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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없이 돈 버는 GAFA…EU 디지털세 선공에 미국은 ‘와인세’ 맞불

중앙선데이 2020.01.04 00:36 668호 4면 지면보기

외국기업 과세 논란, 무역전쟁 조짐

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세(digital tax) 도입을 서두르자 미국이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디지털세를 부과하면 와인 등 EU산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겠다고 반격했다. 디지털세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 자국의 ‘ICT 공룡’을 겨냥한 세금이라는 이유에서다.  
 

구글 등 서버 둔 국가서만 법인세
프랑스, 매출 3% 소급까지해 부과
영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도 가세

미국은 최대 100% 추가 관세 엄포
OECD 이달 디지털세 권고안 예정
한국, 구글에 공세 강화 신중 검토

실제로 디지털세는 ‘구글세’ 또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 ‘GAFA세’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엄포에도 프랑스·영국 등 27개국이 디지털세 도입을 확정했거나, 도입을 논의 중이다. 이 중 이탈리아·스페인·캐나다·멕시코·칠레·베트남 등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여서 미국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현재 구글의 조세 회피 혐의 등을 조사 중이다.
 
기업 철수 우려에 아일랜드 등 반대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프랑스는 전 세계 연 매출이 7억5000만 유로(약 9700억원)가 넘으면서, 프랑스 내 매출 2500만 유로(약 324억원) 이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디지털세(프랑스 내 매출의 3%)를 물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특히 디지털세를 소급 적용해 지난해 수입에 대해서도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영국도 4월부터 연간 5억 파운드(약 7582억원)를 버는 ICT 기업에 대해 디지털세(영국 내 매출의 2%)를 부과키로 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도 올해부터 ICT 기업의 자국 내 매출에 대해 디지털세를 부과한다. 세율은 각각 3%, 5%다. 프랑스를 필두로 한 EU의 디지털세 도입 논의에 미국은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디지털세가 미국의 ICT 기업을 겨냥한 조치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제 세제의 근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디지털세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러면서 24억 달러(약 2조8615억원)에 이르는 프랑스산 수입품(와인·치즈·요구르트·화장품·핸드백 등 총 63개 품목)에 최대 100%까지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며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계정에서 “우리는 마크롱(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어리석음에 대응할 상호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프랑스 등 EU 주요 나라는 “세제 도입은 주권 영역”이라며 디지털세 도입 의지를 밝혔다.
 
물론 유럽 전역이 디지털세 도입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세제 혜택을 줘 세계 ICT 기업 본사를 대거 유치한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지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유력 ICT 기업이 철수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동유럽 일부 국가도 디지털세를 도입하면 ICT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또 독일·스웨덴은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자국의 자동차 산업 등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디지털세는 사실 오랜 논란거리다. 글로벌 ICT 기업은 그동안 합법적으로 세금을 피할 수 있었다. 외국 기업에 대한 과세는 이익이 발생하는 곳이 아니라 법인이 소재한 곳에서 하도록 한 국제조세협약 때문이다. 구글·페이스북 등은 현재 서버를 둔 국가에서만 법인세를 내고 있다. 예컨대 구글은 한국에서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 내는 세금은 많지 않다. 대신 서버가 있는 싱가포르에 법인세를 낸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세금은 싱가포르에 내는 셈이다. 싱가포르 법인세율은 10%대(최대 17%)로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게 디지털세다. 만약 우리 정부가 디지털세를 도입하면 구글도 한국에서 번 돈에 대해서는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
  
구글, 한국서 돈 벌고 싱가포르에 법인세
 
문제는 디지털세를 내야 하는 대표 기업이 미국 ICT 공룡이라는 점이다. ‘돈을 벌면 세금을 낸다’는 조세원칙상 디지털세 도입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정부를 비롯해 여러 나라가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그럼에도 프랑스·영국 등이 디지털세 논의에 적극적인 건 산업 자체가 제조업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세수 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는 올해에만 디지털세 덕에 4억5000만 유로(약 583억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전망이다. 자국 내 매출 7%를 디지털세로 물리기로 한 체코도 올해부터 매년 50억 체코코루나(약 2541억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것으로 추산한다.
 
문제를 인식한 OECD는 2018년부터 디지털세와 관련해 각국의 의견을 듣고 있다. OECD는 이달 29~30일 열리는 다자간 협의체인 ‘인클루시브 프레임워크’에서 디지털세 관련 최종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복 과세나 이중 과세 문제도 있고 IT 기업과 전통적 기업에 대한 과세의 공정성 여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는 디지털세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구글을 향한 공세 수위는 높이고 있다. 국세청은 구글의 역외 탈세 및 조세회피 혐의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구글이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플레이스토어의 지위를 이용해 국내 게임사에 한 갑질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공세를 ‘디지털세 도입’ 입장으로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미국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가전·스마트폰 등 제조기업에도 디지털세를 물리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대한 국익 확보를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일단 OECD 권고안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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