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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시사음식] 고래고기와 동해 바다

중앙일보 2020.01.08 00:32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금은 값비싼 음식이지만 한때 서민들이 즐겨 먹은 고래고기. [사진 박정배]

지금은 값비싼 음식이지만 한때 서민들이 즐겨 먹은 고래고기. [사진 박정배]

고래고기는 비싸다. 지난해 말 울산 장생포에서 밍크고래 한 마리가 1억2800만원에 경매됐다. 1㎏당 20만원, 이것을 삶아 식당에 23만원에 넘겼다. 고기 중 가장 비싼 한우 투플러스 등심의 ㎏당 경매가는 8만원 선이다. 고래고기가 비싼 이유는 수요는 많은데 정상적인 공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는 그물에 걸리거나(혼획), 해안가로 떠밀려 올라오거나(좌초), 죽어서 해상에 떠다니는(표류) 고래만 해경에 신고한 뒤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밍크고래·큰돌고래 등 작고 개체가 비교적 많은 고래류에만 해당한다. 참고래·브라이드고래·혹등고래 등 보호 대상 10종은 어떤 경우에도 유통할 수 없다.
 
한민족과 고래의 인연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오래됐다. 조선시대에 동해는 경해(鯨海), 즉 고래의 바다로 불렀다. 19세기 초반 기름 채취를 위한 미국식 포경이 글로벌 산업이 되면서 긴수염고래·귀신고래 같은 대형 고래가 많이 살던 동해는 열강의 각축장이 됐다.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는 1849년 1월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암으로 명명했다.
 
고래고기는 기름이 많아 빨리 부패한다. 그래서 고기를 빨리 가공할 수 있는 연안이 고래잡이의 필수 요소다. 장생포는 이때부터 고래잡이 전진기지가 됐다. 고래를 식용하는 문화는 일본이 거의 유일했고 장생포는 그 문화를 이식받았다. 한국전쟁 후에 불어닥친 식량난으로 저렴한 고래고기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울산·부산·포항을 중심으로 고래고기가 서민의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찾는 이가 늘면서 포경업도 활기를 띠었다. 1965년 한·일 어업협정 체결로 대일 수출이 재개됐다. 70년 566톤에 톤당 59달러를 받았지만 77년에는 1290톤에 톤당 241달러로 가격이 급등했다.
 
고래고기 수출은 울산 경제에 큰 이익을 가져다줬다. 고래자원의 보존 관리를 위해 194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설립됐고, 대한민국은 78년에 회원국이 됐다. 하지만 IWC 의결에 따라 86년부터 상업 포경은 전면 금지됐다. 찌개나 수육으로 흔하게 먹던 고래 음식은 서민들로부터 멀어져갔다. 삶은 고래를 얇게 저며 음미하는 귀한 음식이 됐다.
 
최근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고기로 주로 먹는 밍크고래도 보호종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고래에 기대온 장생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62년 정부는 울산 근해의 고래 회유해면(廻遊海面)을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했다. 개체 수가 늘어나고 혼획으로 잡힌 고래를 세심하게 관리한다면 장생포는 고래 관광의 명소로 일어설 것이다. 고래가 넘쳐나는 동해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풍요롭다.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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