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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찬찬히 하고 낮에 눕지 않고…어느 선비의 새해 다짐

중앙일보 2020.01.09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65) 

 
이즈음 누구든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200년 전 사람들은 새해를 어떻게 맞았을까. 18세기 한 선비의 문집에 '원조자경'이라는 새해 다짐이 나온다. ‘설날 아침에 스스로 경계하다’라는 제목 아래 12가지 실천 항목을 적고 있다.
 
◦어버이의 명을 따른다
◦형과 어른을 공경한다
◦새벽에 일어나 어버이께 문안한다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어버이 음식을 살핀다
◦추위와 더위에 반드시 어버이 거처를 점검한다
◦매월 초하루 조상의 사당에 참배한다
◦대낮에 눕는 것을 경계한다
◦앉을 때는 다리 뻗고 앉지 않는다
◦말할 때는 반드시 찬찬하고 자세하게 한다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바쁘게 하지 않는다.
◦매사에 너무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다.
 
무릇 이 몇 가지 일은 모두 내가 살피지 못한 것들이다. 이에 새해의 초하루에 뜻을 세워 다시 시작한다.
 
괴담이 낮에는 해시계로 시간을 재고 밤이면 별자리를 관측했다고 전해지는 연못 직방당(直方塘). [사진 공정식]

괴담이 낮에는 해시계로 시간을 재고 밤이면 별자리를 관측했다고 전해지는 연못 직방당(直方塘). [사진 공정식]

괴담의 7대손인 배기면(60)씨가 조상이 제작한 혼천의를 설명하고 있다.

괴담의 7대손인 배기면(60)씨가 조상이 제작한 혼천의를 설명하고 있다.

 
이 다짐을 남긴 사람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1759∼1789)이다. 괴담은 30년 짧은 생애를 천문학에 빠져 천체의 운행원리를 이해하는 천문기기 혼천의(渾天儀, 또는 선기옥형)를 직접 만들어 공부에 활용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경북 봉화 집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는 연못 둑 정남향에 일영대(日影臺)로 이름 붙인 해시계를 두고 밤에는 그곳에서 하늘을 관측한 흔적이 남아 있다.
 
괴담은 천문학과 함께 유학(儒學)을 공부하고 효의 실천 등 사람의 도리를 실천궁행했다. 문집 『괴담유고』에 전하는 원조자경도 그런 실천 항목이다. 그러나 괴담은 마지막 행동지침을 어기고 학문에 지나쳐 단명한 듯하다.
 
김진동이 쓴 '행장(行狀)'에는 괴담의 됨됨이가 잘 드러나 있다. 집안이 가난해 어머니가 옹기로 물을 긷자 “어찌 노모에게 이런 일을 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매일 새벽 일어나 그 일을 대신했다. 그러면서도 책을 끼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글을 읽었다고 한다.
 
경북 봉화군의 녹동이사는 나라가 괴담을 기려 세운 추모와 강학의 공간이다.

경북 봉화군의 녹동이사는 나라가 괴담을 기려 세운 추모와 강학의 공간이다.

 
그는 또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도 적었다. “손님을 접대하는 절도는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없는 데도 억지로 성대하게 음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이것은 계속 잇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성심을 다해 교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다.
 
이웃과의 관계도 정리했다. “이웃과 지내는 도리는 모나게 이기려고 마음먹어서는 안 된다. 대체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이웃이 불선(不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신의가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웃과 화합하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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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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