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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대통령 비판 대자보 붙였더니 ‘건조물 침입범’

중앙일보 2020.01.09 00:44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사람은 ‘건조물 침입범’으로 몰려 전과자 신세가 될 것 같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최근 천안 단국대에 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김모씨(25)에 대해 ‘건조물 침입’ 혐의로 100만원 벌금형에 약식기소했다. 만일 김씨의 처벌이 확정돼 전과자가 되면 대학을 갓 졸업한 이 젊은이는 취업이나 일상에서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요즘 청년들에게 선망의 직업인 공무원 되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5공 때 자고 일어나면 대학 캠퍼스에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586 인사들이 집권한 정부에서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을 ‘건조물 침입범’으로 형사 처벌하려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자보 붙인 청년, 불법침입 기소
학교 측 수사의뢰 안 했는데 강행
이런 수준으로 수사권 자격있나

더 황당한 것은 김씨가 ‘불법 침입’했다는 단국대 측이 “김씨가 우리 의사에 반해 불법 침입한 사실이 없다”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데도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침입범’이라며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였기에 수사한 것이냐”는 본지 질문에 “대자보는 관계없고, 단국대가 (김씨) 수사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단국대) 의사에 반해 들어갔으면 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하지만 단국대 입장은 전혀 다르다.
 
김형수 단국대 학생처장(행정학과 교수)은 본지 통화에서 “단국대가 김씨를 수사 의뢰하거나 고소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김씨 기소가) 이해가 안 된다. (경찰이) 우리 단국대를 걸고넘어진 것인데 아주 불쾌하다. 만일 우리를 곤란한 상황에 연루시킨 게 사실이라면 강력하게 그쪽(경찰)에 문제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물었다.
 
경찰은 단국대가 수사의뢰 했다는데.
“업무상 협조 차원에서 경찰에 내용을 전달한 것뿐이지, 수사를 요청한 게 전혀 아니다. 우린 김씨가 기소된 사실조차 당신 얘기 듣고 처음 알았다. 정말 수사 의뢰를 했다면 모를 수가 있겠는가”
 
경찰은 단국대 의사에 반해 김씨가 들어갔으니 범죄라는데.
“그걸 왜 자기들(경찰)이 판단을 하나. 우리 대학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다. 천안 캠퍼스는 교문이 개방형이다. 그런데 건조물 침입이라니, 법률적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학교 측 허락을 받지 않고 게시된 유인물이 있다 해도 떼어낼 뿐이지, 그걸 붙인 사람을 잡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럴 권리도, 그런 전력도 없다. 특히 (정치적 주장을 담은) 대자보는 함부로 떼지 않는다.”
 
단국대는 김씨의 처벌을 원하나.
“그가 우리 대학에 해를 끼친 것이 아닌데 무슨 처벌을 원하겠나. 우리는 그런 대학 아니다. 외부인이 우리 대학에 들어와 대자보를 붙이는 걸 지금까지 처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5공 시절 대자보 붙이다 경찰에 쫓긴 학생을 보호해준 대학이고 심지어 학생 운동했던 사람들을 교수로 키운 대학이다.”
 
경찰이 김씨를 조사한 과정을 보면 수사의 초점이 드러난다. 경찰은 김씨에게 “대자보를 소지하게 된 경위와 붙인 이유가 뭐냐”“대자보가 어떤 내용이었나”고 캐물었다. 대자보와는 무관하게 ‘건조물 침입’ 혐의로 수사했다면서 왜 대자보 소지 경위나 내용을 묻나. 대자보가 정권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이니 표적 수사를 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질문이다. 경찰은 김씨에게 “해당 건물 관리자와 합의하에 들어갔느냐”고도 물었다. 만인에게 개방된 대학 캠퍼스에 출입하면서 관리자를 찾아가 ‘합의’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나. 김씨가 “(합의) 안 했다”니까 경찰은 “관리자와 합의하지 않은 채 ‘침입’한 걸 인정하느냐”고 추궁했다. 김씨가 졸지에 ‘건조물 침입범’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만약 김씨가 문 대통령을 찬양하는 대자보를 붙이러 대학에 들어갔어도 경찰이 이렇게 열심히 CCTV 돌리고 차적조회를 해 ‘침입범’을 잡아냈을지 의문이다.
 
김씨 뿐 아니다. 경찰은 북한의 선전기법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패러디해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청년들에게 ‘과잉·표적 수사’ 의혹이 다분한 철퇴를 휘두르고 있다. 모욕죄나 명예훼손, 심지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처벌하려다가 ‘법리상 불가’란 지적을 받자 ‘건조물 침입죄’를 전가의 보도로 들고나와 청년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양상이다. 국민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경찰, 그 경찰의 수사내용을 그대로 기소한 검찰. 정부가 사법개혁을 한다며 아무리 ‘수사권 조정’을 떠들어도 법 아닌 정권만 바라보는 검경의 의식구조가 혁파되기 전엔 백년하청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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