 띈다. ‘열혈사제’(70.5%)를 시작으로 ‘녹두꽃’(77.8%), ‘배가본드’(80.2%) 등 매 작품 남성 시청자층이 확대되고 있다. SBS 관계자는 “통상 사극은 남성 비중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코믹과 장르물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금토드라마가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희정 평론가는 “이들 작품은 사회에서 중심이 아닌 주변부 인물이 힘을 합쳐 약자의 승리를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비록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언정 믿고 의지할 만한 리더에 대한 그리움도 녹아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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