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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새로운 전략 무기는 ‘프라이버시’

중앙일보 2020.01.09 00:03 경제 5면 지면보기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의 ‘프라이버시 관리자 원탁회의’에서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담당 수석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의 ‘프라이버시 관리자 원탁회의’에서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담당 수석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애플이 28년 만에 CES 2020(소비자가전쇼)에 돌아왔다. 애플이 CES에 참가한 건 1992년이 마지막. 당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가 PDA 제품 뉴턴(Newton)을 들고 나왔다. 이후 애플은 너도나도 부스를 여는 정보기술(IT) 박람회와는 거리를 뒀다.
 

28년 만에 CES에 등장한 애플
‘프라이버시 우선주의’ 강조
제품의 심미성·혁신만으론 부족
구글·페이스북과 차별화 노력

그런 애플이 CES 복귀 무대로 택한 주제는 ‘프라이버시(Privacy·사생활 보호)’다. 지난 7일(현지시간) 애플의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담당 수석 이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의 ‘개인정보 관리자 원탁회의’에 토론자로 나섰다. 주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호바스 이사는 “애플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프라이버시를 고려하며, 팀 쿡(애플 CEO)부터 애플 전체에는 프라이버시를 최우선하는 문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우선주의’는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애플 공동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2010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 콘퍼런스에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구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신중하게 다룬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광고로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로 한창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CEO도 이런 철학을 잇고 있다. 2016년 2월 미국 샌 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 연방수사국(FBI)의 아이폰 잠금 해제요구를 거부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팀 쿡 CEO는 “애플은 모든 시민의 데이터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애플은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믿는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애플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애플 생태계의 룰(Rule)로 삼고 있다. 2016년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발표한 ‘차등 사생활(differential privacy)’ 기술이 대표적이다.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특정되는 데이터값 대신 근사치로 데이터를 모아 딥러닝(deep learning)과정으로 보정하는 식이다. iOS 앱 개발사들도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따라야 했다. 애플의 기술 리더십이다.
 
지난해 열린 글로벌 IT 기업의 연례 콘퍼런스 핵심 아젠다도 프라이버시였다. 2018년 이후 미국 IT 거물 기업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영향이다. 조원영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AI 정책연구팀 팀장은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최소한의 규제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강점을 부각하는 세일즈 포인트로 중요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팀 쿡 애플 CEO는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어디에 있고 친구가 누구인지, 세세한 사항을 몰라도 인터넷 광고는 할 수 있다”며 “광범위한 프로필 수집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구글과 페이스북의 방식을 비판했다.
 
이제 페이스북과 구글도 프라이버시 이슈를 무시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페이스북은 서비스 이용기록 삭제 옵션이나 메신저의 완벽한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등을 통해 프라이버시 강화에 나섰다. 구글도 서비스 제공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앱 설정에 ‘프라이버시’ 탭을 만들고, 구글 지도에 사용자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익명 모드(Incognito Mode)를 도입했다.
 
애플은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연례개발자회의(WWDC 2019)에서 ‘애플 로그인(sign-in-with-Apple)’을 공개했다. ‘페이스북으로 로그인’이나 ‘구글 ID로 로그인’ 등을 겨냥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로 로그인할 경우 사용자의 이름·아이디·성별 같은 개인정보나 직업 정보가 페이스북·구글에 광고하는 기업에 제공되는 데 반해, ‘애플로 로그인하기’는 이를 차단했다. “애플은 개인정보를 수익 창출의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애플의 원칙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이제 ‘프라이버시’는 애플의 가장 확실한 전략무기다. 애플 제품의 심미성이나 기술적 혁신만으로는 더는 삼성전자나 구글·페이스북과 차별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 애플은 지난해 유튜브와 TV에 ‘아이폰의 프라이버시-사생활 편’ 광고를 내보내며 ‘프라이버시’ 아젠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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