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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판 베트남전’ 피했다…"게릴라전 장기화로 트럼프 몰락"

중앙일보 2020.01.09 14:54
1975년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 함락 당시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탈출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사진은 네덜란드 출신 종군 사진기자인 휴 판 에스가 촬영한 것이다. [중앙포토]

1975년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 함락 당시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탈출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사진은 네덜란드 출신 종군 사진기자인 휴 판 에스가 촬영한 것이다.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확전을 피한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공격 직후 “전쟁을 원하진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 미국 수뇌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란 측 주장과는 달리 이번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변수였다. 기지 두 곳 모두 이라크군과 함께 쓰는 이라크 관할지란 점에서 군사시설 훼손만으로는 응징 명분도 약했다.     
 

하메네이 고문 "베트남 넘는 수렁"
혁명수비대 등 사보타주 등 우려
스텝 꼬이면 전쟁 목표만 확대
'눈에는 눈' 관례상 이미 주고받아

그런데 일각에선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장기 게릴라전 상황을 우려했을 가능성도 지적된다. 이른바 ‘중동판 베트남전’ 시나리오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9일 “미군이 적대국 본토를 공격하는 동안 상대가 게릴라전을 펼쳐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에 큰 ‘시간 비용’으로 작용, 결국 정권이 흔들리는 베트남전의 재림”이라고 짚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외교 고문인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는 “(전쟁이 나면 미국은) 베트남 이상으로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및 핵심 참모들과 함께 전날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및 핵심 참모들과 함께 전날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군사력 자체만 놓고 보면 이란은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란은 이번 탄도미사일 공격처럼 실질적인 피해와 심리적인 충격을 동시에 주기 위한 비대칭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란은 1000여기의 각종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또 12만이 넘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시리아 내 친이란 무장조직과 결탁해 게릴라전이나 파괴공작(사보타주)을 일으키는 상황도 떠올릴 수 있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10년간 전쟁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상황과 판박이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의 전쟁 목표 설정도 관건이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① 이란 정부나 군사시설을 미사일이나 드론으로 제한 타격, ② 해외에서 활동 중인 혁명수비대 소탕, ③ 이란 레짐 체인지 등의 시나리오 가운데 미국이 ①을 선택하면 이란이 반격해 결국 미국이 ②의 상황에 말려들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어느새 ③으로 목표가 옮아가는 악순환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미군 수뇌부의 판단을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트럼프의 당면 최대 목표가 올해 11월 대선에서의 승리인 만큼 악수는 피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무장조직인 카타이브 헤즈볼라 대원들이 지난 1일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불을 지르며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무장조직인 카타이브 헤즈볼라 대원들이 지난 1일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불을 지르며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된 흐름을 놓고도 확전이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눈에는 눈’이란 중동 지역의 오랜 ‘보복 관례’에 따라 양국이 서로 주고받을 건 다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먼저 미국 주장에 따르면 이라크 미국기지와 미국대사관 습격사건은 이란이 선동한 결과다. 미국은 이들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거셈 솔레이마니 쿠두스군 총사령관을 제거했다. 이란은 보복 차원에서 솔레이마니를 공습한 드론(RQ-9 리퍼) 출격기지(아인 알 아사드 기지)를 원점 타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미국이 보복 응징에 나선다면 선을 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긴장이 계속되고 있어 친이란 세력의 미국인 대상 테러 등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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