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값 통제 부작용에도…부동산 정치 마이웨이

중앙일보 2020.01.08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올해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대급 고강도 규제로 꼽히는 12·16 대책을 포함해 정권 출범 이래 1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 신년사 ‘투기와의 전쟁’
‘비규제지역까지 돈 출처 대라’
9억 넘는 집 살 땐 증빙서류 15개
고강도 대책에도 곳곳 ‘풍선효과’
서울 집값 누르자 수원·용인 치솟아
“단기성 말고 중장기 대책 내놔야”

문 대통령은 이날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라는 세 가지 목표를 내세우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파장은 클 전망이다.
 
12?16대책 후 꺾인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2?16대책 후 꺾인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관련기사

우선 서울 아파트값 급등에 대한 인식이다. 정책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꾼들에 의한 투기’의 소산으로 보는 점이다. 투기와의 전쟁을 내세운 것은 가격 통제라는 반시장적 정책 기조를 다분히 정당화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따라서 가격 통제 기조는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출마 포기 선언을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역시 신년사에서 “인간의 존엄과 직접 관련된 주거정책은 시장경제의 룰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가격 규제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부작용으로 가격이 오르는데 계속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다”(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략연구부장)는 지적이 무색해진다.
 
대통령과 주무부처 수장의 말의 힘은 세다. 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고 언제든지 시장을 휘저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관련 정책을 만드는 정부 부처나 그와 관련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여당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12·16 대책 입안 과정도 그랬다. 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한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관계부처 합동으로 12·16 대책이 벼락 치듯 발표됐다. 대출 제한,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 확대 등 고강도 규제책이 총망라됐다.
 
대책 중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도, 입법예고 중인 것도, 법 개정을 위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도 있다.
 
대출 규제는 벌써 시행되고 있다. 서울 등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세 15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살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시세로 9억원 이상 초과하는 아파트의 경우 초과분의 LTV(담보인정비율)는 20%로 줄어들었다.
 
종부세 강화의 경우 관련 법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해 개정한 뒤 올해 납부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종부세 납부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종부세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논의와 로드맵이 필요한 정책을 전쟁이라 표현하며 싸워서 이긴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부동산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부세 세율 인상과 더불어 국토부는 올해 9억원 이상 아파트의 시세 대비 공시가 반영률(공시가격 현실화율)을 70~80% 선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서울 마포구 래미안·푸르지오(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의 경우 올해 전년 대비 50% 오른 369만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정부는 실거래 내역도 일일이 들여다본다. 국토부는 최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올 3월부터 지금까지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초과하는 주택을 살 때만 자금조달계획서를 냈던 것에서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 지역 3억원 이상 주택과 비규제 지역 6억원 이상 주택으로 확대했다.
 
‘로또분양’ 기대감에 청약 광풍 … 30대가 부동산 큰손 떠올라 
 
또한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살 경우 자금조달계획서와 더불어 관련 증빙서류를 최대 15가지 내야 한다. 은행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면 잔고증명서와 예금 잔액 증명서를, 증여·상속이라면 증여·상속세 신고서나 납세증명서를 내는 식이다.
 
특히 금융기관 대출액으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금융거래확인서, 부채증명서, 금융기관 대출신청서 등을 깐깐하게 본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격 통제에 따른 부작용을 계속 우려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8% 상승해 전주(0.10%) 대비 상승세가 줄었다. 하지만 비규제지역이거나 정부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수원시 영통구(0.81%)나 용인시 수지구(0.79%)의 아파트값은 치솟았다. 최근 학군 수요가 늘어난 강남구(0.49%)와 양천구(0.61%)의 전셋값 역시 올랐다.
 
분양가 상한제 지역도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늘어났으나 ‘로또 분양’에 대한 기대감에 청약 경쟁률만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다.  강남권뿐 아니라 강북권에서도 인기 단지의 경우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하고, 가점 커트라인이 만점(84점)에 가까운 70점대에 육박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다.
 
이 탓에 가점이 낮아 청약 시장에서 소외된 30대들이 40대를 제치고 부동산 매매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의 주요 수요층인 40대가 아닌 30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불안하고 주택시장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며 “단기성 정책만 쏟아낼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서울의 노후 주택과 그만큼 늘어나는 새 아파트 수요를 충족시킬 공급 대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