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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세불안 고조되는 중동, 미국의 선택은

중앙일보 2020.01.09 00:31 종합 29면 지면보기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는 미국이 ‘공짜 안보(free security)’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분석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큰 바다에 둘러싸여 외부 침략에 대한 노출이 덜하다는 것이다. 국경을 접한 유럽 열강이 세력 균형 외교 전략에 골몰할 때 미국은 중립 노선을 고수했다. 진주만 피격으로 민주당 행정부가 2차 대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종전 후 1946년 중간 선거에선 “이제 그만”이라는 슬로건으로 공화당이 대승을 거뒀다. 소련 공산주의와의 냉전이 시작된 후에야 미국 외교 정책은 대전환을 맞게 된다.
 

미국 유권자, 비개입주의 선호
공격받으면 군사주의 강해질 것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내건 글로벌 리더십 시대에도 미국의 비(非)개입주의 성향은 지속되고 있다.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한 아이젠하워 고별 연설,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가 해결하라는 닉슨 독트린,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카터, 국내 문제 해결을 외치며 당선된 오바마에 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까지 글로벌 이슈보다는 자국 이익을 먼저 챙기는 미국 정치와 외교 역사의 뿌리는 깊다.
 
동시에 2차 대전 이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하에서 미국의 군사주의적 정책·문화가 방대해졌다. 미국 외교정책의 딜레마가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의 방위산업은 국내적으로 미국 의회, 국제적으로 동맹 군대와 연결되면서 영향력을 키워 왔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특정 정당, 즉 공화당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군사 기지를 남부로 이전한 닉슨, 개신교 세력을 등에 업고 군사주의에 종교 문화를 가미한 레이건, 9·11 사태 후 애국심에 호소하며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당의 상하원 의석을 모두 늘린 아들 부시 등 공화당은 군사주의 정책·문화와 밀접하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고 대규모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민주당 출신 오바마는 9·11의 주범 빈 라덴을 사살하고 경제 회복 불씨를 살렸다. 트럼프는 이라크·시리아 등에서 미군 철수를 추진 중이었다. 비개입주의 전통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 나아가 중동 정세 불안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국내 정치 변수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볼튼 전 안보 보좌관이 상원에서 증언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증인 없는 탄핵 심판을 추진할 기세다. 아이오와 경선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민주당의 경우, 2002년 이라크 전쟁 표결에 찬성한 바이든 부통령을 샌더스 후보가 다시 공격하고 나섰다. 솔레이마니를 테러리스트가 아닌 ‘이란 정부 고위 관료’라고 발언한 워런 후보에 대해 보수 언론은 색깔론을 제기한다.
 
사실 이라크 전쟁 실패를 철저히 맛본 미국 국민은 이란 문제로 다시 중동에 개입하는 걸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사관 혹은 군부대가 공격당하면 군사주의 목소리는 다시 커질 것이다. ‘게임 체인저’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 개신교 세력이 들고일어나 트럼프 지지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고, 미국의 언론과 민주당도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트럼프는 위기때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미국 정치 분위기에 고무될 게 분명하다.
 
선거의 나라 미국에서 비개입주의는 포스트 이라크 시대 유권자가 선호하는 방향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강경파의 반발에도 시리아 철군을 밀어붙인 이유다. 그러나 한 대 맞으면 두 세배로 응징하는 미국의 군사주의 문화 또한 여전히 강력하다. 고립주의와 군사주의 사이의 갈등은 미국 외교의 딜레마다.
 
대통령 선거의 해, 트럼프의 선택은 예측하기 어렵다. 어쩌면 트럼프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됐고, 결국 누구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정세가 흘러가도록 한 책임자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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