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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아기 탯줄 묻은 신성한 곳…경기도, 태봉 보호 나선다

중앙일보 2020.01.09 10:40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의 한 야산엔 예사롭지 않은 석조물이 있다. 조선 시대 제11대 왕인 중종의 '태봉(胎封·또는 태실)'이다. 
조선 제 11대 왕인 종종의 태봉. 경기도 가평군에 있다. [사진 경기도]

조선 제 11대 왕인 종종의 태봉. 경기도 가평군에 있다. [사진 경기도]

 
태봉은 왕실에서 태어난 왕자와 공주·옹주 등의 '태(태반·탯줄 등)'를 길지(吉地)를 선정해 봉안한 것이다. "태는 곧 아기의 생명선이자 근원"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조선 시대엔 태봉 주변 500m 내외의 경작을 금지하고 어기면 벌을 줄 정도로 신성하게 여겼다고 한다.
 
태봉처럼 '태'를 보존하는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에 가평군은 1986년 6월 중종의 태봉을 향토유적 제6호로 정하고 관리해 왔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태봉, 개발로 사라질 위기

모든 태봉이 중종의 태봉처럼 보호된 것은 아니다.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에 있는 태봉은 모두 25개다.
 
경북(37곳)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경기도가 최근 재조사한 결과 절반 정도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경기도는 조선 왕실의 태봉을 보호·관리한다고 9일 밝혔다. 지난해 11~12월 각 시군과 실태조사를 한 결과 현재 남아있는 도내 태봉은 13곳으로 확인됐다. 12곳은 이미 사라졌거나 위치가 불분명했다.
 
남아있는 태봉 중에서도 시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가평 중종 태봉과 화성 정숙 옹주(조선 14대 왕 선조의 딸) 태봉, 포천 만세교리 태봉(조선 21대 왕 영조의 딸), 포천 익종 태봉(조선 24대 왕인 헌종의 아버지) 등 4곳이다. 이 밖에도 가평 영창대군 태봉, 김포 조강리 태봉, 안산 고잔동 태봉, 연천 회억옹주 태봉, 포천 무봉리 태봉, 안성 영조 옹주 태봉 등 6곳이 더 있다. 다른 3곳은 누구의 태가 묻힌 곳인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조선 영조대왕의 딸 화완옹주의 태봉 [사진 경기도]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조선 영조대왕의 딸 화완옹주의 태봉 [사진 경기도]

고양시에 있던 세종대왕의 장녀 정소 공주 태봉 등 7곳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광주 성종 왕녀 태봉 등 5곳은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실의 전통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태봉이 많이 파괴·훼손된 상태에서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많은 태봉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있었던 고양시에서만 3곳의 태봉이 사라졌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익종의 태봉. 익종은 조선 24대 왕인 헌종의 아버지로 추존왕이다. [사진 경기도]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익종의 태봉. 익종은 조선 24대 왕인 헌종의 아버지로 추존왕이다. [사진 경기도]

경기도 "잔존 확인 태봉 도 문화재 지정, 보호할 것" 

경기도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태봉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승격해 보호·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위치를 찾지 못한 태봉은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도는 잔존이 확인된 태실은 도 문화재 지정 또는 승격을 통해 보호하고, 위치를 찾지 못한 태실은 추가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태봉은 전체 320곳인데 위치나 주인이 확인된 곳은 122곳밖에 안 된다"며 "경기도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1곳 중 31곳을 보유한 왕실문화의 보고(寶庫)이니 학계와 중앙부처에만 의지하던 틀에서 벗어나 직접 보존계획을 수립하는 등 새로운 경기도의 문화자원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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