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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독립·사상자유!"…구내식당에서 교가 외친 푸단대 학생들

중앙일보 2020.01.04 06:00

复旦复旦旦复旦(푸단 푸단 해가 매일 떠올라 세상을 밝게 비추듯)

巍巍学府文章焕(웅대한 학교의 문장이 빛나네)

学术独立思想自由(학술독립 사상자유)

푸단대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18일 교내 구내식당에서 교가를 부르는 플래시몹을 했다. [유튜브 캡처]

푸단대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18일 교내 구내식당에서 교가를 부르는 플래시몹을 했다. [유튜브 캡처]

중국에서 ‘강남 지역 제일의 명문대학(江南第一學府)’로 불리는 상하이 푸단(复旦)대학교 교가의 1절 첫 부분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이 대학의 대표적 건물 광화루(光华楼)안의 구내식당 ‘단위안(旦苑)’에서 교가가 1절부터 울려 퍼졌다. 하모니카 반주와 함께 말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노래를 시작한 건 푸단대 학생 십여 명이다. 이들은 구내식당 1~2층에서 학교 교가를 불렀다. 교가를 불러야 하는 공식행사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학생들이 한 건 불특정 다수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약속된 행동을 벌이는 ‘플래시몹(게릴라성 공연)’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르는 학생들의 수는 늘어나 수십명으로 불었다. 학교 교직원과 경비원의 만류에도 합창은 멈추지 않았다. 20여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학창시절 대학교 교가는 정말 잘 부르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 처럼 가사를 외우라고 시키는 선생님도 없고, 불러야 하는 행사도 거의 없다. "대학 교가는 입학식과 졸업식 때 단 2번만 제대로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푸단대 학생들은 교가를 왜 불렀을까. 그것도 사람이 많은 구내식당에서. 
 

学术独立 思想自由(학술독립 사상자유)

 
이 가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푸단대 학생들은 전날 벌어진 학교 장정(章程‧교칙) 수정 사건을 비판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중국 정부가 장정에 기존의 ‘사상자유’ 문구를 빼고 ‘시진핑(習近平) 사상’을 넣었기 때문이다.
푸단대 교가 악보와 가사.[트위터 캡처]

푸단대 교가 악보와 가사.[트위터 캡처]

SCMP와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중국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17일 ‘푸단대학의 장정 내 일부 조항 수정에 동의한다’고 발표한다. 푸단대가 지난 2일 수정한 교칙을 허가한다는 얘기다.
 
우선 서문에 나온 학교설립 이념인 ‘학술독립‧ 사상자유’ 문구에서 ‘사상자유’가 빠졌다. ‘학술독립’은 ‘애국공헌, 학술독립, 탁월추구’ 처럼 다른 문구와 함께 두루뭉술하게 배치됐다.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푸단대 개정 교칙.[트위터 캡처]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푸단대 개정 교칙.[트위터 캡처]

이뿐이 아니다. 학교 운영의 기본 원칙과 관련해 기존 교칙에 있던 ‘민주관리’란 문구를 “중국 공산당 푸단대 위원회 영도 하의 교장 책임제를 실행한다’로 바꿨다. ‘교장이 독립적으로 책임진다’는 문구에서도 ‘독립’을 삭제했다. ‘사상자유’ ‘민주’ ‘독립’ 처럼 학교의 자율을 강조하는 문구들은 모두 사라졌다.
 
반면 공산당의 영도는 강조됐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하고 당의 교육방침을 전면적으로 관철한다”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또 '학교는 항상 인민과 당의 중국 통치를 위해 봉사한다'는 조항이나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시진핑 사상도 강조됐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으로 교사와 학생의 두뇌를 무장하는 걸 견지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중국 푸단대학 교문. [왕이망 캡처]

중국 푸단대학 교문. [왕이망 캡처]

1905년에 개교한 푸단대는 중국인이 최초로 중국에 세운 대학교다. 초대 이사가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이다. 현재도 중국에서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명문이다. 특히 중국 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학내 분위기로 평판이 높다. 
 

이런 전통 속에 푸단대 학생들이 교칙 개정에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중국 푸단대 학생들은 최근 학교의 교칙 개정에 반발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푸단대 학생들은 최근 학교의 교칙 개정에 반발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SNS 웨이보에는 “교칙 개정을 요청한 자들에게 감히 묻건대, 무슨 낯으로 대학 선배들을 볼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 푸단대 학생은 SCMP에 "이번 플래시몹은 교칙 개정에 대한 항의로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도 교칙 개정을 비판했다. 후 편집장은 이번 학칙 개정을 '몰이해'라고 비판하면서 “무제한의 '정치적 교화'를 추구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를 낳고,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며, 사회적 신뢰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주의‘와 '자유'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공산당의 정책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후 중국 공산당은 학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사진 셔터스톡]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후 중국 공산당은 학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사진 셔터스톡]

최근 교칙 개정을 한 곳은 푸단대 만이 아니다. 난징대학교와 산시사범대학교도 바꿨다. 두 학교의 개정 교칙에는 모두 중국 공산당이 학교 운영을 통제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지난 2012년 말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집권한 후 공산당은 학계에 당의 전면전인 영도를 내세우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교육부는 푸단대를 비롯한 중국 내 26개 대학에 교칙 개정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사상의 자유가 침해가 침해받는 것을 비판하는 교수는 해고되거나 정직 처분 등을 받았다.
 
당장 플래시몹을 주도한 푸단대 학생들도 두려움이 있다. 교가를 부르면서도 별도의 구호를 외치거나 플래카드를 들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정부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플래시몹은 공산당과 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라며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중국에서 일어난 보기 드물고 위험한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네이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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