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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서 1위, 미국인 홀린 '김치맛 가루'의 비결은

중앙일보 2020.01.10 05:21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나 제품을 만들겠다고요? 꿈같은 얘기죠. 브랜드를 만들 땐 기획 단계부터 타깃 고객을 확실하게 정해야 해요.”

 
‘김치 시즈닝’으로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는 브랜딩에 대한 조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실제로 그는 김치 시즈닝을 개발할 때부터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 이 제품은 고춧가루처럼 칼칼한 매운맛에 감칠맛을 더한 파우더 형태의 소스로 스리라차, 파프리카 파우더처럼 치킨·피자·샐러드 등 요리할 때 넣거나 뿌려 먹으면 매운맛과 감칠맛을 더한다. 한국의 음식인 김치를 내세운 제품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다. 타깃 고객을 위해 몇 가지 가설을 세웠고 실험을 통해 이를 꼼꼼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 [중앙포토]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 [중앙포토]

먼저 미국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 발표가 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국 최대 친환경 식품 유통 체인 '홀푸드'가 매년 발표하는 푸드 트렌드다. 홀푸드는 꾸준히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김치 유래 유산균을 언급했다. 안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홀푸드마켓의 고객을 타깃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홀푸드마켓의 입점 기준인, 비건(채식), 글루텐 프리(Gluten-Free),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은 '논(NON)-GMO'라는 기준을 지켰다. 여기에 유산균까지 더해 건강이라는 트렌드를 완벽하게 만족시켰다.
 
지난해 5월 아마존 미국에서 한 달간 김치 시즈닝을 판매하며 시장 반응을 살폈다. 판매 2주 만에 고춧가루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LA나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가 구매할 것이라는 다른 이들의 예상과 달리 휴스턴, 텍사스, 켄터키에 거주하는 백인 여성이 김치 시즈닝을 샀다. 이들은 양상추나 오이에 김치 시즈닝을 뿌려 샐러드처럼 즐겨 먹었다. 나아가 11월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식품 박람회 '프라이빗 라벨(PLMA)'에도 참가했다. 홀푸드마켓·월마트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통 업계 MD들의 입점 문의가 이어지는 등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치 시즈닝이 미국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안 대표의 가설은 충분히 검증된 것이다.   
김치 시즈닝은 소세지나 피자 등에 요리에 뿌려 먹으면 매콤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사진 푸드컬쳐랩]

김치 시즈닝은 소세지나 피자 등에 요리에 뿌려 먹으면 매콤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사진 푸드컬쳐랩]

안 대표의 자신감은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연고가 없던 필리핀을 시작으로 외식업계에서 일했다. 2010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안 대표는 1년 후 필리핀 마닐라의 야시장에서 ‘서울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야시장에 5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오더라고요. 당시 필리핀은 K-POP, 한국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가 대세였거든요. 그러니까 5000명 중 10%인 500명에게만 떡볶이를 팔아도 대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서 멀쩡히 대학교에 다니던 여동생까지 불러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죠.”

 
장사 첫날, 100인분의 떡볶이를 준비했지만 겨우 두 그릇을 팔았다.98인분의 떡볶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와 밤새 펑펑 울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 편히 잠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암흑 같은 3개월이 흘렀다. 그즈음 문득, 자신이 음식 장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경영 관련 책을 쉴 새 없이 읽었다. 그리고 책으로 배운 것들을 하나씩 실천하며 익혔다. 예를 들어, 고객을 대하는 태도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 안 대표는 깜짝 놀랐다.
 

“스스로 잘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거울 속의 저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실의 피로로 너무 지쳐있었어요. 이런 얼굴로 떡볶이를 퍼주면 나라도 안 사 먹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웃었다. 주변 상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다른 가게 앞을 청소하는 것은 기본이고 떡볶이와 한국 과자를 나눠주며 인사했다. 생업인 자신들과 달리 한국에서 놀러 온 철없는 20대의 장난으로 생각했던 상인들은 변함없는 자매의 노력에 태도가 달라졌다. 야시장의 상권 특성을 알려주고 나아가 자신의 가게를 찾는 단골에게 자매의 떡볶이 가게를 소개해줬다.
 
그로부터 다시 3개월이 지나자 떡볶이를 사기 위해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더욱 지쳤다. 가게를 찾는 고객의 불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주차나 좌석이 불편하다는 불만이었는데 날씨가 안 좋은 날이면 불만은 더욱 늘었다. 그때 안 대표는 처음으로 브랜딩과 타깃 고객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그리고 타깃 고객을 정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떡볶이 먹으러 오지 마세요. 서울을 경험하러 오세요'라고 말했어요. 당시 저는 주차장이 있는 점포를 열만큼 큰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떡볶이가 목적이라면 다른 가게에 가고, 진짜 한국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홍보했죠. 당시 한국 드라마마다 포장마차가 빠지지 않고 나왔는데 필리핀 친구들은 드라마 속 포장마차에서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했거든요.”

 
오는 손님을 내쫓는 셈이었다. 초반 매출은 줄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한류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SNS 속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1년 6개월 만에 매장 수를 8곳까지 확장했다. 이때 필리핀 현 최대 유통사 GNP 트레이딩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고 안 대표는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떡볶이 장사는 정말 잘 됐지만, 평생 떡볶이만 파는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큰 회사에서 제대로 사업을 배우고 싶어 합류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국식 BBQ 레스토랑, 한국식 치킨집 등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이때도 타깃 고객 설정은 성공의 열쇠였다. 당시 필리핀 마닐라엔 한국식 고깃집이 많았는데 대부분 조용한 분위기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안 대표는 한국인이 아니라 필리핀 현지인을 타깃 고객으로 정했다. 그는 “필리핀 친구들은 신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클럽이나 콘서트장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꾸몄다”고 했다. 그의 예상은 다시 한번 적중했다. 가게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식당은 성년의 날, 졸업식, 생일 등 축하할 일이 있는 날 신나게 놀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고기를 먹는 곳으로 자리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안태양 대표가 만든 '김치시즈닝'. [사진 푸드컬쳐랩]

안태양 대표가 만든 '김치시즈닝'. [사진 푸드컬쳐랩]

 
5년 넘게 회사를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내가 만든 제품을 세계 식탁에 올리겠다’는 각오로 2017년 한국에 푸드 스타트업 푸드컬쳐랩을 열었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인 김치를 생각하며 제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게 김치 시즈닝이다.
 

“이름과 디자인은 직관적이어야 해요.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맛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죠. 예를 들어 서울 시스터즈는 한국에서 온 저희 자매를, 김치 시즈닝은 매운맛과 연결되죠. 설명하는데 쓸 시간이 없어요. 올해는 김치 시즈닝을 본격적으로 알릴 계획이에요. 치킨부터 대체육, 또는 과자 등 다른 식품과 협업을 통해 김치맛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김치맛 감자칩이라는 상상만 해도 신나잖아요.”

 
폴인스터디 〈F&B 스몰브랜드, 빅마켓을 사로잡다〉에선 안태양 대표의 브랜딩 노하우를 들을 수 있다. [사진 폴인]

폴인스터디 〈F&B 스몰브랜드, 빅마켓을 사로잡다〉에선 안태양 대표의 브랜딩 노하우를 들을 수 있다. [사진 폴인]

안 대표는〈폴인 스터디: F&B 스몰 브랜드 빅마켓을 사로잡다〉에서 더 많은, 그리고 구체적인 브랜딩 비결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참여 신청은 폴인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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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송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