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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공수처법, 누가 시스템을 배신했나

중앙일보 2020.01.06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안대희가 무죄라면 무죄겠죠.”
 

사람 영향 차단하는 게 시스템
공수처법 곳곳에 ‘디테일 악마’
무용지물 안전장치 과신 말아야

특수통 검사 출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법원에 있을 때(2006~2012년), 그가 주심을 맡은 형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 일부 검사들은 이런 말을 했다. ‘후배 검사의 사정을 잘 아는 존경하는 검찰 선배의 판결이니 수사 부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동시에 검사들은 웬만해선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쉽게 승복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그즈음 안 대법관과의 식사 자리가 있어서 기분 좋을 만한 주제로 그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이 싸늘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대법관 개인과 연결지어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였다. 대화는 다행히 부드럽게 넘어갔지만, 법조계에 몸담은 이들은 개인과 시스템 사이에서 일반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치밀한 계산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전 대법관의 지적대로 한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이 제멋대로 다루거나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에 의해 언제든 무력해지는 불안한 존재인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 기존 질서는 붕괴된다. 지난 연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시스템이 법제화하면서 1954년 시작된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는 법이 시행될 7월부터 크게 변한다. 검사의 기소 독점이 65년 만에 무너졌다. 공수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부처 장관 등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를 수사 대상으로 하며 이중 판사·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관은 기소할 수 있다.
 
현 정부가 공수처 시스템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검사들이 ‘제 식구 감싸느라’ 검찰 비리를 제멋대로 기소하지 않고 덮었던 ‘기소 독점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공수처 설치의 방안이 논의된 지 20여 년이 흐르고서야 마침내 제도화에 성공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함에 차질이 없도록 문재인 정부는 모든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의 제도화”라고 평가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반부패회의를 주재하며 “이제부터의 과제는 윤석열 총장이 아닌 다른 어느 누가 총장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반부패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권력의 독점적 권한을 줄이고, 견제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민주 사회의 당위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도 사람이라는 변수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공수처법 곳곳에 그런 ‘디테일의 악마’가 스며들어 있다. 비리 검사 잡으려다 ‘수사의 중립성’이라는 지상 과제를 놓치는 과오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수사 기관(검찰·경찰)과의 관계를 규정한 조항이 특히 위험하다. 공수처장에게는 ‘수사 우선권’이 있다. 다른 기관과 수사가 중복됐을 때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다.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24조 1항) ‘적절하다는 판단’은 사람인가 시스템인가.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다른 수사기관은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한다’(24조 2항)는 조항은 ‘독소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 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 보고를 하면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넘겨받아 자체적으로 ‘과잉수사’ 또는 ‘뭉개기 부실수사’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수처의 ‘입맛’은 제어 가능한 것인가.
 
판단과 입맛에 대한 불신은 공수처장 임명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다. 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7명의 추천위원은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2명과 야당 추천 2명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을 막겠다며 위원 5분의 4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가 이마저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6명 이상의 찬성’으로 바꿨다.
 
숫자, 위원회, 청문회 등 이중삼중 안전장치는 과연 공수처를 ‘공정한 반부패 시스템’으로 지켜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실패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국회 선진화법의 패스트트랙 요건(상임위 재적 5분의 3 찬성)은 정족수를 꼼수로 만들어 몰아붙이다 불미스러운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여야 국회의원 28명이 기소됐다. 인사청문회는 이 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 수가 23명이라는 사실에서 효능감 제로다. 사람이 배신하면 역효과만 내는 장치들의 집합체를 대단한 시스템인 것처럼 찬양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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