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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시대 '악의 축' 거론한 김정은, 이란 사태도 이라크 전쟁 때처럼 정면 돌파할 듯

중앙일보 2020.01.06 16:18
 

“조선로동당 위원장 동지께서는 미국이 지난 70여년간 우리 국가를 적으로, 《악의 축》, 《핵선제 공격대상》으로 규정하고 야만적인 제재와 핵 위협을 가해 왔으며….”

이란 사태 북미 비핵화 협상에 미칠 영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1월 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힌 신년 메시지에는 ‘악의 축’과 ‘핵 선제공격’이란 말이 등장한다. 이 용어는 2000년대 초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시기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김 위원장이 대북 선제타격론까지 거론됐던 아버지 시대의 표현을 동원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고, 각오를 다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군부 실세가 사망하는 등 중동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도 이란과 함께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올려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거론한 '악의 축' 시절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응 방식을 보면, 아들 김정은 위원장의 향후 대응도 추론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시, 핵 선제공격 거론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에서 북한 등 3개국가에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에서 북한 등 3개국가에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취임하자마자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로 규정했다. 9·11 이후 진행된 '테러와의 전쟁' 여파였다. 미국은 그해 5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고 이어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예방적 차원의 핵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도 용인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존 볼턴 국무부 군축 차관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행정부 곳곳에 포진했다.
 
이어 미국은 아프간·이라크 전쟁을 벌였고, 2003년 12월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다음 타깃은 북한'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미 정부 강경파들이 북한에 제한적 공격, 정권 교체 등 ‘플랜 B’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외신 보도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뜸해졌고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지하벙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설도 돌았다.
 
김 국방위원장으로선 정권 교체 또는 축출이 가시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당한 심적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후에 일본 NHK는 외무성 문서를 근거로 “북·일 정상회담(2002, 2004년)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만난 김정일이 ‘이라크처럼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며 극도의 불안감을 표출했다”고 보도했다.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2003년 말에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선언을 했고,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김정은, “그때도 버텼다” 말하려 했나

2002년 1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홍성남 내각 총리(오른쪽서 세번째)를 대동하고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을 현지지도 하는 모습. [중앙포토]

2002년 1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홍성남 내각 총리(오른쪽서 세번째)를 대동하고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을 현지지도 하는 모습. [중앙포토]

 
그런데도 북한은 도발→협상 패턴을 고수하며 버텼다. 실제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EU) 관련 2차 핵위기(2002년 10월)→ 핵 동결 해제 선언(같은 해 12월) → 핵 확산금지조약(NPT) 탈퇴(2003년 1월)를 강행했다. 2003년 중반 비핵화 협상을 위한 6자회담이 개시됐지만, 북한은 협상에 진전이 없자 첫번째 핵 실험(2006년)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시 정부 2기 때인 2008년 미국은 핵신고 리스트 제출 등을 이유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미국은 당시 중동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에 주로 신경을 쏟았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한 때 “두 개 지역(이라크와 북한)에서 동시에 전쟁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지만, 6자회담이 진행되자 “북한 정권과 사담 후세인 정권은 차이가 있다”며 입장이 바뀌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국내외 여론 압박도 부담이었다.
 
이 시기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은 “김정일이 이라크 사태를 계기로 깨달은 것은 ‘핵이 없으면 공격 당한다’는 것과 '미국은 대화가 진행 중일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슴없이 군사 조치까지 거론했던 부시 행정부조차 협상 테이블로 끌어 왔는데, 세차례의 정상회담 또는 회동을 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동 급변 사태를 이유로 북한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도 된다.
 

 "이란 실패, 북한 레버리지 될 수도"

북한의 역대 권력자들. 왼쪽부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앙포토]

북한의 역대 권력자들. 왼쪽부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앙포토]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십 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전직 외교부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을 둘러싼 ‘인의 장막’이 이런 역사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외려 이란의 핵 협상(JCPOA·포괄적공동계획) 이탈 움직임을 북한은 레버리지로 보고 있을 수 있다”며 “올해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이어 대북정책까지 실패하면 정치적으로 불리할 것이라고 북한은 판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이 중동에서 충돌하더라도 북한은 과거의 경험상 “미국은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 시대처럼 전략무기 시험 등 오히려 군사적 도발을 통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 할 수 있다.
 
실제 북한은 5일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과업 관철을 위한 궐기대회에서 “장기적인 대결전에서 정면 돌파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협상 장기화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이유정ㆍ위문희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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