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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수도권의 수당 정치가 지방 잡는다

중앙일보 2020.01.06 00:09 종합 23면 지면보기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지방의 새해도 정치로 시작됐다. 도심 요지 건물은 총선 예비후보의 홍보탑이다. 현수막이 주렁주렁하다. 지역 신문도 정가 소식으로 가득하다. 총선 후보들의 변(辯)과 동정이 지면을 장식한다. 분열과 적대의 내전적 정치는 벌써 과열 조짐이다. 비례대표 당이 난립하면 해방 공간이 따로 없을 듯하다. 정치 쓰나미가 지방의 소멸·민생 이슈를 삼킬 기세다.
 

“모르면 바보” 식 수도권 청년 복지
“수당 타러 상경 해야겠다” 얘기 나와
정권·관료 뒷짐…지방 결기 보여야

지방에서 보면 선거구 지도는 소멸의 축소판이다. 미세 조정돼도 수도권은 촘촘하고 지방은 휑하다. 서울의 구(區)에는 3개 선거구도, 경기도 시(市)엔 5개도 있다. 지방은 3~5개 시·군(郡)을 합쳐야 겨우 선거구 1개인 곳이 널렸다. 인구의 수도권 과밀화, 지방 공동화(空洞化)를 선거구만큼 상징하는 지도는 없다. 사람과 의원의 수도권 집중은 정책 편중을 낳는다. 정치는 수(數)이고, 지역구 이익을 유도하지 않는 정치인은 없다. 중심과 주변을 낳는 구조는 견고하다.
 
수도권, 지방 간 양극화는 자치도 한가지다. 수도권은 돈을 뿌리고, 지방은 자본 유치에 목을 맨다. 올해 광역 단체장의 신년사를 보자. 수도권은 수당(手當) 정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수당 10만명 확대를 공약했다. 청년수당은 중위소득 150% 이하 미취업 청년에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지원하는 제도다. 2016~19년 수급자는 2만2000명이다. 올해부터 3년간 10만명에 드는 예산은 3000억원을 넘는다. 서울시는 월세고를 겪는 청년에도 보조한다. 4만5000명에게 10개월간 20만원씩 주겠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보편 복지를 약속했다. 미취업 청년 면접수당을 신설했다. 1회 3만5000원씩 최대 6회 지원한다. 만 18세 청년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첫 보험료 9만원도 준다. 경기도는 이미 청년 기본소득제를 시행 중이다. 3년 이상 계속 거주 또는 10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만 24세 청년에 연간 최대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제공한다. ‘청년노동자 통장’은 대상을 2000명에서 9000명으로 늘린다. 저소득 청년 취업자가 매달 10만원을 저축하면 3년 후 약 1000만원을 적립해주는 제도다. “모르면 바보” 라는 소리를 들을 판이다.
 
두 단체장의 명분은 공정 사회다. 현금성 복지를 투자라고 하는 것도 똑같다. 일시적 안전망을 미래 먹거리 창출로 포장한다. 고도의 정치공학이 어른거린다. 포퓰리즘이 별거든가. 저성장 불황기에 고통의 분담이 아닌 재정 분배를 하는 것 아니겠나. 좌파 중앙 정부에 좌파 수도권 정부다. 지방에서 보면 수도권은 별천지다. “수당 타러 상경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방 지자체의 청년수당 도입이 확산하는 이유다. 재정난의 지방으로선 울며 겨자 먹기다.
 
수도권은 잘 나가던 때의 북유럽형 복지 모델이다. 유럽서도 지금은 현금성 복지는 줄이는 추세다. 지방은 상당수가 개도국형 토건 모델이다. 단체장의 신년사 공동 키워드가 인프라·일자리·(관광, 산업) 유치다. 소멸 위기 기초단체가 몰린 광역도 지사엔 살길이 먼저다. 재정 자립도 20~40%의 광역도에 서울(82.2%)·경기도(68.4%)의 공정 사회론은 사치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경쟁력 차원에서 대구시와의 경제 공동체, 행정 통합의 화두를 던진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지역 간 복지 격차는 나라의 틀을 헝큰다. 균형 발전은 공염불이다. 수도권에 사람이 몰릴수록 인구 정책도 주름살이 잡힌다. 2018년 전국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지만 서울은 0.76명이다. 경기도 주요 도시도 평균에 못 미친다. 수도권 블랙홀이 출산율을 낮춘다는 얘기다.
 
수도권이 초저출산율로 우리와 같은 일본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아베 신조 내각은 지방 창생(創生)과 인구 감소 대책의 첫째 과제로 도쿄권 일극(一極) 해소를 내걸었다. 지방 젊은이의 도쿄권 전입 초과를 막는 정책이 봇물이다. 지방 거점에 인구의 댐을 만들어야 그나마 출산율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인구 이동이다.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 종합 처방전이 없다. 정권은 수도권의 수당 정치를 본체만체한다. 거대 싱크탱크 관료 집단은 정치에 오염됐다. 국익에 손을 놓고 있다. 결국은 지방 스스로의 몫이다. 지방의 결기 없이 지방 시대는 오지 않는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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