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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중앙일보 2020.01.08 01: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BTS의 열기를 봉준호가 이어받았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예술성의 바로미터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2019)에 이어, 영화산업의 메카인 미국의 주요 영화상 수상. “아카데미만 남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요 몇 달 새 미국에선 ‘봉하이브’라 불리는 봉준호 팬덤이 뜨거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셀럽들도 가세했다. 애초 ‘기생충’ 개봉 극장은 3개였지만 SNS 호평이 이어지며 620여 개로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모두가 ‘기생충’을 만든 이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열기를 전했다.
 

봉준호 골든글로브 수상, BTS 열풍
지금 가장 핫한 초국가적 문화현상
정치도 한류 문화처럼 할 수 없나

앞서 BTS는 지난해 12월 31일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열린 ABC의 신년맞이 행사에 참석했다. 운집한 팬들이 한국어 떼창을 하며 환호했다. 지난해 BTS가 그래미의 수상 후보에 들지 못했을 땐 외신들이 나서 “보수적인 그래미가 시대에 뒤처진 증거”라며 맹공했었다. 지난달에는 칠레 반정부 시위 뒤에 K팝 팬들이 있다는 칠레 정부 보고서까지 나왔다. K팝 팬들이 관련 멘션을 집중 리트윗해 열기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아미(BTS 팬)들이 정치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CNN은 최근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레이디 가가나 아바타 등 미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했지만 지금은 한류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만큼 한국의 대중문화가 확산했다. 2010년대 영어권 대중문화 지각변동은 한류 등 동아시아 문화의 침투”라고 보도했다.
 
미국 텍사스 M&A 국제대 김주옥 교수는 “미국 문화산업은 로컬·비주류 문화일지라도 영향력 있고 시장 반응이 확실하면 미디어를 동원해 집중적으로 띄워주며 메인 산업의 자양분으로 흡수한다”고 분석했다. 빌보드에서 약진하다 이제는 메인 장르로 안착한 라틴음악처럼 새로운 시장 창출 효과를 노려서다. 계급 갈등을 소재로 한 ‘기생충’과 신자유주의 시대 ‘언더독’ 신화, ‘소수자성’으로 어필한 BTS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그를 비판하는 메시지로 성공하며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히어로가 됐다는 아이러니컬한 공통점도 있다.
 
봉준호와 BTS는 그야말로 누구도 상상 못했던 초국가적 K컬처의 힘을 보여준다. K팝 쪽에서는 아예 글로벌 무대에서 데뷔하며 한국보다 해외에서 인기 높은 ‘수출형’ 아이돌들이 늘고 있다. 네이버의 스타 인터넷 방송 ‘브이라이브’는 이용자의 85%가 해외 팬이다. 한국 팬덤과 해외 팬덤 간 민족주의적 갈등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봉준호는 영화광 관객 중심이던 박찬욱을 넘어섰고, 한국적 이야기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연출하는 등 플랫폼 변화에도 발 빠르게 적응했다. 소셜미디어 활용의 교본 BTS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이 필요 없다.
 
길게 보면 이들의 성취는 검열 폐지 등 규제 완화, 정치 민주화, 대자본과 엘리트 인력의 투입으로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토대를 닦은 한국 문화콘텐트 산업이 이후 글로벌 미디어 소비환경 변화와 만나 세계 문화지형을 바꾼 결과다. 해외에서는 한류를 정부 지원의 산물로 깎아내리려는 시각도 있으나 역대 정부는 ‘문화강국’ 선언만 요란했을 뿐 철저하게 민간 영역에서 시장 논리에 의해 성과를 일궜다. 이번에 봉준호는 “BTS가 누리는 문화적 파워는 저의 3000배는 넘을 것”이라며 “한국은 멋진 아티스트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 감정적으로 매우 격렬하고 다이내믹한 나라”라는 말도 했다. 한국사회가 바로 창작의 원천, 문화적 DNA란 얘기다.
 
정치적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대통령이 말했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문화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자양분 삼아 전 세계로 뻗어가는데, 모순과 갈등의 해결자여야 할 정치는 왜 매일 그 모양 그 꼴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갑자기 생각이 정치로 튀니 입맛이 쓰다. 정치, 문화만큼 할 수 없을까?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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