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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성공 비결? 최고를 골라라, 간섭하지 말고 믿고 맡겨라”

중앙일보 2020.01.08 00:45 종합 20면 지면보기

나스닥 상장사에 매각된 AI 스타트업 수아랩 송기영 대표

문과 백수의 대박 성공기
여기 스펙 좋은 백수가 한 사람 있다. 아니, 있었다. 외고 나와 새 천 년이 열리는 2000년 연세대 인문계열에 턱 하니 붙었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사시 봐서 변호사 되라”고 권하기에 특별한 고민 없이 고시원에 들어가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 딱 6개월 해보니 감이 왔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조차 무조건 외워서 보는 시험에 진저리를 쳤는데 고시 공부는 그 끝판왕이었다. 고시원을 나와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고, 학사경고를 거듭한 끝에 3학기를 채 마치기 전 휴학 하고 말 그대로 백수가 됐다. 이때만 해도 ‘군대 다녀와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웬걸. 과외로 돈 좀 벌면서 친구들이랑 PC방 전전하며 게임 하고 당구 치고 술 먹고, 여행 다니며 놀다 보니 1년이 금세 흘렀다. 2002 월드컵이 끝나고 몇 달 공부해 수능을 쳤지만 결과는 당연히 낙방. 이 순간 인생을 바꾼 결심을 한다. 문과에서 이과로 바꿔 2004학년도 수능을 쳤고, 그렇게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들어갔다. 재학 중 서울대 산학 벤처인 에스앤유프리시전에 입사해 제조 과정의 불량을 기계(영상)로 잡아내는 머신비전 업무를 처음 접했고, 졸업 후 인텔을 잠시 거쳐 2013년 머신비전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솔루션(수아킷)을 만드는 수아랩을 창업했다. 초등생 딸 수아를 둔 송기영 대표 얘기다.

창업 6년 만에 2300억원에 매각
‘올라웍스’ 이후 최대 규모
국내 대기업은 가치 인정 안 해
사람 넘어선 AI 만드는 게 꿈

  
누가 대표고, 누가 직원인지. 젊은 기업 수아랩의 송기영 대표는 별도 집무실은커녕 사무실 한복판에 다른 직원과 똑같은 크기의 책상을 쓴다. 본인 책상 앞에 선 송대표. 최정동 기자

누가 대표고, 누가 직원인지. 젊은 기업 수아랩의 송기영 대표는 별도 집무실은커녕 사무실 한복판에 다른 직원과 똑같은 크기의 책상을 쓴다. 본인 책상 앞에 선 송대표. 최정동 기자

진작부터 삼성·LG·SK 등 주요 대기업을 고객으로 뒀던 수아랩은 2019년 4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벤처스아시아를 비롯해 몇몇 벤처 캐피탈(VC)로부터 총 320억 원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해 10월엔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코그넥스에 2300억 원에 인수되는 대박을 터뜨렸다. 6000억 원을 받고 로레알에 팔린 ‘스타일난다’처럼 유통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매각은 간간이 있었지만 순수 기술 스타트업으로선 2012년 인텔의 올라웍스 인수(350억 원)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미래가 안 보이던 이 문과 백수는 어떻게 AI 스타트업으로 산업현장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향후 업무 조율 등 협의를 위해 한 달간 미국 보스턴 코그넥스 본사에 머물다 돌아온 송기영 대표를 지난 2일 휴대폰 검사장비가 놓여 있는 서울 서초동 마제스타시티 타워 수아랩 서울 본사에서 만났다.
 
백수 시절 부모님이 걱정 많이 했겠다.
“그런 기억이 없다. 대학 입학 이후론 내가 다 알아서 했다. 한 가지에 빠지면 그거에만 몰입하는 성격이라 고교 시절에도 수학 빼곤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은 항상 ‘잘 될 것’이라 믿어 주고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양육 방식이 회사 운영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시스템을 갖춰놓고 이를 따르라고 관리 감독하기보다 그냥 사람을 믿고 맡긴다.”
 
빈말이 아니다. 사무실을 한 번만 둘러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흔한 출퇴근 확인 시스템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특히 AI 개발자가 모여있는 딥러닝랩은 일부러 까만색 칸막이를 높게 올려 누가 출근을 했는지, 또 출근을 했어도 뭘 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어놨다. 누구도 재촉하거나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지만 필요한 개발이 임박하면 초과근무수당 1원도 없이 스스로 주당 120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거꾸로 일이 없으면 눈치 안 보고 장기 휴가를 간다. 송 대표는 “연간으로 보면 몰아서 일하는 개발자나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을 일하는 인사팀이나 근무시간은 비슷하더라”고 했다.
 
칸막이가 소통에 방해가 되진 않나.
“전혀. 매주 수·금 오후 1시를 정기 세미나 시간으로 정했다. 이때 진전된 연구가 있으면 알아서 발표하고 다른 개발자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서 제품에 탑재할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를 만들어간다.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도 때 되면 누군가는 연구 결과를 취합해 다른 부서에 넘기는 등 일련의 과정을 각자 다 알아서 한다.”
 
AI개발자가 일하는 수아랩 딥러닝랩. 검은색 칸막이를 높게 올려 출퇴근 시간은 물론 근무 중 뭘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AI개발자가 일하는 수아랩 딥러닝랩. 검은색 칸막이를 높게 올려 출퇴근 시간은 물론 근무 중 뭘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비결이 뭘까.
“우리 회사의 큰 두 가지 기본원칙이 자율과 수평이다. 회사의 큰 방향은 있지만 그걸 해나가는 방식은 스스로 결정한다. 늘 ‘수아랩에선 당신 생각대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주기도 하지만 일에 대한 자율성이 우수한 핵심인력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자율성이 작동하려면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중요하다. 오해 마라. ‘결과의 수평’이 아니라 서로 대등하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수평이다. 여기엔 서로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사람을 신중하게 뽑는 이유다. 서류, 전화, 기술면접, 프로젝트 과제로 하는 2차 기술 평가, 임원 면접…. 꽤 까다롭다. 단 한 사람이라도 ‘애매하다’고 판단하면 수아랩의 인재 기준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고 뽑지 않는다. 믿고 일을 맡기려면 그럴 만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지금까지 투자받은 돈도 주로 인재 확보에 썼다. 그 결과 AI가 사람처럼 적은 수의 데이터로도 학습할 수 있는 ‘골든 샘플’ 기술을 개발해 특허받고 ‘수아킷’으로 상용화할 수 있었다. ”
 
‘코그넥스 딥러닝랩 코리아’로 간판을 바꾼다. 핵심 기술 유출이 걱정된다.
“기술 스타트업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연구 인력이 핵심이다. 장부상 지분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해도 연구진이 한국에 남아 한국기업과 협업하는 만큼 기술은 한국에 남는 거다. 우리보다 훨씬 큰 회사라 더 많은 투자가 가능하다. 미국 본사와 기술 교류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대기업이 샀다면 애초에 이런 걱정이 필요 없었을 텐데.
“기업문화가 인수합병(M&A) 성패를 가르는 주요한 요소다. 코그넥스는 MIT 교수가 1981년 창업한 회사인데 우리와 비슷하게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다. 반면 국내 대기업에 입사한 지인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대기업은 우리 같은 기술 스타트업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국 스타트업이 해낼 정도의 수준이라면 돈 들여 인수하느니 차라리 자체 개발하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결국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금·인력 우위인데 왜 그럴까.
“좋은 인재는 많은데 원팀으로 하질 못하더라. 가령 어떤 목표를 위해 TF를 만들어도 기존 팀을 꾸리던 임원들이 자기 에이스를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대기업 프로젝트 책임자는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임원 아닌가.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돈 없는 스타트업이니 실패하면 안 되는 절박할 상황일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린 실패가 자유롭다. 빨리해보고 빨리 실패한다. 실패한다고 누가 옷을 벗을 필요도 없고. 실제로 수없이 실패한 끝에 수아킷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일찌감치 대기업 고객을 많이 확보한 비결이 궁금하다.
“2016년 알파고가 영업을 다 해줬다. AI·4차산업혁명 같은 유행어 덕을 많이 봤다. 쓸만한 AI 스타트업을 검색해서 제발로 찾아왔다. 알파고 후 1년간 웬만한 대기업은 다 만나봤다.”
 
규제 탓에 한국서 스타트업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정반대다. 한국이라 좋았다. 자율주행이나 의료 등은 규제 탓에 쉽지 않다. 반면 제조업은 한국이 강한 데다 상대적으로 규제와 제약이 덜해 AI 기술 도입과 성장이 수월하다. 실리콘밸리보다 더 낫다. 게다가 구글이 이런 분야까지 손을 뻗치지도 않는다.”
 
이번 매각으로 500억 원을 쥐게 됐다. 창업 때 매각이 목표였나.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똑같다. 사람을 넘어서는 AI를 만드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걱정하는데, 사람이 못 하거나 원래 기계가 했어야 하는 일을 마지못해 인간이 하던 걸 기계가 해준다면 오히려 인간에 도움이 되지 않나. 알파고가 바둑을 죽인 게 아닌 것처럼.”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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