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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공격 4시간 뒤 이륙, 3분 만에 추락…"방공부대, 심리적 압박 느꼈을 수도"

중앙일보 2020.01.10 08:32
지난 7일 이란 테헤란을 이륙한 직후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잔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햇다.[AFP=연합뉴스]

지난 7일 이란 테헤란을 이륙한 직후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잔해. 탑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햇다.[AFP=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륙 직후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 미사일에 피격됐다는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정부가 여객기 격추 가능성을 의심하는 가운데 소셜미디어에는 미사일 오폭설이 퍼지고 있다. 

美·加·英 "이란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
트럼프 "저쪽 누군가의 실수, 비극"
이란 "서방 심리전…미사일 불가능"
러시아산 중단거리 미사일 SA-15
2014년 말레이항공 미사일 격추 비슷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여객기 추락이 기계적 결함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다"면서 "저쪽에서 누군가 실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끔찍한 일"이라면서 이란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가장 많은 63명의 사망자가 나온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우리 자체적으로, 또 동맹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면서 "증거들은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다만 "고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란의 여객기 격추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실로 확인되면 미국과 이란은 서로 공격을 주고받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이 과정에서 민간인 176명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비극이 일어난 셈이다. 이란은 서방 국가들이 "큰 거짓말"로 심리전을 벌이는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국제항공(PS 752편)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는 지난 7일 오전 6시 12분(현지시간) 이륙 3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이란은 이날 오전 1시 20분쯤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을 쏘며 미국에 대한 군사적 보복을 감행했다. 미사일 공격은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 종료 약 4시간 뒤 여객기가 추락한 것이다. CNN은 이륙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추락 당일에는 미사일 발사와 무관하며 기계적 결함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관계 당국이 그렇게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틀 만에 이란 미사일 발사와 여객기 추락이 관련 있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 SA-15 두 발을 맞고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토르 M1, 건틀렛(Gauntlet)으로도 불리는 이 단거리 미사일은 이란이 2007년 러시아로부터 도입했다.
 
미 정부 당국자는 "이란이 여객기를 쐈다는 높은 수준의 확신을 갖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이란이 미사일 추적 레이더로 이 여객기를 쫓는 신호를 포착했고, 여객기 부근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 여객기가 추락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CBS도 미 정부 당국자들은 이란이 지대공 미사일을 쏴서 여객기를 떨어뜨렸다고 확신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당국자 3명을 인용해 미 정부는 이번 여객기 추락 사고가 이란의 우발적 격추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포브스는 민감한 작전을 수행하면서 이란 방공부대가 평소보다 즉각적인 반격 교전수칙에 따랐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미사일 방어 전문가인 마이클 앨맨 국제전략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포브스에 "SA-15는 사거리가 10~12㎞로 짧은 편이고, 여객기 속도를 감안하면 10~20초 안에 요격기 발사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군대의 훈련 미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러시아산 미사일에 격추돼 298명이 숨진 말레이시아항공 MH 17편 사고와 비슷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사고 현장의 비행기 잔해가 광범위하게 펼쳐진 것도 피격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체 결함으로 추락할 때는 잔해가 비교적 작은 범위에 머문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나무, 주변 구조물과 충돌하거나 동체가 미끄러진 흔적이 남는데, 이번 현장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란은 격추가 아닌 기체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란 항공 당국자는 사고 여객기 추락 당시 인근 상공에는 최대 9대의 항공기가 비행 중이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사고 여객기가 화염에 휩싸여 떨어졌다는 목격자 진술을 거론하며 "미사일을 맞았으면 폭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사고 여객기가 기체 결함을 인지하고 공항으로 회항을 시도하던 중 불길에 휩싸여 추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국은 사고 현장에서 여객기 블랙박스 2대를 회수해 분석 중이나 손상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사고 조사에 우크라이나 당국과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의 참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힌 국적별 사망자는 이란 82명, 캐나다 63명, 우크라이나 11명, 스웨덴 10명, 아프가니스탄 4명, 영국과 독일 각 3명이다.
  
캐나다 토론토의 이란계 캐나다인들이 마련한 희생자 분향소. [AP=연합뉴스]

캐나다 토론토의 이란계 캐나다인들이 마련한 희생자 분향소.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사고가 이란이 보유한 러시아산 미사일에 의한 피격일 가능성을 포함해 테러 공격이나 드론과의 충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란으로부터 예비 사고보고서를 받았다"면서 "사고조사가 완료돼 공식 결과가 확인되기 전까지 사고 원인에 대한 섣부른 추측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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