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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용사 자녀 이름까지 챙겨···대전현충원 '얼굴없는 천사'

중앙일보 2020.01.09 05:00
국립대전현충원(대전현충원)에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로 6년째 성금을 보내왔다.  

경기도 수원서 독지가 대전현충원에 100만원 보내
권율정 전 현충원장, 천안함 용사 자녀에 6만원씩
권 전원장, "올해 천안함 폭침 10주년이라 의미"
'얼굴없는 천사', 2015년부터 해마다 소액 기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얼굴없는 천사'가 권율정 전 국립대전현충원장에게 보낸 우편물. 이 우편물 안에는 25만원권 전신환 4장(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권 전 원장은 이 돈을 순직 천안함 46 용사 자녀에게 전달했다. [사진 권율정 전 대전현충원장]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얼굴없는 천사'가 권율정 전 국립대전현충원장에게 보낸 우편물. 이 우편물 안에는 25만원권 전신환 4장(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권 전 원장은 이 돈을 순직 천안함 46 용사 자녀에게 전달했다. [사진 권율정 전 대전현충원장]

 
권율정 부산지방보훈청장(전 대전현충원장)은 8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가 지난해 12월 초 성금 100만원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권 청장은 지난해 6월까지 모두 세 차례 대전현충원장을 지냈다. 권 청장에게 보내온 편지봉투 크기의 우편물 안에는 25만 원권 전신환 4장이 들어있었다. 
 
보낸 사람 주소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보낸 사람은 ‘진표’로 적혀 있었다. 권 청장은 “이 독지가가 내가 아직 대전현충원장으로 일하는 줄 알고 보낸 것 같다”며 “이 분은 2015년부터 해마다 연말 또는 연초에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씩 성금을 보낸 사람과 동일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권 청장은 “이 독지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받는 사람을 지정했는데 올해는 사연 없이 돈만 보냈다”고 덧붙였다.    
 
권 청장은 이 성금을 천안함 순직 46용사의 자녀 16명 전원에게 6만원씩 96만원을 송금했다. 이어 천안함 용사 자녀 가운데 고교생 6명에게 1만원씩을 추가로 입금했다. 성금으로 부족한 2만원은 권 청장이 보탰다. 그는 “올해가 천안함 폭침 10주기인 데다 대전현충원장으로 일할 때 순직 용사 안장식도 직접 주관했다”며 “천안함 가족은 가족과 같은 느낌이 들어 이번에는 성금을 이들 용사 유가족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얼굴없는 천사는 2018년 말에도 100만원을 보냈다. 당시 권 원장에게 도착한 우편물에는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어민혁 소령, 박정수, 권성호 중령의 자녀에게 전달해 달라는 글과 25만원권 전신환 4장이 담겨 있었다.  
 
세 통의 엽서에 자녀들의 이름을 모두 적은 뒤 ‘입학을 축하합니다.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길…’이라는 손글씨도 남겼다. 대전현충원에 따르면 얼굴없는 천사는 2017년 응급환자 이송 중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선효선 간호장교, 2018년 수원비행장에서 순직한 블랙이글스 소속 김도현 소령의 자녀에게 교복 구매비를 보내기도 했다. 필체가 유사할 뿐 아니라 발신 우체국도 경기 수원역점으로 같아 동일인이 계속 성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대전현충원측은 전했다.
 
권율정 청장은 “성금으로 보내준 통상환증서를 보낸 분 이름이 해마다 달라 실명을 알 수 없다”며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하기 위해 우체국에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얼굴없는 천사는 묘소에 돌화병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2015년부터 현충원 내 50여 개 묘소에는 ‘가정주부’ 등의 이름으로 돌화병이 놓이고 있다. 돌화병에는 어김없이 꽃이 꽂아 있고 추모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권율정 전 대전현충원장이 대전현충원 묘역에 놓인 돌화병을 닦고 있다. 이 돌화병도 돈을 보낸 얼굴없는 천사가 갖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김성태

권율정 전 대전현충원장이 대전현충원 묘역에 놓인 돌화병을 닦고 있다. 이 돌화병도 돈을 보낸 얼굴없는 천사가 갖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김성태

 
‘알아주고 헤아리며 기억합니다. 공주님 시은과 강정순님 위해 기도와 힘찬 응원 합니다. 2016년 2월 3일 영화 연평해전 관람객 : 좋은 삶을 응원하는 가정주부’ 
이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참수리 357호 고(故) 조천형 중사 묘소의 화병에 새겨진 문구다.  
 
'기억합니다. 지식은 경험자 앞에서 구식입니다. 2017년 9월 5일’ 천안함 46용사 구조 과정에서 순직한 해군 특수전(UDT/SEAL)요원 고 한주호 준위 묘소의 화병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현충원 측은 이 독지가가 묘소를 방문해 추모한 뒤 비석에서 자녀 이름을 확인하고 엽서를 보낼 때 정확하게 적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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