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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미래에 부담 떠넘기는 ‘동일 서비스, 동일 요금’

중앙일보 2020.01.09 00:26 종합 24면 지면보기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동일 서비스, 동일 요금’
 

정부, 민자도로 요금 연이어 인하
‘동일 서비스, 동일 요금’ 내세워
현세대엔 이득, 미래세대엔 부담
승용차 이용 부추기는 부작용도

정부가 민자(民資)고속도로의 통행료를 연이어 낮추면서 내걸고 있는 구호다. 고속도로는 다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민자도로의 요금도 한국도로공사(도공)가 운영하는 재정(財政)고속도로와 비슷하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에선 이를 민자도로의 공공성 강화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국민의 통행료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2018년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과 서울~춘천고속도로, 수원~광명고속도로의 통행료를 인하했다. 지난해 초에는 구리~포천고속도로, 지난 연말에는 천안~논산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낮아졌다. 천안~논산고속도로의 인하 폭은 최대 51%나 된다.
 
정부가 민자도로의 통행료를 낮추면서 사용한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재조달이다. 기존 사업자의 지분구조와 조달금리 등을 조정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통행료 인하에 쓰는 방식이다. 민자도로의 통행료가 재정도로에 비해 크게 높지 않은 경우에 사용한다. 서울~춘천, 수원~광명, 구리~포천고속도로가 그랬다.
 
지난해 12월 23일 정부와 한국교통연구원, 민자사업 관계자들이 천안~논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인하를 홍보하 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2월 23일 정부와 한국교통연구원, 민자사업 관계자들이 천안~논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인하를 홍보하 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행료 격차가 큰 민자도로에는 ‘사업 재구조화’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민자도로는 민간사업자가 자금을 투입해 도로를 건설하고 이후 30년 동안 운영하면서 통행료 수입 등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기존 민간사업자로서는 투자비 회수 때문에라도 정부 요구대로 통행료를 낮추기 어렵다.
 
그래서 30년의 기간이 끝난 뒤 운영권을 넘겨받아 추가로 20년간 운영하면서 투자비를 뽑아낼 새로운 민간사업자를 구한다. 이 사업자가 통행료 인하에 따른 기존 사업자의 손실을 먼저 메워주고, 나중에 직접 운영하면서 이를 회수하는 게 사업 재구조화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이 이런 방식을 썼다. 천안~논산고속도로도 사업 재구조화를 했지만 새로운 민간사업자가 20년 운영으로는 투자비를 뽑아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도공을 대신 신규 투자자로 내세웠다. 어떤 방식이든 이들 민자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통행료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동일 서비스, 동일 요금’ 정책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있다. 무엇보다 현세대가 혜택을 보기 위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점이다. 민자도로는 애초 정해진 운영 기간이 끝나면 새로 관리기관을 지정해서 운영토록 할 예정이다. 이때 받게 될 통행료는 재정도로에 비해서도 더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비 등 투자비가 이미 회수됐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 정도만 통행료에 반영하면 된다.
 
정부는 민자도로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통행료를 낮추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는 민자도로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통행료를 낮추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지금 방식처럼 하면 기존 운영 기간(30년) 외에 추가로 20년 동안 재정도로와 유사하거나 조금 비싼 통행료를 계속 내야만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한가지는 ‘동일 서비스’라는 판단 기준의 문제다. 정부는 모든 민자도로를 재정도로와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도로가 제공하는 최고의 서비스는 시간 단축이다. 기존 도로보다 대체 도로를 이용할 때 목적지까지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 그 서비스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것이다.
 
이번에 요금을 대폭 낮춘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이 도로는 기존 호남고속도로의 대체재이자 지름길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종전보다 30분 이상 단축된다. 하헌구 인하대 교수는 “천안~논산고속도로와 기존 고속도로를 동일한 서비스라고 평가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동일서비스라며 요금을 거의 재정도로 수준까지 낮췄다.
 
판단 기준도 문제지만 이는 ‘수익자 부담원칙’을 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용자가 그만큼의 비용을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방안대로라면 이용자가 내야 할 비용을 해당 서비스를 접하지도 않는 불특정 다수가 나눠서 지는 셈이 된다.
 
정부가 앞으로 요금을 낮추겠다고 공언한 대구~부산고속도로 역시 마찬가지다. ‘동일 서비스’라는 미명 아래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통행료 인하는 자칫 자가용 이용을 더 부추기는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의 경우 요금 인하 이후 통행량이 10%가량 늘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요금 정책은 대중교통 활성화라는 교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승용차 이용을 부추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천안~논산고속도로의 사업 재구조화처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민자도로의 요금을 낮추기 위해 도공에 짐을 떠넘기다 보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천안~논산고속도로에 도공이 앞으로 12년 동안 투입해야 할 돈은 1조 5000억원이나 된다. 도공은 현재 통행료 수입만으로 건설과 유지관리 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계속 돈을 빌리고 있다. 부채가 28조원이나 된다. 공기업 부채는 최악의 경우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야만 한다.  
 
좋은 취지로 추진하는 정책이라도 옥석을 가리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원성을 피하긴 어려울 듯싶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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