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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에…'월성 2·3·4호기 스톱' 초유의 사태 온다

중앙일보 2020.01.08 00:25 종합 1면 지면보기
경주시 월성군 감포 앞바다 해변에 자리 잡은 월성원자력발전소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경주시 월성군 감포 앞바다 해변에 자리 잡은 월성원자력발전소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지난 3일 경북 경주시내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40㎞를 달리니 푸른 감포 앞바다를 마주 보고 특유의 원통 모양 원전 4기가 줄지어 서 있다.

비상 걸린 월성원전 르포
내년 11월 폐연료봉 저장시설 포화
원안위, 시설 증축허가 계속 미뤄
“수명 남은 원전까지 발 묶나” 비판

월성원전 한 기의 전력생산량
10조 투자 태양광발전과 맞먹어

저장시설 증설안, 포항지진 이후
환경영향평가 등 추가요구로 지연

“원안위 회의 때 시급성 말했지만
위원장이 표결 안 부쳐 또 미뤄져”

 
한국 유일 가압중수로형 원전들이 모여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다. 지난달 ‘영구 폐로’ 판정을 받은 월성 1호기는 이미 전기 생산을 멈춘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겉으로 보기엔 2, 3, 4호기와 다를 바 없었다. 원전 격납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서 산기슭 쪽으로 가니 커다란 요철이 누운 모양의 높이 7.6m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났다.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맥스터’ 시설이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지름 110㎝의 둥근 강철 실린더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총 280개의 실린더 중 대부분은 폐연료봉을 가득 채우고 밀봉된 상태였다. 월성원전에 따르면 맥스터의 저장률은 지난해 9월 이미 93%를 넘어섰다.
 
월성원전 2, 3, 4호기가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멈출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라면 내년 11월이면 월성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를 둘 저장시설이 꽉 찬다. 폐연료봉은 계속 쏟아지는데 이를 처리할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월성원전은 기당 발전능력이 700㎿에 달한다. 현 정부가 10조원을 들여 새만금에 설치할 계획이라는 태양광발전의 실제 전력생산 능력과 맞먹는 정도다. 월성 2, 3, 4호기가 멈추면 국내 전력생산의 24%를 차지하는 가동 원전 24기 중 3기가 발전을 못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건식 저장시설인 맥스터를 건설하는 기간만 1년7개월이 걸린다”며 “각종 인허가와 발전소 현장 여건 등을 고려하면 지난해 말에는 공사를 시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폐연료봉 저장시설 짓는 데 19개월 … 지금 시작해도 늦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때문에 4년 전인 2016년 4월 이미 월성원전 맥스터 2단계 증설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청했다. 2단계 증설을 위해 바로 옆에 부지 조성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5개월 뒤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발생하고, 월성원전 전체가 수동 정지되는 지경에 놓이면서 내진설계 기준이 적절한지 재평가를 받게 됐다.
 
이후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꼬여 갔다. 경주 지진에 이어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 지진까지 겹쳤다. 환경영향평가 등 추가 요구가 계속됐다. 그렇게 3년여가 흐른 뒤인 지난해 11월에야 맥스터 2단계 증설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안이 원안위에 첫 상정됐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증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올라갔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 상정된 맥스터 증설안은 격론 끝에 검토를 더 한 뒤 추후 재상정하기로 결정됐다. 지난해 12월 원안위 회의에서는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병령 원안위원은 “맥스터 2단계 증설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11월 회의에서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보고를 받고 서로 이견을 확인하는 정도의 얘기가 오가다가 결론없이 끝나 버렸다”고 말했다.
  
월성 원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월성 원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증설 위한 운영변경허가안 10일 재상정
 
원안위에 따르면 맥스터 증설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안은 오는 10일 열리는 1월 회의에 재상정될 예정이다.
 
월성원전에는 건식인 맥스터만 있는 게 아니다.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은 원전 내 습식 저장수조에 6년간 머무르며 열을 어느 정도 식힌다. 이후 건식 저장 시설로 다시 옮겨진다. 월성원전의 습식 저장수조 포화율은 지난해 9월 현재 86.3%에 달한다.
 
한수원은 1992년부터 2010년까지는 ‘캐니스터’라는 이름의 높이 6.5m 철근 콘크리트 용기를 이용해 자연복사 형식으로 폐연료봉을 식히며 건식 저장해 왔다. 이후로는 저장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공기냉각이 가능한 맥스터 건식 저장시설을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 캐니스터에는 총 16만2000다발의 폐연료봉이, 맥스터에는 15만6480다발의 폐연료봉이 들어 있다. 맥스터만 보면 저장 포화율이 93.1%지만, 두 건식 저장시설 전체로 따지면 포화율이 96.51%에 달한다.
 
월성원전은 캐나다에서 들여온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로 방식이다. 지난해 말 가동이 영구 중지된 1호기가 1983년 첫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설계수명이 2년 이상 남은 상태였다. 2, 3, 4호기는 각각 97년, 98년, 99년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며 설계수명 만료일은 각각 2026년, 2027년, 2029년이다. 중수로형 원전은 경수로형과 달리 농축우라늄이 아닌 천연우라늄을 사용해 연료 소모가 많다. 경수로는 18개월마다 전체 연료의 3분의 1을 교체하지만, 중수로에서는 수시로 연료를 넣어줘야 한다. 월성원전이 국내 어느 원전보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가 심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 아닌 정책적 판단 때문에 멈출 판”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가동 중인 원전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부족해 멈춘다면 이는 초유의 사태”라며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설이 아니고 동일한 시설을 확장하는 의미의 공사인데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며 승인을 안 해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결국 기술적 요인이 아닌 정책적 판단 때문에 원전을 멈추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원전 가동이 안 되면 이는 사업자가 아닌 원안위와 같은 규제기관에 그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사용후 핵연료 처리는 월성원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 기장에 있는 고리 1~4호기의 저장률은 91.82%, 전남 영광의 한울원전 1~6호기도 80.17%에 달한다. 맥스터나 캐니스터와 같은 건식 저장시설이 있는 곳은 가압중수로형 월성원전뿐이다. 가압경수로는 중수로보다 사용후 핵연료가 상대적으로 덜 나오기 때문에 원전 내 습식 저장수조에 보관해 왔다. 하지만 이후 월성·고리·새울·한빛·한울 각 원전 본부별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률이 올라가면서 저장시설 증설에 대한 본격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습식이든 건식이든 원전 부지 내에 두는 저장시설은 모두 임시 시설이다. 궁극적으로는 영구 저장시설 또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5월 사용후 핵연료 재검토준비단을 만들고, 이후 재검토위원회까지 구성해 관리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와 지역 주민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어 최근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재검토준비단 위원을 지낸 송종순 조선대 교수는 “맥스터와 같은 임시 저장시설 이슈에 발이 묶여 영구 저장시설에 대한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용후 핵연료가 갈 곳이 없으면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을 위한 원전 해체도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경주=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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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