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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찾아 제주 간 55년생 "애들 키울때보다 저축 많이 해"

중앙일보 2020.01.10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베이비부머(1955~63년. 지난해 말 약 724만 명)의 맏형 격인 55년생이 올해 만 65세, 법정 노인이 된다. 71만 명이다. 그 전에는 40만~50만 명이었다. 이제 차원이 다른 고령화가 시작됐다. 무방비로 65세가 된 이전 세대와 분명 다르지만 준비 부족은 여전하다. 55년생을 해부해 '폭풍 고령화'의 실상과 과제를 점검한다.
은퇴 공무원인 1955년생 오세길씨. 인생 2막에 들어선 그는 불암산 생태학습관에서 숲의 생태계를 소개하는 '숲해설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은퇴 공무원인 1955년생 오세길씨. 인생 2막에 들어선 그는 불암산 생태학습관에서 숲의 생태계를 소개하는 '숲해설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신년기획-55년생 어쩌다 할배⑤

"직장 다니면서 공부 삼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땄죠. 지금처럼 제주도에서 아파트 관리소장 할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1955년생 이병문씨는 5년 전만 해도 교육청 공무원이었다. 은퇴 후 아파트 단지를 책임지는 '소장님'으로 변신했다. 재작년부터 제주도 서귀포시의 450세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그 전에는 근처 아파트 관리소장을 2년 5개월 맡았다. 이씨는 대구·구미에 가족을 두고 혼자 갔다. 일이 바쁘다 보니 대구에 가기 쉽지 않다. 그는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나처럼 은퇴 후 멀리 떠나 직장을 얻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여기 오지 않았다면 교육강좌 듣고 등산 다니면서 삶의 리듬이 무너졌을 거다. 지금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진짜 노년' 대비한 재취업 늘어
"자녀 키울 때보다 저축 많이 해"

숲해설사 등 봉사활동 택하기도
"손에 쥐는 돈보다 가치를 생각"

 
그의 일상은 곧 노후 준비다. 식비·세금ㆍ공과금 등을 내고 남는 돈은 저축한다. 연 4000만~5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애들을 키울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모은다. 자식한테 용돈을 받지 않고, 집·차 살 때 보태준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이 취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이 취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도 처음부터 홀로서기가 쉬웠던 건 아니다. 가족이 반대했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일손 부족한 제주에서 뭐라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공무원 재직 중 공인중개사ㆍ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이곳에서 택시 운전 자격증을 땄다. 가족도 이젠 그를 이해한다. 
 
그는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70세까지 큰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을 하고, 그 후 10년은 작은 단지만 맡아 소일거리 삼아 일할 생각이다. 그는 "같이 일하는 경비원ㆍ미화원도 나이가 많고 육지에서 건너와서 열심히 일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1955년생 삶 들여다보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베이비부머 1955년생 삶 들여다보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씨처럼 노인 대열에 들어섰어도 재취업 등으로 노후 대비에 적극 나서는 1955년생이 적지 않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55년생 중 건보 직장가입자는 19만2231명(2018년 말 기준)에 달한다. 55년생 4명 중 1명은 여전히 월급쟁이다. 
 
55년생을 포함한 고령 취업자는 꾸준히 늘어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가운데 55세 이상이 2010년 19.2%에서 2018년 27.8%로 올라갔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55년생 32명 중 취업·저축 등으로 80, 90대를 준비하는 이가 상당수였다.
노후를 위해 노인 문턱에 들어서도 재취업과 저축 등에 나서는 55년생이 많다. [중앙포토]

노후를 위해 노인 문턱에 들어서도 재취업과 저축 등에 나서는 55년생이 많다. [중앙포토]

이정구(서울 강동구)씨는 창업ㆍ재무 관련 조언 등으로 월 80만~120만원 벌고 연금을 받는다. 단독주택에 살고 빚이 없다. 아들ㆍ딸이 모두 독립해서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입은 은행에 쌓는다. 이씨는 "나중을 위해 저축한다. 인생 3막이라고 보는 75~80세를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임근순(강원 춘천시)씨는 퇴직 8개월 만에 사회적 기업에 새로 둥지를 텄다. 월수입은 80만원 정도다. 그는 "수입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연금이 나온다. 경조사비·생활비 등을 제하고 남는 돈(200만원)은 모은다. 80세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밑천이다.
 
봉사활동·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서울 불암산 '숲해설사' 오세길씨는 교통비·식대를 빼면 손에 쥐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물질적인 걸 생각한 게 아니라 가치를 생각했다. 숲을 즐길 줄 모르고 생태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조모씨도 2013년부터 박물관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다. 그는 "체력이 받쳐주면 75세까진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고용된 안내 요원들이 야간 개장한 서울 시내 한 고궁에서 관람객의 입장권을 검사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고용된 안내 요원들이 야간 개장한 서울 시내 한 고궁에서 관람객의 입장권을 검사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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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인터뷰한 32명이 밝힌 기대수명은 평균 85.9세. 이른바 100세 시대가 찾아오면서 55년생을 비롯한 베이비부머는 노인이 됐어도 향후 20~30년 먹고 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들의 체계적인 노후 준비가 앞으로 풀어야 할 커다란 과제라는 의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은퇴한 사람들이 경험을 살릴 수 있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일자리 등을 활성화해서 월 100만원 안팎의 소득을 얻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연금 소득을 더해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가 노후 대비를 위해 퇴직 후에도 노동 시장에 계속 머무르도록 도와줘야 한다. 임금과 생산성의 간격을 좁히는 임금 유연성으로 고용 안정을 꾀할 필요도 있다"라면서 "사회적 경제로 가길 원하는 사람은 그쪽으로 길을 터주고, 다른 형태의 고용을 원하면 거기에 맞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현예ㆍ이에스더ㆍ정종훈ㆍ김태호ㆍ윤상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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