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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랭커 고진영, 스폰서 로고 없는 모자 쓸 판

중앙일보 2020.01.08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하이트진로와 계약이 만료된 고진영은 아직 새 메인 후원사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로부터 기념주를 받는 고진영(오른쪽). [사진 KLPGA]

하이트진로와 계약이 만료된 고진영은 아직 새 메인 후원사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로부터 기념주를 받는 고진영(오른쪽). [사진 KLPGA]

 
여자골프 세계 1위 고진영(25)이 시즌 준비를 위해 3일 미국으로 떠났다. 메인 후원사 계약을 매듭짓지 못한 채다. 고진영의 매니지먼트사인 갤럭시아SM은 출국 전 메인 후원사 계약을 마무리하려 애썼지만 불발됐다. 계약이 성사되지 못하면 세계 톱 랭커가 스폰서 로고도 없는 모자를 쓰고 대회에 나갈 수 있다. 한국의 인기 스포츠 여자골프에서 최고 선수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건 아이러니다.

하이트진로와 계약 지난달 만료
메인 후원사 못 구하고 미국 출국
경기 불황, 몸값 급등 때문인 듯

 
업계에서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과도한 금액을 요구했거나 ▶매니지먼트사의 영업 능력이 부족하거나. 어쩌면 이들 세 원인이 조금씩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최근 시장은 좋지 않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나쁘다. 새로운 골프단이 나오지 않아 최고 선수를 잡으려는 스카우트 경쟁이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세계 1위가 흔해졌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 선수로는 신지애와 박인비가 1위에 오른 이후 최근 3년 새 유소연, 박성현, 고진영이 최고 자리에 올랐다. ‘여왕 프리미엄’이 그만큼 줄었다.
 
지난 2016년 KLPGA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당시 고진영. 당시 그의 메인스폰서는 가구업체 넵스였다. [사진 KLPGA]

지난 2016년 KLPGA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당시 고진영. 당시 그의 메인스폰서는 가구업체 넵스였다. [사진 KLPGA]

 
기업에선 선수 몸값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입장이다. 잘하는 선수는 많은데 팬의 시선을 사로잡을 개성이 넘치는 선수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수 위상이 올라가면서 연예인처럼 미디어 노출 빈도를 줄여 (기업이 볼 때는) 효율이 낮아졌는데 돈은 더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고진영 측에서 원하는 액수가 이전 계약의 2배 이상인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도 올림픽의 해에, 꾸준하고 안정된 경기력으로 금메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진영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매니지먼트사는 선수와 기업 사이에서 원활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쪽으로 쏠려 오히려 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선수와 기업 양측에 이익이 가고, 궁극적으로는 선수가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여자골프 선수 메인스폰서

주요 여자골프 선수 메인스폰서

 
메인 후원사는 프로골퍼의 자존심이다. 고진영의 현재 상황은 1년 전 박성현과 비슷하다. 당시 여자골프 최고 인기 선수이자 세계 2위였던 박성현은 하나금융그룹과 2년 계약이 끝난 뒤 새 후원사를 찾지 못했다. 결국 2월 중순에야 후원사를 확정했다. 박성현은 계약 성사 때까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훈련에 매진한다”고 했지만, 스폰서 로고 없는 모자로 출전하는 게 민망했을 거란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박성현은 필리핀 카지노 업체와 2년 계약을 했다.
 
지난해 10월 25일 열린 LPGA BMW 챔피언십 대회 2라운드 13번홀에서 고진영이 태극기가 새겨진 스코어북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5일 열린 LPGA BMW 챔피언십 대회 2라운드 13번홀에서 고진영이 태극기가 새겨진 스코어북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메인 후원사가 없어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나오는 선수도 가끔 있었다. LPGA 투어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양희영(31)이 두 차례 그랬고, 2016시즌 LPGA 신인왕 전인지(26)도 이듬해 시즌 전체를 로고 없는 모자를 쓴 채 투어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그 시즌에 전인지는 우승하지 못했다. 어쨌든 세계 1위의 경우에는 전무한 일이다.
 
LPGA 투어 2020시즌은 16일 개막한다. 고진영은 2월 중순 혼다 타일랜드부터 출전 예정이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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