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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다시 시작된 윤석열의 외로운 싸움

중앙일보 2020.01.10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윤석열의 검찰호에게 참사급 인사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사표 대신 수사 지휘 이어나갈 듯
새 검찰 간부와 마찰 최소화해야
평검사들 다독이는 리더십 필요

이제 남은 건 윤 총장의 향후 행보다. 수족이 잘려나간 그가 사표를 집어던지고 나갈지, 아니면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처럼 더럽고 치사해도 버티고 있을지가 주목된다. 그의 진퇴여부와 함께 청와대의 울산선거 개입과 유재수 전 부산시부시장 감찰무마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도 관심사다.
 
우선 그가 사표 낼 가능성은 있을까.
 
이번에 지방으로 발령난 한 검찰 간부의 얘기. “정치권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윤 총장은 수도 없이 사표를 낼 생각을 했다. 강남일 차장을 비롯해 대검 참모들은 업무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윤 총장 자택 인근에서 폭음을 하면서 거취를 고민했었다. 결론은 절대 사표를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검찰 인사가 발표되기 이전의 상황이다.
 
윤 총장은 생존했지만 자신을 믿고 따랐던 후배들이 전부 좌천되면서 그의 고심은 다시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검찰 인사를 놓고 잡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윤 총장이 너무 온순하게 대처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검찰 선배들 사이에선 나왔다. 검찰 조직의 수장으로서 강단과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대검 중수부 폐지와 검사들에 대한 인사를 놓고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맞섰던 송광수 검찰총장이 추억처럼 소환된 것이다.
 
“차라리 저의 목부터 먼저 치라고 하십시오.”
 
송 당시 총장의 이 말 한마디는 정치권의 인사 개입을 막고, 검찰의 내부 결속력을 다진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윤 총장은 이미 실기를 했다. 사표를 낼 경우 뒷북으로 평가 절하될 수도 있다. 명분도 실익도 그만큼 감소될 것이다.
 
그래서 윤 총장을 잘 아는 법조인들은 그가 버티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전직 검찰총장은 “윤 총장은 다른 검사보다는 두 세배, 아니 열배 이상 배짱이 있다. 돈이나 출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검사였다. 오로지 수사를 통해 거악을 척결한다는 생각 밖에 없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수사를 사실상 맡고 있는 부장검사와 평검사들에 대한 인사가 날 때까지 자신이 사건을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번 수사를 끝낸 뒤 진퇴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다.
 
문제는 울산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유재수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동부지검장과의 역학관계 설정이 만만치 않다는데 있다.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고기영 동부지검장 모두 사법연수원 동기다. 특히 검찰내 2인자 신분이 된 이 중앙지검장은 노무현 정부 때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일했고, 대학 후배다. 지난번 인사 때 윤 총장의 반대로 이 중앙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업무 스타일도 상반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다 이번 인사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반응이 예상 밖으로 뜨뜻미지근한 것도 향후 수사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사에 반발한 검사들이 집단 행동을 하고 이는 검란(檢亂)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은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할 것이란 의미다.
 
인사를 앞두고 항명성 사표를 냈던 한 고검장의 말이다. “정치권력이 우리의 형사사법 체계를 감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부터 사표를 냈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일까. 윤 총장에겐 가장 아픈 대목이다. 전국 2200여명의 검사 중 윤 총장의 총애를 받고 그의 측근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검사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들어서면서 권력에 대한 수사로 검찰의 위상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실은 엘리트 검사만 차지했다는 역설이 숨어 있다. 검사들에게 내재적으로 잠복된 출세욕구라는 유전자를 엿볼 수 있지 않는가.
 
그 때문에 윤 총장은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할 지도 모른다. 밖으로는 정치권력과 싸우고, 안으로는 친 정부 성향의 검찰 간부들과 헤게모니 쟁탈전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신세대 검사들의 전투 욕구를 일깨우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국민은 여전히 검찰의 존재이유를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와 부정에 대항하는 모습에서 찾고 있다. 울산과 유재수 사건이 이번 인사를 통해 봉합될 경우 재수사는 물론 특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국민은 윤 총장이 진정한 검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좀비 검사, 껍데기 검사들로 인한 역사의 퇴행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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