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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빗나가게 쐈다” 이란, 도발 전 트럼프에게 준 ‘힌트’

중앙일보 2020.01.09 17:18

이란이 트럼프에게 열어 준 전쟁 피할 3가지 ‘출구’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것 같았던 미국과 이란이 한 발씩 물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대국민 담화에서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한 데 대응해 ‘무력 보복’ 대신 ‘경제 제재’ 카드를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그의 뒤로 빛이 쏟아지면서 마치 영화 속 영웅처럼 등장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C-SPAN 캡처=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그의 뒤로 빛이 쏟아지면서 마치 영화 속 영웅처럼 등장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C-SPAN 캡처=연합뉴스]

 
이란이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의 사망에 대응해 보복할 경우 그 이상으로 되갚아주는 “불균형적 보복”을 경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을 피할 ‘출구’를 열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편으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비롯한 참모들이 도열해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편으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비롯한 참모들이 도열해 있다. [EPA=연합뉴스]

 

⓵“일부러 빗나가게 쐈다”

 
8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란의 일부 정밀 유도 미사일이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래사막을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알아사드 공군기지 중에서도 인구가 덜 밀집된 지역을 목표로 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8일 이라크 알아사드 미군기지를 향해 발사되는 이란 미사일. [이란 TV 화면 캡처]

8일 이라크 알아사드 미군기지를 향해 발사되는 이란 미사일. [이란 TV 화면 캡처]

 
로이터통신 역시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고의적으로 미군 기지를 빗맞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날 보도했다.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부러 기지의 일부분만 타격했다는 것이다. 실제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동 지역 미군 병력과 주요 기지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중동 지역 미군 병력과 주요 기지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이 미국을 건드릴 수 없다’며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하고, 동시에 이란 역시 보복 공격을 통해 명예를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줬다”고 이번 사태를 평가했다.      
 

⓶제3국에 “싸움 말려 달라”

 
이란이 제3국을 통해 일종의 ‘중재’를 요청한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하기 전, 이라크에 미리 공격 계획을 귀띔했다. 8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주테헤란 이라크 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이라크 정부가 발표한 대로 이란은 이라크군과 이라크 정부에 미사일 공격 작전을 사전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이라크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매우 중요하게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실상 이란이 공격 사실을 미국에 미리 알려 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상업용 위성 운영업체 플래닛 랩스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라크의 알아사드 미군 기지가 입은 피해 상황이라고 밝힌 인공위성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상업용 위성 운영업체 플래닛 랩스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라크의 알아사드 미군 기지가 입은 피해 상황이라고 밝힌 인공위성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이에 앞서 이라크 총리실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 기지를 공격하기 직전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에게 계획을 간략히 구두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라크는 이처럼 이란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미국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군은 이란이 미사일 공격을 하기 전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미국과 이란은 스위스 외교 채널을 통해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서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CNN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7일부터 스위스를 포함한 최소 3개의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과의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⓷“백악관, 이란 공격 3시간 30분 전부터 회의”

 
NYT는 이란의 공격을 미리 파악한 백악관이 공격 약 3시간 30분 전부터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NYT는 “백악관의 안보라인 핵심 참모들은 7일 오후 2시쯤부터 모여 회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격에 앞서 이란이 이라크에 알려준 정보를 이라크가 미국에 전해줘 가능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그로부터 약 3시간 30분 후인 오후 5시 30분(미국 동부시간 기준)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라크 현지 시간은 7일 오전 1시 30분쯤이었다. 공격 17시간 정도가 지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모든 미군은 안전하며, 기지는 최소한의 손해만 입었다”고 밝혔다. 
  
미국 시민들이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이란과의 전쟁 금지’ 시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연합뉴스]

미국 시민들이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이란과의 전쟁 금지’ 시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이처럼 출구를 모색했지만, 이란의 군사적 도발이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NYT는 “이란이 비례적 대응을 끝냈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란이 군사 작전을 끝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슬람 성지 곰에서 열린 연설에서 “간밤에 우리는 미국의 뺨을 한 대 때렸을 뿐”이라며 “보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역시 트위터를 통해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대답은 모든 미군을 이 지역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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