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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모가 부부싸움 한 며느리 다독거리는 법

중앙일보 2020.01.04 07:00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8)

10년을 어머니와 같이 살다 1년 전 분가한 50대의 친구 부부가 있다. 나름대로 오랜 기간 어머니를 모셨는데 왜 분가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지치고 힘이 들어서라고 한다. 내 친구는 심성도 착하고 효자였는데 오히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긴 병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오래 모시는 것도 효자로 남기 어려운 모양이다.
 
친구 부부는 정성껏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가 점점 이러한 것에 익숙해지면서 부부의 효심을 당연시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몇 번 소홀히 대했더니 험한 말씀을 쏟아내 본인과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어 결국 분가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70대 후반이지만 경제력도 있고, 직접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건강하고, 주변에 친구도 많아 아직 혼자 생활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또한 어머니가 독립생활이 가능하기에 친구 부부도 분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10년을 어머니와 살다가 분가한 50대 친구 부부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지치고 힘들어서라고 한다. 몇 번 소홀히 대했더니 험한 말씀을 쏟아내 본인과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어 결국 분가를 했다고 한다. [사진 pxhere]

10년을 어머니와 살다가 분가한 50대 친구 부부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지치고 힘들어서라고 한다. 몇 번 소홀히 대했더니 험한 말씀을 쏟아내 본인과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어 결국 분가를 했다고 한다. [사진 pxhere]

 
그 친구는 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매 순간 너무 잘해 드리려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네. 무리하기 시작하면 자네나 자네 아내가 금방 지치게 되고 마음의 상처도 받게 되네. 오히려 약간 죄송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네. 예를 들어 집에 조금 일찍 들어와 저녁을 차려 드릴 수도 있었는데 밖에서 게으름을 피웠다든지, 부부끼리 외식을 했는데 어머니는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라든지,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여전히 어머니가 집에서 얇은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든지 말일세”. 이러한 상황이 생기면 어머니에 대해 연민과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조금 더 잘해 드려야겠다’라고 마음을 다잡고 지내야 오랜 동거가 쉽다는 것이다.
 
부모님마다 성격이 달라 친구 어머니의 예가 나의 어머니와 일치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조언을 새겨들었다. 우리 부부의 경우 어머니 모시기가 친구 부부에 비해 쉬울 것이라는 기대는 했었다. 다소 의존적이고 고집이 센 친구 어머니에 비해 80대 후반의 나의 어머니는 그 연세에 보기 드물게 객관적이고 독립적이다. 직장 생활도 오래 했고 은퇴 전에는 사회복지 기관의 기관장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직원들을 이끌었던 경험도 있어 아내와도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사려 깊은 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살림을 합쳐 함께 살 생각을 하니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같이 살아보니 나의 걱정은 기우였고 어머니는 ‘함께 잘 사는 법’의 지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 같다. 물론 모든 면에서 어머니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어머니의 ‘함께 잘 사는 법’ 지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와 살림을 햡쳐 살면서 '함께 잘 사는 법'을 몇 가지 터득했다. [사진 pixnio]

어머니와 살림을 햡쳐 살면서 '함께 잘 사는 법'을 몇 가지 터득했다. [사진 pixnio]

 
1. 불평하거나 섭섭해하지 않기
어머니는 웬만해서는 불평하거나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어떤 상황은 조금 불편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참 무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2. 식사 때마다 며느리 칭찬하기
식사 때가 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맛있은 음식을 차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특히 아내가 별식을 준비하면 요리 솜씨가 너무 좋다고 몇 번씩 이야기하기도 하고, 식사 후 혼잣말처럼 ‘잘 먹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의(謝意)를 표하기도 한다.
 
3. 규칙적인 생활과 혼자서 잘 지내기
주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평일 저녁 시간은 어머니 혼자 지내고 있다. 아내가 낮에 준비해 놓은 저녁도 어머니 혼자서 먹는다. 어머니는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열고, 오전에는 신문과 책을 본 후 저녁 6시가 되면 삼종기도 및 저녁기도를 하고, 8시 뉴스를 본 후 9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16년째 하고 있다.
 
4. 며느리 다독거리기
어쩌다 부부싸움을 하면 아무리 소리를 낮추어도 어머니가 감각적으로 눈치를 채는 것 같다. 우리가 부부싸움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어머니는 황급히 집 앞 은행으로 간다. 그리곤 적지 않은 현금을 찾아 아내 손에 쥐여 주면서 “얘야, 힘들지. 원래 시어미든 남편이든 다 힘든 존재다. 그러니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네가 많이 이해해 주렴”. 어머니가 준 돈을 나에게 보여 주면서 빙긋 웃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앞으로 용돈이 필요하면 일부러라도 부부싸움을 할까 생각 중이다.
 
5. 상대방에 대한 장기적 전략
아내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 나에게 귓속말로 “어머니가 어제 나를 부르시더니, 내가 죽으면 내 명의로 된 이 아파트 너에게 주마. 다른 자식들도 모두 동의했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어머니 말을 전하길래, 나도 귓속말로 “여보 정신 차려. 잘못하면 당신이 먼저 죽어”라고 속삭여 주었다. 아내가 몸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나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장수(長壽) 타입이다. 외할머니도 95세까지 사셨으니 어머니의 천수는 100세를 훌쩍 넘길 것이다. 나의 설명에 아내는 “듣고 보니 그러네. 역시 어머니는 긴 안목을 가진 탁월한 전략가야”. 우린 둘이 웃었다.
 
6. 보상심리를 넘어선 믿음
어떤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우리에게 섭섭해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섭섭함은 무엇을 해 주었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온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제껏 해 주었던 것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신앙심이 강한 어머니는 베푼 것에 대한 대가를 사람인 자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믿는 하느님이 하늘나라에서 대신해 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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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세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대표 필진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 10여년 전 치매에 걸린 부친을 어디에 모셔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시기를 놓친 경험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는 부모님이 어느날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때가 온다. 향후 똑같은 상황이 되는 베이비부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집 이외의 대안에는 무엇이 있고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부양, 돌봄에 관한 대안을 상황별로 소개해 독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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