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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연초에 달력 아닌 지도 펴는 사람이 100년 끌고가”

중앙일보 2020.01.10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광화문문화포럼 창립 20주년을 맞아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광화문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앞줄 왼쪽 여섯째) 등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표재순 문화기획학교 이사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남시욱 화정평화재단이사장, 이세중 전 대한변협회장, 오지철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이어령 전 장관,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이근배 예술원 회장, 이종덕 전 예술의전당 사장, 박정자 연극인, 김영수 전 문체부장관, 김남조 시인, 육완순 무용가. 뒷줄 왼쪽부터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 한용외 전 삼성전자 사장, 이종상 예술원 회원,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정배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 김환수 전 주한미국공보원 고문. 이날 이어령 전 장관은 수상 기념 특별 강연에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예술이 역사를 바꾼다“고 했다. [사진 광화문 문화포럼]

광화문문화포럼 창립 20주년을 맞아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광화문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앞줄 왼쪽 여섯째) 등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표재순 문화기획학교 이사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남시욱 화정평화재단이사장, 이세중 전 대한변협회장, 오지철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이어령 전 장관,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이근배 예술원 회장, 이종덕 전 예술의전당 사장, 박정자 연극인, 김영수 전 문체부장관, 김남조 시인, 육완순 무용가. 뒷줄 왼쪽부터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 한용외 전 삼성전자 사장, 이종상 예술원 회원,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정배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 김환수 전 주한미국공보원 고문. 이날 이어령 전 장관은 수상 기념 특별 강연에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예술이 역사를 바꾼다“고 했다. [사진 광화문 문화포럼]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세계를 바꾸는 예술, 즉 창조적 힘이 생긴다.”
 

광화문문화예술상 수상 강연
“대륙 편 바다 편 선택하는 것보다
반도가 살 수 있는 길 창조해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광화문문화포럼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제정한 광화문문화예술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기념 강연에서, ‘역사를 바꾸는 예술’을 얘기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를 예로 들었다. “배우 오손 웰즈가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한 대사가 있다. 보르지아는 최악의 교황이었고 폭군이었다. 그가 유례없는 독재정치를 했을 때 미켈란젤로, 다빈치로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전세계 역사를 바꿨다. 그런데 스위스는 300년 간 전쟁도 안 해보고 폭군도 없고 민주주의가 있었고 편안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건 뻐꾸기 시계 밖에 더 있냐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어려운 시대에 문화가, 르네상스가 일어남으로써 절망적인 시기에 세계를 바꾸는 창조적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광화문문화포럼은 문화·예술계의 원로와 중진을 중심으로 학자·법조인·언론인 등이 함께하는 모임으로 2000년 발족했다. 문화 관련 강연, 예술영재 후원 등의 사업을 해왔다. 이 전 장관은 “이 자리에 계신 예술가들은 제물처럼 불에 탈 운명을 타고난 분들”이라고 했다. “그런 제물 덕분에 많은 사람이 평화와 안정 속에 살았다. 베토벤이 청중의 박수 소리도 못 듣는 절망 속에서 만든 것이 9번 ‘합창’ 교향곡이다. 그가 행복했다면, 귀가 들리고 궁정악사가 됐다면 우리는 결코 환희의 기쁨을 못 느낀다. 문화예술인이 어렵게 살면 그 어려움 때문에 웃는 사람이 이 땅에 반드시 존재한다.”
 
역사의 흐름을 읽는 시각에 문화적 안목을 더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광화문을 예로 들었다. “정치적 구호와 시위가 역사를 바꾸는 줄 알게 된다. 하지만 광화문은 정치적 장소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 아닌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한 기적이 일어난 곳이다.”
 
이 전 장관은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가 다섯 번 대결을 했던 곳이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임을 이야기했다. “세계 역사가 여기에서 벌어진 거다. 빛(광·光)을 내서(화·化)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인간 아닌 것이 인간을 상대로 생각을 해본 최초의 일이 광화문에서 일어났다.” 광화문이 정치적 의미를 벗고 문화적 장소로 인식돼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정치와 경제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날 강연의 주제와 통한다.
 
이날 강연의 원래 제목은 ‘신지정학으로 본 한반도의 미래’였지만, 이 전 장관은 “문화인과 예술인이 모인 축제 자리인 것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며 역사를 바꾸는 예술로 주제를 바꿨다. 강연이 끝날 즈음 이 전 장관은 한반도의 운명 얘기를 덧붙였다. “올해를 시작하며 달력을 본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지도책을 펴는 사람이 100년을 끌고갈 사람이다. 시간은 바뀌지만 땅은 안 바뀐다. 대한민국은 반도, 중국은 대륙, 일본은 섬나라다.” 이 전 장관은 “우리는 언제나 바다 편인지 땅 편인지 질문을 받아왔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늘 피해가 따른다. 반면 쉽지 않은 일은 창조다. 반도의 힘이 약해도 살 수 있는 길이다”라며 오랜 기간 이야기한 창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럼의 오지철(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회장은 “60년 넘게 대한민국을 대표해온 지성이자 석학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종횡무진한 놀라운 문화 창조자”라고 이 전 장관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이날 기념식엔 이근배 예술원 회장, 박정자 배우, 김남조 시인, 신수정 피아니스트, 육완순 무용가,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 한용외 전 삼성전자 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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