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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근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핵 위기 발생 전에 북한과 예방적 대화 필요

중앙일보 2020.01.10 00:17 종합 22면 지면보기

북핵의 ‘불편한 현실’과 ‘불편한 해법’

지난해 2월 8일 북한 인민군 창군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비핵화 협상 차원에서 약속해온 핵무기·ICBM 시험 중단 폐기를 시사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8일 북한 인민군 창군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비핵화 협상 차원에서 약속해온 핵무기·ICBM 시험 중단 폐기를 시사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계산법’을 미국이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위협했던 연말 시한이 지나갔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도발을 경계했지만, 막상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연말을 보냈다. 여기서 김정은은 북한 주민에게 미국의 제재 때문에 발생한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을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할 것을 요구했다. 밖으로는 미국이 북·미 대화를 시간 벌이에 이용했다고 비난하며, 북·미 합의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전략무기를 시위할 것을 위협했다. 한반도에 또다시 북핵 위기와 전쟁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북핵 위기를 방지하고,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을까.
 

북한과 주고받는 거래 없이 북핵 합의 사실상 불가능
북핵 외교 관건은 대북 보상책의 국내 동의 확보
국민은 전쟁 위기 발생하면 북핵 협상 필요 느껴
위기 발생 전 선제적 대화가 훨씬 적은 비용 들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3개 입장을 일관되게 말했다.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북·미 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 등이다. 김정은은 이 중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메시지에 분노했다. 대담한 ‘주동적 비핵화’ 조처를 하면서 트럼프의 호의적인 상응 조치를 기대했는데,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병진 노선을 대신하여 ‘경제발전 집중노선’을 선포했지만, 제재로 인해 수출입이 막히고 경제가 악화하면서 자신의 경제발전 구상이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 이때 김정은은 북한이 이미 수차례 반복했었던 ‘새로운 길’을 갈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충격적인 초강경 도발로 미국의 양보를 압박하고, 내부로는 경제난을 외부 탓으로 돌리며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과시로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이다.
 
2018년 6월 초유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는 마침내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길이 열렸다고 기뻐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고 스톡홀름 실무협상이 결렬되면서, 새로운 북핵 위기의 전조가 시작되었다. 사실 오늘 한반도 정세는 지난 30년간 계속 반복되었던 북핵 위기의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계속하여 북핵 위기를 당하는가. 비핵화 외교에 최선을 다했지만, 왜 북한의 핵 능력은 오히려 증가했는가. 여기에 쉬운 해답과 어렵고 불편한 해답이 있다.
 
쉬운 해답은 모든 문제를 북한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불법으로 핵을 개발했고, 기만적으로 핵 합의를 불이행했다. 그런데 이 답변은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북한 탓을 하는 내내 우리는 북핵 위기와 북핵 위협에 시달리고, 북핵 능력은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불편한 해답은 우리 북핵 외교가 실패했고, 비핵화 전략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비핵화 외교가 실패한 원인을 찾고, 교훈을 얻어 보다 효과적인 비핵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결코 북핵 외교전에서 이길 수 없다. 전략론은 전략 수립의 첫 단계로 자신과 상대의 역량과 한계, 주변의 형세와 지세를 냉철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손자병법도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전쟁마다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북핵 문제의 불편한 현실은 무엇인가.
 
첫째, 북핵 협상의 악순환 패턴이 있다. 필자의 계산에 따르면 이미 일곱 번이나 북핵 위기가 발생했고, 그만큼 북핵 합의가 만들어지고 깨졌다. 여기서 불편한 현실은 아직 북핵 외교의 실패에서 충분히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 악순환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는 북한의 저항성과 내구성을 곧잘 잊는다. 북한의 경제난을 이용하여 더욱 강한 제재로 북핵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런데 세계 어디에도 제재만으로 핵 개발을 포기시켰다는 사례는 없다. 북한의 자력갱생과 수령 체제에서 그럴 가능성은 더욱 낮다. 미·중 경쟁으로 동북아에서 신냉전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대북 제재 압박의 효과는 더욱 약해질 전망이다.
 
셋째, 비핵화 외교에도 불구하고 북핵 능력은 대개 8년마다 2배씩 증가했다. 북한은 약 3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8년이 지나면 60기, 또 8년이 지나면 100기를 넘길 전망이다. 이때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때는 비핵화 비용뿐만 아니라 우리 안보 비용도 급증할 것이다.
 
북한 핵 개발 초기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오늘은 가래로도 막기 어렵다. 내일은 가래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은 ‘불편한 해법’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첫째, 북핵 추세를 볼 때, 우리는 “비핵화 비용은 항상 내일보다 오늘이 적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 공격적이고 기만적인 불량국가 북한과 협상하고 합의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북한이 도발할 때 대화의 손을 내미는 것은 더욱 불편하다. 하지만 내일보다 오늘 북한과 거래하면 비핵화 비용뿐만 아니라 북핵 위기 비용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둘째, 국가는 생존이 위협받는 안보 환경 속에서는 어떤 희생도 무릅쓰고 핵으로 무장하지만, 안보 환경이 개선되면 핵무장 비용의 명분을 잃고 핵을 포기한다. 이 설명은 학계가 내린 결론으로, 국제정치학의 보편적인 이론과 사례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안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북한의 안보 환경을 개선하자는 주문은 불편하지만, 비핵화를 위해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고, 최종적으로는 완전한 핵 폐기에 이르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셋째, 그동안 북핵 정책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핵 비확산적’ 비핵화 접근법을 채택했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오늘 이 접근법은 실효성이 더욱 낮아졌다. 대안으로 일부 전문가는 초기 단계에 불가피하게 ‘핵군축적’ 비핵화 접근법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단계적으로 핵 동결을 추구하고, 직접 사찰이 아닌 ‘핵군축적’인 간접적 핵 검증 방법을 제기했다. 이때 ‘핵군축적’ 접근법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록 불편하지만, 우선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위해 시한을 정해 조건부로 불충분한 사찰을 적용하는 등의 ‘핵군축적’ 접근법을 적용하는 전술도 고려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불법적 핵 개발을 중단시키는데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주고받는 거래 없이 북핵 합의는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상호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에 합의했지만, 국내 비판 때문에 제재 완화를 거부했다. 북한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었다. 결국 북핵 외교의 관건은 대북 보상책에 대해 국내적 동의를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북핵 위기의 역설이 있다. 통상 국민은 대북 보상을 거부한다. 막상 북한의 벼랑 끝 전술로 전쟁 위기가 조성되면, 북핵 협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북핵 합의가 북핵 위기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한다면 선제 대처도 가능하다. 결국 북핵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선제적이고 예방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다. 불편한 해법이지만, 이성적인 해법이라 할 수 있다.
 
키워드
비핵평화 프로세스
남북 간, 북·미 간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한반도평화 프로세스.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북·미 관계 정상화, 남북 관계 개선·발전 등의 하위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그러나 2019년 4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무산된 이후 미국의 비핵화 접근이 포괄적 합의 혹은 빅딜 방식으로 진행되며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핵군축
핵을 가진 국가 사이에 핵무기를 줄이거나 폐기하는 것. 북한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그동안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전혀 성과가 없었다고 진단하고, 앞으로 대미 협상에서 비핵화보다는 북한과 미국이 모두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에 나서야 한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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