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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패션 잡지' 가능할까…보그 이탈리아의 실험, 왜

중앙일보 2020.01.09 05:03
‘사진 없는 패션 잡지’가 가능할까? 패션 잡지 ‘보그’ 이탈리아가 2020년 1월호를 사진 없는 잡지로 출간한다고 밝혔다. 잡지에 실리는 패션 화보는 물론 표지(커버)조차도 사진이 아닌 삽화로 대신한다.  
 
보그 이탈리아 2020년 1월호 표지. 환경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 대신 삽화로 표지를 대신했다. 총 8개의 다른 표지가 제작됐다.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보그 이탈리아 2020년 1월호 표지. 환경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 대신 삽화로 표지를 대신했다. 총 8개의 다른 표지가 제작됐다.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지난 1월 2일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에마누엘레 파네티(Emanuele Farneti)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사진 촬영을 생략해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겠다"는 내용을 밝혔다. 더불어 보그 이탈리아 인스타그램 계정에 8개의 삽화 표지를 공개했다.  
 
삽화는 실제 모델의 얼굴과 의상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번 삽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구찌 2020 SS 컬렉션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구찌]

삽화는 실제 모델의 얼굴과 의상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번 삽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구찌 2020 SS 컬렉션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구찌]

사진 없는 잡지를 출간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될까. 에마누엘레 파네티는 “2019년 9월호 보그 이탈리아에는 총 8개의 패션 화보가 실렸다”며 “이 화보들을 촬영하기 위해 15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이를 위해 20번의 비행, 12번 이상의 기차 여행, 40대의 차량 대기, 60여개의 국제 배송이 있었고 10시간 쉬지 않고 조명을 켰으며 가솔린 연료의 각종 설비를 사용했고, 케이터링 서비스로 인한 음식물 낭비,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각종 장비가 쓰였으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위한 전력 등이 소비됐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패션 잡지에선 새로운 시즌의 트렌드와 다양한 브랜드가 내놓은 새 컬렉션을 보여주기 위해 신제품을 활용한 화보를 촬영한다. 이를 위해 사진가, 모델,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스타일리스트, 세트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전문 인력들과 협업한다. 스튜디오가 아닌 외부에서 촬영할 때는 많은 전문 인력이 먼 거리로 이동해야 하고, 간혹 해외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옷을 해외에서 공수하기도 한다.  
 
보그 이탈리아의 파네티 편집장은 이런 과정을 생략해 잡지 한 권을 만들 때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촬영 대신 이탈리아 예술가 바네사 비크로프트, 미국인 화가 카시 나모다, 이탈리아 만화가 밀로 마나라 등과 협업해 삽화를 제작했다. 삽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옷을 입고 있다. 이 삽화들은 실제 모델의 얼굴을 참조하고,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제작됐다.  
 
각각 다른 그림으로 제작된 8개의 표지는 촉망받는 만화가, 화가 등과 함께 작업했다.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을 받아 실제 모델의 얼굴을 참조해 제작됐다.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각각 다른 그림으로 제작된 8개의 표지는 촉망받는 만화가, 화가 등과 함께 작업했다.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을 받아 실제 모델의 얼굴을 참조해 제작됐다.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보그 이탈리아는 올해로 출간 55년을 맞는다. 사진이 아닌 삽화로 표지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월호 기사 내용도 의류 재활용 및 의류 제조 폐기물 감소 등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주제를 담는다.  
 
뉴욕타임스는 보그 이탈리아의 이번 시도에 대해 보도하면서 “대담한 결정이지만 1월호 한 권에만 해당하기에 일종의 제스처일 뿐 실질적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장기적인 변화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에마누엘레 페네티.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에마누엘레 페네티. [사진 보그 이탈리아 홈페이지]

 
이런 비판을 예견한 듯 파네티 편집장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사진 없는 잡지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이번 결정은 우리가 지속할 수 있지 않은 산업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또 “변화는 어렵지만 우리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요청할 수 있는가”라고 덧붙였다.  
 
1월호를 진행하며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아 절약된 제작비는 지난해 11월 홍수로 인해 손상된 베니스의 문화 센터 및 도서관 수리를 위해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기부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보그 이탈리아의 모회사인 콘데나스트 이탈리아는 앞으로 출간하는 잡지를 포장할 때 100% 분해되는 비닐만 사용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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