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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제 4의 길

중앙일보 2020.01.10 00:46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논설위원

최상연논설위원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용하기 어려우면 아무 소용없다’는 게 스티브 잡스의 지론이었다. 자기가 만든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경영 복귀 후엔 ‘엘리베이터 브리핑’론을 내놨다. ‘자신의 상품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평생을 ‘단순함’에 걸었고 그걸로 성공했다.
 

신당 창당 쪽으로 가는 안철수
우왕좌왕 속 야권 표만 갈랐던
과거 실패 넘어설 대책은 뭔가

정치 상품이야말로 그렇다. 대중은 편하고, 쉽고, 단순한 걸 좇는다. 메시지가 간단하고 명료해야 먹힌다. 역대 대통령이 그렇게 시대정신을 읽고 마음을 모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메시지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행동하는 양심, 사람 사는 세상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도 있었다.
 
곧 복귀하는 안철수 전 의원에겐 그게 새 정치일 텐데 늘 안갯속이어서 문제였다. ‘기득권 정치, 낡은 정치와 싸우는 것’이라고 했지만 새 인물을 등용한 건 아니었다. 낡은 정치와 뚜렷한 차별점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곳에 길을 내 무정치로도 불렸다. 정확하겐 어색한 동거와 애매모호한 노선으로 영호남의 거대 양당 틈바귀에 끼어버렸다.
 
결론은? 철수하고 철수하다 정치판을 떠났다. 결국 새 정치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걸로 남았다. 한국 정치의 메시아로 국민 소환을 받고 나섰다. 그런데도 해외에서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건 흐릿한 정체성이 1등 공신이다. 자신만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해 정치적 미아가 됐다.
 
이번엔 국민 소환도 아니다. 스스로 돌아오는 거다. 그런데도 모호함 만큼은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당분간 거취를 정하지 않은 채 어떤 가치와 비전을 담아낼지 고민하고, 그 내용을 담아낼 그릇의 형태를 여러 사람과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 길을 찾겠다고 해외로 떠난 게 1년 반 전이다. 그리고 지금은 귀국 길이다.
 
보수 통합이나 바른미래당 복귀, 신생 정당 합류는 아니란다. 또 다른 신당을 만드는 제4의 선택을 할 거라는 데, 뭐 일리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야권은 통합보다 혁신이 우선’인 측면이 있다. 정치를 잘못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든 데엔 야당 책임이 작지 않다. 책임과 반성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뭉갤 일은 아니다. 쇄신이 필수다.
 
문제는 총선이 출발 직전의 엘리베이터처럼 임박했고, 선거판은 그가 떠날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뭐라 해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짧은 시간 팔아야 할 상품이다. 그래서 제4의 길엔 질문이 따른다. 3등으로 밀려나 야권 표만 나눴던 과거의 반복이 아닐 방안이 뭐냐는 거다.
 
물론 안철수 현상은 있다. 정치가 노상 그 타령인데 사라질 까닭도 없다. 하지만 그의 전유물이 될 이유도 없다. 엊그제 어떤 창당 대회장엔 참석자 모두가 티셔츠에 청바지로 나타났다. 혁신 대명사인 잡스의 드레스 코드다. 정치 혁신을 바라는 마음에 다가서려는 뜻이 담겼을 게다. 너도나도 혁신과 변혁을 선점하려 안달이다.
 
가뜩이나 그가 딛고 설 공간은 지난 선거 때보다 오히려 좁아진 양상이다. 생기지도 않은 ‘안철수당’엔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0%다. 비호감 1위 정치인에도 올랐다. ‘도로 바른미래당’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배어 있을 것이다. 제4의 길이 ‘2018 되풀이’가 아니란 걸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면 좋다. 하지만 글쎄다.
 
패권청산을 그토록 외쳤다면 반패권에 힘을 보태는 게 더 간결하지 않겠나. 내 편만이 옳다는 패권 세력의 오만과 독선으로 중병을 앓는 한국 정치다. 정권의 폭주를 만든 건 자기들끼리만 싸운 야당 책임도 있다. 기득권을 서로 털어내겠다는 통합 논의가 시작된 마당이다. ‘명확하고 단순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잡스는 말했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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