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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이 알려준 내 나이 오십, '각성한 중년'으로 살리라

중앙일보 2020.01.09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30)

 
자전거를 처음배우는 어른처럼 똑바로 앞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그리고즐겁게 50세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진 Unsplash]

자전거를 처음배우는 어른처럼 똑바로 앞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그리고즐겁게 50세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진 Unsplash]

 
“어, 바뀌었네. 50대로!” 
평소 이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체크하기 위해 열어보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 랭킹 페이지. 그중에서도 제일 위쪽에 위치한 ‘연령별 많이 본 뉴스’는 세대별 관심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어 틈틈이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1월 1일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는 순간 ‘50대 이상’으로 페이지의 카테고리가 달라진 게 아닌가. 50세가 된 걸 인터넷으로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되다니! 알고리즘으로 서비스를 구현하는 ‘멋진 신세계’가 맞네. 쓴웃음을 지으며 기사들을 살펴보았더니 40대 카테고리보다 조금 더 정치 관련 뉴스가 많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관심사가 다양하고, 나이가 들수록 중요 이슈에 집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0세를 확인하며 새해 첫날을 맞았다. 근래 몇 년 동안 ‘얼른 50대가 되고 싶어, 그러면 나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아’라며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막상 그 날이 되니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마음을 눌렀다. 나쁘지 않은 묵직함이었다. 시간이 좀 더 소중해지고, 가족과 친구가 좀 더 애틋해지는 느낌 말이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더 귀한 날들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까지 생긴다.
 
새해가 되자 뉴스 랭킹 사이트의 연령대별 페이지가 바뀌었다. [사진 Daum]

새해가 되자 뉴스 랭킹 사이트의 연령대별 페이지가 바뀌었다. [사진 Daum]

 
돌이켜보면 서른이 되었을 때 그리고 마흔이 되었을 때는 마음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열정으로 부딪히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닌 20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숨을 고르고 내 페이스대로 다시 한번 나아가고 싶었고, 정리된 길 위에서 여한 없이 일했던 30대 이후 마흔 살이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더 견고하게 다지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자 했던 40대를 지나 지금 쉰을 맞았다.
 
“50대가 되는 지금은, 무엇인가 이전과는 다른 일들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입니다. 삶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된 게 이전과 다른 가장 큰 변화이니, 보폭과 속도, 방향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깁니다. 소소하게 말이에요. 모든 걸 붙잡지 않고 필요한 것만 과감하게 선택할 수도,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아내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하니까요.” 
 
1월호 ‘우먼센스’ 편집장 글에 적은 50세의 소회가 딱 지금 나의 마음이다. 욕심을 덜어내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렇기 때문인지 새로운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려면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해 늘 자각하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이때 필요한 것이 책이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애장도서 한 권을 끄집어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의 강연록을 정리한 에세이 『삶과 나이』. ‘완성된 삶을 위하여’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삶을 태아, 유년시절, 청년, 성년, 중년, 노년, 고령기로 나눠 들여다보고 시기별 특징과 맞닥뜨리는 위기, 지향해야 할 가치와 과제를 차분하게 전달한다.
 
언제나 나의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로마노 과르디니의〈삶과 나이〉. [문학과지성사]

언제나 나의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로마노 과르디니의〈삶과 나이〉. [문학과지성사]

 
그중 내가 맞이한 50세는 굳이 맞춰 보자면 중년기인 셈이다. 저자는 책에서 사람마다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20대 말에서 40대 중반까지를 성년기로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원기 왕성한 시기. 자기가 진리라고 믿는 이념이 정확한 현실 인식과 결합해야만 진짜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강해 업적과 성취를 위해 시간과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시간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가 가진 힘의 한계를 분명하게 느끼게 되고, 위기가 시작된다. ‘계속 더 일하고, 더 싸우고, 더 책임을 떠맡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무슨 일에든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시점, 이때부터 중년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한계 경험의 위기가 다가오면 피로하며, 흥분이 사라지고 권태가 느껴진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중년의 모습은 달라진다.
 
가장 좋은 모습은 진지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삶을 긍정하고,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감정을 새롭게 살려 보는 것. 이것이 실현되면 ‘각성한 인간’으로의 중년이 되는 것이다. 한계는 받아들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올바르고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인간 존재를 지탱해주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이런 중년의 시기를 지나 맞이한 노년의 시기에 관해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한계를 알게 된 중년, 그 위기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먹은 중년. 이렇게 나의 모습을 정리했기에 앞으로 다가올 노년의 시기도 겸손하게 준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완성된 삶’이란 결국 각 시기의 위기를 경험하고 헤쳐 나가며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50대가 많이 보는 뉴스가 이 전 세대들이 많이 보는 뉴스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겹치는 뉴스도, 달라지는 뉴스도 있다. 이 차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나이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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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필진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 전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현 우먼센스 편집장. 20~30대 여성으로 시작해 30~40대 여성까지, 미디어를 통해 여성의 삶을 주목하는 일을 25년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나이 또래인 50대 '갱년기, 중년여성'의 일상과 이들이 마주하게 될 앞으로의 시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더오래’를 통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호르몬의 변동기인 이 시기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모색하며 동년배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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