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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눈치 보지말라" 文약속 믿었던 윤석열…168일후 비극

중앙일보 2020.01.10 00:10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60·사법연수원 23기)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남긴 말이다.  
 
그러나 지난 8일 저녁 전격적으로 이뤄진 검찰 고위 간부인사 결과는 정반대다. 윤 총장을 보좌해 현 정권을 겨눈 수사를 지휘하던 대검 참모들은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대부분 수사권이 없는 자리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68일 전과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7개월 전, 문재인?

 
당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두고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덕담을 건넸다. 고위공직자 임명장 수여식은 비공개로 진행하는 게 관례지만, 이날 나눈 대화 내용은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전임 총장에 비해 다섯 기수 아래인데다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파격 발탁된 윤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에서 열렸다. 윤 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에서 열렸다. 윤 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문 대통령은 당시 윤 총장에게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공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의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같아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윤 총장도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인용하면서 “(공권력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언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7일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조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다. 이같은 강한 수사 드라이브에는 윤 총장의 굳은 결심이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공직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이 뛰어든 것 자체가 사상 처음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연합뉴스]

 
청와대와 여권은 연일 ‘검찰개혁’과 관련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검찰은 적어도 대통령만은 윤 총장을 신임하고 있다고 봤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검찰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하자 하루만에 검찰이 자체 개혁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특수부 폐지, 외부 파견검사 전원 복귀, 검사장 전용차량 이용 즉시 중단 등을 골자로 하는 강도높은 개혁 방안이었다.

 
이즈음 검찰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발표한 것도 일종의 ‘친여권’을 향한 유화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왜?

 
변곡점은 지난 11월 8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청와대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열린 날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제부터의 과제는 윤 총장이 아닌 다른 어느 누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반부패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윤 총장을 제외한 법무부의 청와대 보고에는 검찰총장의 중요사건 수사 단계별 사전 보고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즉시 거센 반발이 일었고 ‘아이디어’ 수준으로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019.11.8청와대사진기자단/매일경제 이충우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019.11.8청와대사진기자단/매일경제 이충우기자

 
그러나 다른 위기가 왔다. 범여권이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수정안에 담긴 ‘검찰, 경찰의 고위공직자 범죄 인지 시 즉시 통보 의무'(24조 2항)다. 이 조항은 공수처법 중 검찰이 '독소 조항'이라 가장 비판하는 대목이다. 윤 총장은 해당 조항이 들어간 수정안을 보고받자 격노해 이례적으로 공식 대응을 지시했다고 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비슷한 조항의 추진이 좌절되자 공수처법에 비슷한 조항을 끼워넣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결과는?

 
윤 총장은 전격 검찰 인사 뒤 대검 간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모두 해야할 일을 했다”는 당부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나도 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테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달라”고도 격려했다고 한다.  
 
이날 인사에서 조 전 장관을 비롯해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이끌던 윤 총장의 핵심 참모들은 모두 고검 차장이나 지방 검사장으로 좌천됐다. 윤 총장의 수족이 잘려나간 대검 참모자리에는 대다수 초임 검사장들로 대체됐다

 

평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트위터 캡처 [SNS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트위터 캡처 [SNS캡처]

 

현 정권이 검찰을 인사권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예견된 ‘신호’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1년 문 대통령이 김인회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 에는 루쉰의 말을 빌려 “(검찰 개혁을 두고) 물에 빠진 개가 주인을 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패야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썼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검사는 “적어도 노무현 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했고 당시 정권을 겨눴던 불법 대선 자금 수사에도 손대지 않았다”며 “국정 농단을 수사하는 검찰과 조 전 장관을 수사하는 검찰은 무엇이 다른가”라고 한탄했다. 앞서 청와대는 윤 총장을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하며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 수사를 성공으로 이끌어 국민의 신망을 받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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