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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직격인터뷰] 지금은 부동산 아니라 ‘규제 기득권층과 전쟁’ 벌일 때

중앙일보 2020.01.10 00:20 종합 27면 지면보기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시한 경제 회생의 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한국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성장률은 1%대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반도체를 빼면 수출기업의 실적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2020년은 한국 경제가 침체를 딛고 회복하느냐, 계속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냐의 갈림길에 선 시점이다.  
 

경기 침체는 정부 경제운영 실패 탓
자세 전환 없이는 상황 돌파 어려워
현 정책 지속 고집하면 자원만 낭비

내각 안 보이고 청와대 주도는 문제
4차 산업 위해 규제·노동 개혁 시급
국제 정세 불안할 때 동맹 더욱 필요

이럴 때일수록 노련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경제위기 극복을 주도한 윤증현(74) 윤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난 이유다. 그는 숫자를 줄줄 꿰면서 풍부한 사례를 곁들여 사이다 같은 분석을 쏟아냈다. 윤 전 장관이 제시한 대안은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 정책 책임자들이 직접 들었으면 좋았을 내용이었다.
 
경제 활력이 너무 떨어졌다.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활동이 반영된 종합물가지수로 꼽히는 ‘GDP(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가 4분기 연속 마이너스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이미 디플레이션 상황에 진입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물론 한국은행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아직 소비자물가지수가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동력을 잃고 침체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지표는 현 정부의 경제 운영 실패가 초래한 결과 아니겠나.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위기를 과장해도 안 되지만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으로 국민을 현혹에 빠뜨려서도 안 된다. 경제는 미리 대응해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3년째 강행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돌파해 나가냐의 핵심 질문이다. 자세 전환 없이는 상황 돌파가 어렵고 결국 막대한 국가 자원을 낭비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게 반(反)시장·반기업 정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어떻게 임금 지급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거다. 주 52시간제는 더 난센스다. 일하는 사람은 ‘저녁 있는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먹을 게 있는 저녁’이 중요하다. 근로소득이 줄어드니 결국 투잡을 뛰게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은 직업·업종·규모별로 다 달라야 한다.”
  
대통령 말, 치열한 토론 거쳐 나와야
 
그런 문제를 아무리 지적해도 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도 그것이 의문이다. 이 정부는 피드백이 없다. 아무리 시장에서 말이 나오고, 언론에서 말을 해도 마이동풍에 내로남불·아전인수다. 소위 ‘커뮤니케이션(소통)이 안 된다’. 피드백을 통해 문제가 있으면 바로 수정하거나 고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땜질 처방이 나오고 단발성 정책을 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기업의 창의와 도전이 빛을 보도록 자율성을 허용하고 시장 질서를 지켜주는 데 그쳐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전면적으로 고치는 것이다. 그게 파장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마이웨이’를 다시 선언했다. “부동산과의 전쟁은 절대 지지 않겠다”고도 했다. 야당에서는 “현실 인식 능력이 고장 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정 운영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스피치를 할 때 참모들이 파트별로 맡아서 써 올리면 관계자들이 독회한다. 그런데 지금 그런 프로세스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경험으로는 대통령의 말씀 노트를 놓고 참모들 간에 격론이 벌어지고 연필이 날아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국가 원수가 국민에게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청와대 정부’라고 하질 않나.
“현 정부에서 정책은 주로 청와대가 정하고 일도 주도한다. 내각은 그 명을 받아서 집행하는 모습이다. 이게 말이 안 된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각 정부 부처가 왜 있나. 부처 간에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그것을 조정하라고 총리가 있고 부총리가 있는 거다. 거기서 ‘핫’한 논쟁과 격론을 벌여 대안 모색이 일어나는 거다. 지금 정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스피치가 나오는지 바깥에서는 알 길이 없다. 청와대 출입기자도 모르지 않나.”
 
반시장·반기업적 정책 기조는 4차 산업혁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결국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무한대 융합이고,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이런 변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나라에 예외가 없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는 메시지 세 개를 내놓았다. 첫째,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있어야 대응이 가능하다. 둘째는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협동성과 창의력이 근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과학기술 혁신이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법과 제도의 정비, 즉 규제 개혁이라는 게 다보스포럼의 공통된 논제였다. 우리 한국을 보고 하는 얘기 아닌가.”
  
지금 개혁 놓치면 망국으로 가는 길
 
우리 현실은 딴판이다.
“우리 주력 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새로운 신산업은 규제에 발 묶여 성장 잠재력이 추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타다 금지법이다. 택시와 타다를 상생하는 방안을 만드는 게 정치의 역할이지, 아예 싹수를 없애버리겠다는 것 아닌가. 이건 망국의 길로 가는 조치다. 배달의 민족 인수합병(M&A)도 정치권이 시비를 걸고 있다. 데이터 3법 통과도 해를 넘기고 말았다. 기가 막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정부와 정치권이 신산업 육성보다 기득권 표에만 연연해서다. 노동계는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전체 노동 형태는 옛날 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민간의 도전과 경쟁을 촉진할 수 있도록 규제 패러다임과 노동의 기존 행태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기득권층을 설득하고 대결도 불사해야 한다.”
 
‘대결’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
“대통령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 나선다고 했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규제 기득권층과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규제 기득권을 설득하는 데는 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그러고 있다. 수십 개의 연금을 통합하고, 연금 지급 시점을 늦추고, 파업이 일어나도 전국을 돌면서 설득하고 있다. 벌써 마크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실업률이 줄고, 떠났던 기업이 돌아오고 국민이 지지하고 있지 않나.”
 
정부의 재정 중독도 심각하다.
“경제 발전은 결국 국민 삶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나면서 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20%에 달한다. 우리 형편에는 적은 게 아니다. 올해는 이를 위해 적자 국채도 60조원이나 발행한다. 어쩔 수 없이 복지를 늘려야 한다면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자활 의지가 있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포퓰리즘 같은)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 심각하다. 재정이 악화하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해외에서 자금 조달이 되더라도 굉장히 악조건이 되고 심해지면 외환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국제 정세도 불안해지고 있다.
“이럴 때 정경분리를 기대하면 오판하게 된다. 정경분리는 비상사태가 생기면 의미가 없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을 포함해 동맹국·우방국간의 동맹 강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졌을 때는 한·미 동맹은 탄탄했다. 당시 MB(이명박) 하고 부시 사이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통화스와프가 가능했고 위기를 극복했다.”
 
부동산 정책도 혼란스럽다.
“부동산은 수요 있는 곳에 공급해야 한다. 온갖 규제로 공급을 막고, 특목고·자율고 없애니까 학부모들이 강남 와서 8학군이 부활하고 있다. 집값 상승에 결정타였다.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서희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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