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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퍼스펙티브] 시청자 자유 침해하는 공영방송이 민주공화정 위협한다

중앙일보 2020.01.06 00:13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금의 공영방송은 공영방송이 아니다

퍼스펙티브 1/6

퍼스펙티브 1/6

나라가 어지럽다. 정치권은 진영(陣營)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언론에는 자극적 표현이 쏟아진다. 이념 양극화는 굳어졌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주인공이 뒤바뀌어도 갈등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진영 대결은 결국 사상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상호 경쟁함으로써 상생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진영 논리의 민주적 상호 경쟁은 분열된 한국 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수신료·세금·공적자금 지원받는 공영방송
정보선택 권한 무시하며 편향적 보도
KBS·MBC·YTN·tbs의 정파성 시비 지속되면
공적자금 필요 없는 민영방송만으로 충분

경쟁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려면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한 헌법 1조 1항이다. 이 조항은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변형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공화정을 천명한다. 공화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안으로 법과 제도에 따른 통치를 강조한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 규정에 따른 지배나 간섭이어야 한다. ‘임의로’ 자유를 침해할 때 “아니오(No)”라고 말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법에 따라 스스로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산불 방지 기간 중 입산을 금지하는 이유는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교도소에서 간수가 죄수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규정에 따른 간섭이라면 자유는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대로 자유를 간섭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보자. 노예는 주인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친절한 주인일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자비심은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공화제에서 노예제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이다.
  
반쪽 국민만 대변하는 KBS·MBC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심을 베풀어도 임의적 온정이라면 공화정에서 수용될 수 없다. 근로 조건이 명문화되지 않다면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는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 공화정에서는 합의된 규정과 입법에 따른 자유 침해는 ‘정당한’ 것이다. 임의적·자의적 지배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공화정의 근간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 중 하나가 공영방송제이다. 이는 사상의 민주적 경쟁을 법적으로 보장해 공화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렇기에 방송법과 각 방송사 자체 규정은 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언론 자유 증진, 치우침 없는 방송 제작, 균등한 기회 제공, 방송 독립성 등이 그것이다. 공영방송에는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공영방송에 요구되는 자유·균형·균등·독립 정신은 일종의 사회 계약이다.
 
지금 우리의 공영방송은 어떤가. 언론인의 자유는 수호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언론 자유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언론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의 공영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들을 기회가 부족하다. 언론인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와 함께 가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의견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편향성·독립성 시비는 계속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시원하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나 몰라라”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양승동 KBS 사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라고 사과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패널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공허하다. 김제동 씨가 하차하는데 무려 1년이 걸렸다. 보수 정부 시절, 방송 독립성 쟁취를 앞세우던 언론 구성원들의 결기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 독립성이 확보되었다는 것인가. 현실 인식은 아전인수격이다.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 하락과 KBS 9시 뉴스 시청률 10%는 초라한 성적표다. 많은 시민은 ‘국민의 방송’ KBS가 반쪽 국민을 대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서초동 촛불 집회 참석 인원을 두고 “딱 보니까 100만 명”이었다는 MBC 보도국장의 언급은 거침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의 대화’에서는 말의 성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기대 이하였다. 시청자의 정보 권리는 확보되지 못했다.
  
정파성 시비 휘말린 언노련 출신 사장들
 
최근 YTN에서는 사장이 지명한 보도국장 내정자 두 사람이 연이어 불신임을 받았다. 구성원이 세운 YTN 경영진은 이제 구성원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연 357억원을 지원받는 tbs교통방송은 보도·논평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더는 교통 전문 채널이 아니다. 막말·편파 논란의 진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공영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는 tbs를 지상파 라디오부문 1등 방송으로 선정했다.
 
이들 공영방송사 사장은 언론노련(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출신이다. 언론노련은 민주노총 산하 단체다. 정파성 시비를 애초부터 자초한 선임이었다. 물론 절차에 따라 뽑았다. 그러나 공영방송 사장이 청와대에 독립적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면 종속되고 마는 것이 실상이다. 언론노련 출신 사장은 또 코드 인사를 실시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배제했다. 편 가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공영방송 독립성을 외치던 언론노련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지금 우리 공영방송의 자화상이다. 공영방송은 방송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임의적 자의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배하는 공영방송 운영은 아무리 선한 목표를 가졌어도 임의적 지배일 뿐이다. 그것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시민은 선택의 자유를 원한다.
 
우리 공영방송은 과거 정부 시절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에 독립적이지 못했으며, 시민의 자유 증진을 위한 정보 제공에 소홀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언론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나쁜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공영방송 스스로 시청자의 자유를 임의로 판단하고 있다.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자신 위해 사용
 
방송법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공화정을 지키는 길이다. 공영방송의 자유는 공화정을 지키는 자유이다. 시청자의 언론 자유를 공영방송 구성원의 자비심에 의존하는 지금의 방식은 민주공화정에 맞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공영방송의 자유는 시민의 정보 선택 권한을 보장하는 자유이다. 정보 제공을 통해 시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우리의 공영 매체는 지금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국민도 상응한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얻고 있느냐고 자문해 본다.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 우리의 공영방송은 공영방송이 아니다. 공영방송은 이름뿐이다. 주인 없는 방송일 뿐이다. 시민은 을(乙)이요 객(客)이다.
 
공영방송은 수신료·세금·공적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그것은 공화정을 위한 사회적 부담이며, 알 권리 보호를 위한 비용이다. 그런데 방송 구성원의 자유에 봉사하는 목표를 고집한다면 굳이 공적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민영방송으로 충분할 것이다.
 
공영방송은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영방송의 위기는 이제 우리의 공화정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공영방송의 ‘명백한 불의(manifest injustice)’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헌법 1조1항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키워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의 신문·방송·출판·인쇄 등 매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 조합원은 1만2000여명.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을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기관지로는 언론노보가 있으며, 매체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오늘을 발행하고 있다.


명백한 불의(manifest injustice)
직접적이고, 분명하며, 관찰 가능한 불공정을 뜻하는 법률 용어. 기아·빈곤 문제에 관한 경제학의 틀을 확립해 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완벽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 보다는 명백한 불의를 찾아서 막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고 역설한 바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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